루돌프 하우스너(Rudolf Hausner)
루돌프 하우스너(1914-1995)는 화가 겸 조각가였다. 그는 심령현실주의자(Psychic realist)이며 최초의 심령분석 화가였다. 하우스너는 1931년-36년 비엔나미술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이 기간동안 그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이집트 등을 여행하였다. 1938년 나치는 하우스너를 퇴폐작가로 규정하여 독일에서 그의 작품 전시를 금지하였다. 그의 작품은 주로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교외, 정물, 여성 누드 등을 그렸으나 그는 훗날 대부분의 작품을 파괴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에른스트 푹스, 볼프강 허터 등과 함께 초현실주의적 그룹을 결성하였다. 이 그룹에는 나중에 아리크 브라우어, 안톤 렘덴 등도 참여하였다. 그는 아트-클럽에 참여하고 비엔나 콘체르트하우스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이 기간중에 그의 대표작은 It's Me(1948)이었다. 심령분석적 입장에서 초현실을 다룬 작품이었다.
사진 작품
‘오디세이의 방주’(The A가 of Odysseus)는 그의 걸작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1956년에 완성하였다. 오디세이(율리시즈)를 자화상처럼 그렸으며 하우스너 자신의 초상화도 그려 넣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나중에 완성된 아담 시리즈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 것이었다. 1957년 하우스너는 아담을 그렸다. 1959년에는 예전에 구성했던 초현실주의 그룹 멤버들로서 이른바 비엔나 환상적 현실주의학파를 구성하였다. 에른스트 푹스, 볼프강 허터, 안톤 렘덴, 아리크 브라우어 등이 다시 모였다. 하우스너는 세 번 결혼하였다. 세 번째 부인은 헤르미네 예들리카(Hermine Jedlicka)로서 두 사람에게서 태어난 딸 세니아 하우스너(Xenia Hausner)는 나중에 화가가 되었다. 1969년 그는 세 번째 부인인 헤르미네와 헤어져서 여덟살의 딸 세니아와 함께 비엔나 근교의 히칭(Hietzing)으로 이사 왔다. 안네 볼가스트(Anne Wolgast)라는 여인도 함께 와서 살기 시작했다. 하우스너가 함부르크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이었다.
사진 작품(안네 볼가스트를 비너스의 탄생으로?)
1966년부터 1980년까지 그는 함부르크미술대학 초방교수였다. 그는 또한 비엔나미술아카데미에서 가르쳤다. 그의 제자중에는 요셉 브라머(Joseph Bramer), 프리드리히 헤헬만(Friedrich Hechelmann), 고트프리트 헬른봐인(Gottfried Helnwein), 미하엘 엥겔하르트(Michael Engelhardt), 지그리트 골드버거(Siegreid Goldberger) 등이 있다.
사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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