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명인들/시인과 작가

하인리히 란데스만(Heinrich Landesmann)

정준극 2009. 7. 3. 23:10

하인리히 란데스만(Heinrich Landesmann)

필명 히에로니무스 로름의 서정적 쇼펜하우어

 

 

하인리히 란데스만(1821-1902)은 시인 겸 철학자로서 메테르니히 수상 정권의 검열을 피하여 베를린으로 가서 활동할 때에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히에로니무스 로름(Hieronymus Lorm)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래서 하인리히 란데스만이라는 이름보다는 히에로니무스 로름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니콜스부르크(Nikolsburg)에서 태어나 오늘날 슬로베니아의 브르노(Brno)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매우 병약하였다. 15세가 되었을 즈음에는 시각과 청각을 거의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그리고 말년에는 눈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는 촉각을 이용한 인식표현을 개발했다. 일종의 점자와 같은 것이었다. 이것이 널리 보급되자 란데스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렇듯 병약하고 천형과 같은 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그의 문학적 재능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는 16세에 이미 시를 써서 주간지 등에 발표하기 시작했다. 1843년 그는 Abdul(압둘)이라는 제목의 첫 문학작품을 완성하여 발표했다. 이슬람판 파우스트라고 보면 된다.

 

26세의 젊은 나이인 그는 당시 메테르니히 수상의 언론 통제와 검열에 반대하는 글을 썼다. 친구들은 그에게 비엔나를 떠나 있을 것을 권고했다. 그는 베를린으로 가서 히에로니무스 로름이라는 가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비엔나에 남아 있는 그의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베를린에서 그는 주로 Europa(유럽)이라는 잡지에 정규적으로 기고하였다. 1856년 결혼하였고 1873년에는 드레스덴으로 이전하였다. 그런후에 1892년에는 브르노에 정착하였다. 란데스만은 서정시인이었다. 그의 글에는 염세적인 비관사상이 줄줄이 흐르고 있다. 그래서 ‘서정적 쇼펜하우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그는 1902년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대표작은 다음과 같다.

 

- Die Schone Wienerin(아름다운 비엔나 여인: 1886)

- Das Leben Kein Traum(꿈이 없는 삶: 1887)

- Auf dem Einsamen Schlosse(고독한 성에서: 1887)

- Die Muse des Glucks und Moderne Einsamkeit(행운의 여신과 현대적 고독: 1893)

- Der Grundlose Optimismus(근거 없는 낙관주의: 18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