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명인들/시인과 작가

나이트하르트 폰 로이엔탈(Neidhart von Reuental)

정준극 2009. 7. 4. 08:51

나이트하르트 폰 로이엔탈(Neidhart von Reuental)

중세 최고의 음유시인

 

중세 음유시인들의 노래집인 코덱스 마네쎄(Codex Manesse)의 표지에 실린 나이트하르트 폰 로이엔탈 

 

중세 유럽은 민네징거(Minnesinger)라고 부르는 음유시인들의 천국이었다. 이들은 왕궁이나 귀족들의 저택에 초청을 받아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었다. 시의 내용은 주로 기사들의 귀부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그린 것이다. 그러므로 음유시인들은 특히 구중궁궐의 귀부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11세기로부터 15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가장 유명했던 음유시인으로는 나이트하르트 폰 로이엔탈을 비롯하여 전설로도 유명한 탄호이저(Tannhauser: -1265), 그리고 오스발트 폰 볼켄슈타인(Oswald von Wolkenstein), 마르틴 코닥스(Martin Codax) 등을 꼽을수 있다. 그중에서 나이트하르트 폰 로이엔탈은 다른 음유시인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다른 음유시인들은 기사들의 사랑을 주제로 삼았으나 폰 로이엔탈은 농민들의 생활에 대한 내용을 주제로 삼았다. 문제는 농민들에 대한 풍자와 독설이 자주 등장하였다는데 있다. 그래서 농민들의 분노를 샀다.

 

  

 나이트하르트 폰 로이엔탈(오랑캐 꽃밭을 걷고 있으며 다른 그림은 꽃을 들고 있다)

 

나이트하르트 폰 로이엔탈의 이름을 글자그대로 번역하면 '탄식의 골짜기의 우울한 마음'이 된다. 아마 풍자를 위해 일부러 그런 예명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나이트하르트(Neidhart)는 Neythart라고 쓰기도 한다. 폰 로이엔탈의 가장 유명한 시는 Meizeit(5월의 시간)이다. 이 시의 첫 부분은 늦은 봄 5월의 아름다운 자연을 찬미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곧이어 자기를 배반한 친구들을 심하게 모욕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그의 시는 대부분 이런 식이다.  

 

 중세 음유시인들의 노래집 음반(나이트하르트 폰 로이엔탈, 탄호이저, 오스발트 폰 볼켄슈타인, 마르틴 코닥스 등이 작곡한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폰 로이엔탈은 독일 바바리아에서 태어났으나 주로 비엔나의 프레데릭 2세 궁전에서 활동했다. 그가 언제 태어났으며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에 대하여는 정확한 자료가 없다. 1180-1245 라는 주장도 있고 1185-1240 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런가하면 1210-1240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3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계산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프레데릭 2세는 그를 높이 기려서 슈테판성당의 외벽에 묘지를 만들어 주었다. 슈테판성당의 남탑이 솟아 있는 곳의 옆에 있다. 그가 죽기만을 고대하던  농민들은 그의 석관이 슈테판성당의 외부에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보고 창을 들고 와서 석관 위에 장식으로 만들어 놓은 석상의 얼굴과 팔다리를 훼손하였다. 석관을 보호하기 위해 철망을 쳐 놓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폰 로이엔탈은 비록 농민들의 미움을 받아 공격을 당하긴 했지만 문학사적으로는 뛰어난 시인이었다. 그의 시는 밝고 유머에 넘쳐 있는 서정적인 것이었다. 그는 시골 정서를 그린 시를 많이 남겼다. 그는 궁정의 고답적인 음유시인이 아니었으며 농촌과 농민을 그린 시를 썼다. 그래서 그의 시를 궁정-전원시(Hoiefische Dorfpoesie)라고 부른다. 중세의 음유시인의 작품 중에서 폰 로이엔탈의 것이 가장 완벽하게 남아 있다. 그의 작품은 코덱스 만네쎄(Codex Manesse)라는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중세 음유시인에 대한 연구를 함에 있어서 폰 로이엔탈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코덱스 만네쎄는 13세기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발간된 음유시인집으로 만네쎄 가문이 음유시인 요한네스 하트라우브(Johannes Hadlaub)에게 요청하여 집대성한 것이라고 한다. 코덱스라는 용어가 붙은 것은 MHG(Middle High German)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의 시집들은 그림을 곁들인 것으로 그림은 은과 금으로 장식하여 빛나게 보이도록 했기 때문에 '빛나는 원고'(Illuminated manuscript)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이트하르트 폰 로이엔탈은 농민들에 대한 지나친 풍자와 독설로 농민들의 분노를 샀다. 그림은 비엔나의 슈테판성당에 안치되어 있는 폰 로이엔탈의 석관을 창으로 훼손하는 농민들.

 농민들의 분노를 사서 훼손된 석관의 석상. 얼굴과 팔 다리가 손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