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명인들/시인과 작가

요셉 롯(Joseph Roth)

정준극 2009. 7. 4. 22:55

요셉 롯(Joseph Roth)

‘라데츠키 행진곡’의 저자

 

 

 

요셉 롯1894-1939)은 대하소설인 ‘라데츠키 행진곡’(Radetzky March: 1932)과 유태인의 생활에 대한 소설 ‘욥’(Job: 1930)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롯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가장 동쪽 변방인 르비브(Lviv)의 인근에 있는 브로디(Brody)라는 마을에서 자랐다. 현재의 우크라이나에 속한 지역이다. 브로디 마을에는 유태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롯의 생애와 작품도 유태문화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브로디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롯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 르비브로 나왔다. 그러나 롯은 르비브에 만족하지 않고 1년후에 비엔나로 와서 철학과 독일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916년 1차 대전중에 그는 학교를 중퇴하고 제국군에 합류하기 위해 입대하였다. 전쟁 경험은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이었다. 1918년 전쟁이 끝남과 함께 합스부르크가 몰락하자 그는 제국에 대한 연민으로 마치 ‘집 잃은 사람’과 같은 심정이었다. 이같은 감정은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였다.

1920년 그는 베를린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그는 처음에 Neue Berliner Zeitung(신베를린신문)에 근무하다가 나중에는 유력한 자유주의 신문인 Frankfurter Zeitung(프랑크푸르트신문)의 특집 전문기자로 활약하였다. 그 때문에 그는 유럽의 여러 지역을 자주 출장다녔다. 특히 프랑스에서 상당기간을 지냈다. 이후 베를린에는 거의 가지 않고 파리에만 주재하였다. 1920년대 말에 그의 부인인 프리데리케(Friederike)가 정신분열증에 걸렸다. 롯은 정신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깊은 위기에 빠졌다. 그러는 중에 1923년 롯의 첫 소설인 The Spider's Web(거미집)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의 어떤 신문에 연재한 소설이었다. 이어 전후 유럽의 생활을 그린 소설을 연재하여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욥’과 ‘라데츠키 행진곡’이었다.

 

  

방랑하는 유태인                                         황제의 무덤

 

롯의 후기 작품에서는 유럽에서 군주제가 다시 부활하기를 희망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루었다. 앞에서고 간단히 언급했지만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몰락으로 제국의 백성들은 모두 고향을 잃은 신세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고향은 진정한 가정을 의미했다. 이 시기에 그는 Red Joseph(붉은 요셉)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프란츠 요셉 황제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그는 국수주의에 반발했으며 나중에는 국가사회주의(나치)에 반항심을 가지게 되었다. 소설 ‘라데츠키 행진곡’과 ‘황제의 흉상’(Die Büste des Kaisers)은 이같은 그의 후기작품의 특색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소설 Kaisersgrab(황제의 무덤)은 1938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기 전까지 ‘라데츠키 행진곡’의 주인공의 사촌이 어떤 운명을 걷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라데츠키 행진곡

 

1933년 1월, 히틀러가 제국수상이 되자 자유주의적 유태인 저널리스트인 그는 독일을 떠나 그가 사랑하는 도시인 파리에 체류하였다. 다음달인 2월, 히틀러가 모든 권력을 손에 쥐자 롯은 친구인 작가 슈테판 츠봐이그(Stefan Zweig)에게 히틀러가 세상을 파멸시킬 것이라는 내용의 예언적 편지를 보냈다. 한편, 그는 1936년부터 1938년까지 예술가인 이름가르트 코인(Irmgard Keun)이라는 여성과 특별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함께 일하고 여러 곳을 함께 여행을 다녔다. 롯은 유태인의 후손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가톨릭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일설에는 말년에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는 주장도 있었다. 또 다른 주장에 따르면 롯은 죽은 후에 유태식과 가톨릭식으로 두 번에 걸쳐 장례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롯은 1939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파리 남부의 티에(Thiais)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파리 남부의 티에에 있는 롯의 묘지

 

요셉 롯의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1939년 윗 사진의 구조물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