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더 알기/동방박사 세사람

공현축일의 전야

정준극 2009. 7. 18. 19:33

동방박사의 공현 축하도 가지가지

 

동방박사들의 경베. 얀 드 브라이

 

동방박사들이 과연 예수님의 태어나신 날에 맞추어서 도착했는지에 대하여는 논란이 많다. 이 경우에 예수께서 태어나신 날은 12월 25일로 설정한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의 마굿간을 찾아온 날은 1월 6일로 잡고 축하하고 있다. 그러므로 좀 이상하긴 하지만 아기 예수는 태어난 후 약 보름 동안 베들레헴의 마굿간 신세를 졌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성경의 마태복음만 읽어보면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가 탄생한 바로 그 밤에 도착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에게 경배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먼저 헤롯을 만난 동방박사들은 마치 아기 예수가 1-2년전 쯤에 태어났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즉,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 나타난 것이 1-2년전이며 자기들은 그 별의 인도를 받아 이제야 도착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방박사들이 헤롯을 만난 시점에는 예수가 이미 두살이 넘었다는 계산이 된다. 그리고 반드시 베들레헴에 있었다는 근거도 없다. 오히려 두 살 이라고 하면 애굽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애굽의 어디에서 지냈나? 성경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하나도 없다. 그저 애굽으로 피난을 가라고 하길래 그 밤으로 떠났다고만 적혀 있다. 베들레헴에서 애굽까지는 머나먼 길이다. 시나이 사막을 지나야 하고 홍해를 건너야 한다. 그 옛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왔던 그 길을 다시 가야 하는 것이다. 아기 예수와 산후조리도 하지 못한 마리아가 어떻게 그런 험난한 곳을 지나서 애굽으로 갈수 있었을까? 돈도 없었을 텐데!

 

멕시코시티의 동방박사 빵. 주현절 전날에 재빵 회사들이 만든 초대형 빵을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풍습이 있다. 이빵을 '동방박사의 빵'(Una rosca por fiesta de los Reyes Magos)이라고 부른다.

 

기독교(로마 가톨릭)에서는 전통적으로 동방박사의 공현축일을 크리스마스로부터 12일이 지난 1월 6일에 지킨다. 특히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그러하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가톨릭 국가는 방대하여서 유럽의 스페인은 물론이지만 중남미의 거의 모든 국가가 이에 속한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는 공현일을 Los Reyes Magos de Oriente(동방의 현자 왕의 날), 또는 Los Tres Reyes Magos(세명의 현자 왕의 날)이라고 한다. 이날 하루 전날 밤에는 아이들이 자기가 받고 싶은 선물을 편지에 써놓는 관습이 있다. 스페인에서는 동방박사가 세 사람이며 각자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이전의 대륙들을 대표한다고 믿고 있다. 즉, 카스파르는 유럽, 멜히오르(또는 멜키오르)는 아시아, 발타자르는 아프리카를 대표한다는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동방박사들은 낙타를 타고 각 어린이들의 집을 방문한다고 한다. 마치 산타클로스가 성탄전야에 사슴(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각 집을 방문하여 선물을 놓고 간다는 것과 같다. 어떤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동방박사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음료수를 준비해 놓는다. 또한 먼 길을 터벅터벅 걸어 왔을 것이 분명한 낙타를 위해서도 먹고 마실 것을 준비해 놓는다. 낙타로서는 이날 밤만은 마음 놓고 음식물을 먹고 마실수 있는 고마운 기회이다. 공현축일 전야에는 실제로 낙타가 각 어린이를 방문하지 않으므로 준비해 놓은 음식물은 동방박사로 분장한 사람들이 수거해서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전달한다.

 

스페인에서의 대규모 카발가타. 국경일보다 더 규모가 크다.

 

스페인의 어떤 도시에서는 공현축일 전야에 카발가타스(Cabalgatas)라는 행사가 마련된다. 왕들과 종자(하인)들이 퍼레이드를 하며 길가에 서 있는 어이들에게 사탕같은 것을 던져주는 행사이다. 남미의 여러 도시에서도 그런 행사가 벌어진다. 스페인의 알코이(Alcoi)라는 도시에서 거행되는 공현축일 퍼레이드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공현축일 행사라고 한다. 왕(동방박사)과 하인들로 분장한 어른들이 길가에 줄지어 서있는 아이들에게 직접 선물을 나누어 준다. 중부 유럽 즉,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등지에서는 집집마다 문지방에 새해의 축복을 비는 문구를 적어 놓는 관습이 있다. 우리식으로 보면 입춘대길 또는 가화만사성과 같은 글을 대문에 붙여 놓는 것과 같다. 중부 유럽에서는 CMB라는 글자를 적어서 붙여놓는다. 그런데 만일 2009년이면 20-CMB-09라고 적는다. CMB는 동방박사 세 사람의 이니셜인 Caspar의 C, Melchior의 M, Balthasar의 B를 말한다. CMB에는 또 다른 의미도 있다. Christus Mansionem Benedicat라는 말의 첫 글자이다. 그리스도가 이 집을 축복하소서(Christ bless this house)라는 뜻이다. 독일의 가톨릭 신봉 지역과 오스트리아에서는 공현축일 전야에 집집마다 어린이를 찾아다니는 동방박사 일행을 슈테른징거(Sternsinger: Star singer)라고 부른다. 글자그대로 번역하면 '별 가수'이다. 마치 미국이나 영국,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예전에 성탄전야에 새벽송을 도는 것과 같다. 슈테른징거들은 동방박사처럼 분장하고 커다란 별을 들고 다니며 모금을 한다. 자선에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오스트리아의 전형적인 슈테른징거(Sternsinger). 공현축일 전야에 집집마다 돌며 모금을 한다. 한 아이는 큰 별을 들고 있다. 독일에서도 마찬가지 전통이 있다.

  

프랑스와 벨기에의 전통 가톨릭 가정에서는 공현축일을 위한 특별 빵을 마련하여 나누어 먹는 관습이 있다. 이 빵을 Roscon de Reyes라고 부른다(실은 오븐에 굽는 빵이 아니라 케이크이다). 케이크 안에는 조그만 아기 예수 인형과 강낭콩과 같은 콩을 한 개 몰래 박아 넣는다. 케이크를 잘라 나누어 먹을 때 아기 예수의 인형을 받은 사람은 종이로 만든 화려한 왕관을 선물로 받는다. 그 사람은 축일 내내 그 왕관을 쓰고 자랑삼아 다닌다. 그리고 콩을 받은 사람은 케이크를 사온 사람에게 케이크 값을 치룬다.

 

미국 뉴올리언스 지방에서 예수공현축일에 먹는 킹 케이크 . 와, 정말 맛있겠다.

 

멕시코에서는 도넛처럼 생긴 동그란 케이크를 먹는다. 이를 Rosca de Reyes라고 부른다. '왕들의 빵'이란 뜻이다. 아마 동방박사들이 여행을 다니면서 만들어 먹었을 것으로 생각해서이다. 케이크 안에는 역시 아주 작은 아기 예수의 인형을 숨겨 놓는다. 누구든지 아기 예수의 인형을 받은 사람은 2월 2일의 칸델라리아(Candelaria)축제 때에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타말리(Tamales)를 사서 나누어주어야 한다. 타말리는 옥수수 가루, 다진 고기, 고추로 만드는 멕시코 전통 음식이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스에서는 멕시코의 도넛처럼 생긴 케이크를 나누어 먹는 관습이 있다. 이를 킹 케이크(King Cake)라고 부른다. 킹 케이크는 공현축일 전날부터 부활절 직전의 사육제인 마르디 그라스(Mardi Gras)까지 아무 때나 먹을수 있다. 킹 케이크 속에는 프랑스에서처럼 아주 작은 아기예수 인형을 넣어 둔다. 요즘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아기예수 인형을 케이크 안에 숨겨두지 않고 케이크 초처럼 별도로 포장해서 판다. 케이크 속에 숨겨 넣었더니 모르고 삼키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먹는 케이크가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보통 크리스마스에 제과점에서 생일 케이크를 사서 나누어 먹는다.

 

 로스콘 드 로이예 케이크(로스카 데 레이예스)

 

동방박사의 날(Dia de los reyes magos)는 주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주현절 공휴일로 지키며 그 전날은 주현절 이브라고 하여 마치 크리스마스 이브와 같은 축제분위기의 행사들이 열린다. 멕시코에서는 주현절 이브에 도너츠도 먹지만 제빵 회사들이 초대형 빵을 만들어 거리에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풍습이 있다. 이 빵을 '동방박사의 빵'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은 동방박사를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선물을 가져다 주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의 많은 나라에서는 주현절 축제를 1월 2일부터 시작하여 1월 5일 밤까지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 스페인에서는 주현절 이브에 많은 사람들이 성모상, 아기 예수상, 동방박사 모습 등을 메고 행진을 한다. 어떤 곳에서는 거위에게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행진토록 하고 있다. 거위는 물론 그날 저녁으로 요리해서 얌얌일 경우가 많다.

 

주현절 이브에 스페인의 마드리드 거리를 행진하는 거위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