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로마제국 집중분석/HRE 더 알기

신성로마제국의 첫 황제 오토 1세

정준극 2009. 7. 20. 23:07

신성로마제국의 첫 황제 오토 1세

 

오토 1세 기마상

 

새로운 로마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샬레마뉴 대제는 자기의 후임으로 유일한 아들인 루이(778-840)를 지명하였다. 루이는 신앙심이 대단히 깊었다. 사람들은 그를 경건자(The Pious)라고 불렀다. 그러한 루이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프랑크 왕국의 왕을 지내다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들이 내전을 방불케 하는 권력다툼을 벌였다. 샤를르마뉴에 의해 확장된 제국은 산산조각으로 붕괴되었으며 따라서 정치적인 공백 기간이 지속되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교회가 등장하였다. 가톨릭교회는 혼란한 정세를 타개하기 위해 교회라는 권위를 앞세워 여러 나라의 군주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유럽은 이른바 암흑시기(Dark Age)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샤를르마뉴의 통치 이전의 분열시대로 돌아간 것이다. 특히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서로 적대하며 반목에 빠졌다. 이러한 때에 독일에서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났다. 하인리히 1세(876-936)였다. 하인리히 1세는 독일의 통일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에 등장하는 하인리히(헨리)왕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하인리히의 못다 이룬 꿈을 완성시키고자 노력한 인물이 하인리히의 아들 오토 1세(912-973)였다.

 

오토 1세에게 복종하는 군주들

 

오토 1세는 옛날 샤를르마뉴 대제가 대업을 이루었던 유럽의 여러 지역을 재통일코자 했다. 한편, 당시 교황 요한 12세는 혼돈 속에 있는 이탈리아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누군가의 힘을 빌리고자 했다. 교황 요한 12세는 이탈리아의 왕인 베렝가와 이탈리아의 헤게모니를 누가차지하느냐는 쟁탈전을 치루는 중이었다. 교황은 독일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는 오토 1세에게 ‘만일 베렝가를 물리치고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해 준다면 로마제국의 황제라는 타이틀과 권세를 주겠다’고 제안하였다. 오토 1세는 베렝가와 전투를 벌여 그를 패배시켰다. 오토 1세는 교황이 약속한 대로 962년 2월 로마제국을 계승하는 황제로서 대관식을 가졌다. 그리하여 샤를르마뉴 대제에 의해 기반이 닦여진 제국은 오토 1세에 의해 장엄하게 부활하였다. 샤를르마뉴에 의해 출범한 제국은 불과 27년만에 막을 내렸지만 오토 1세에 의한 유럽대제국은 그후 9백년 이상이나 존속하였다. 오토 1세는 세계의 역사를 새로 쓰게 만든 사람이었으며 훗날 합스부르크 왕조는 그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신성로마제국이라는 타이틀을 정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오토 2세때부터였다.

 

베를린의 동물원(Zoologische Garten)에 있는 오토 1세 기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