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로마제국 집중분석/HRE 더 알기

합스부르크의 루돌프 1세 등장

정준극 2009. 7. 20. 23:11

합스부르크의 루돌프 1세 등장

 

1250년 프레데릭 2세가 세상을 떠난후 슈타우펜 왕조에서는 더 이상 독일 국왕을 맡을 인물이 없었다. 독일의 영향력 있는 공작들이 이미 1246년에 장래를 생각하여 한두명의 독일국왕 후보를 선출해 놓았지만 그렇다고 결정적으로 독일국왕이 될 인물을 선출하지는 못하고 시간만 보냈다. 그러한 기간이 1273년까지 계속되었다. 이 기간을 Inter-regum(인터레굼: Zwischen-herrschaft; 공위시대) 라고 부른다. 이 기간 동안 제국의 권위는 상당히 빛을 잃었다. 반면, 각 나라의 군주들은 더욱 독립적인 권한을 행사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1273년 합스부르크 가문의 루돌프 1세가 독일 왕에 선출되었다. 루돌프 1세는 독일 왕에 선출되고 이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대관식을 가졌지만 사실상 유럽 전역에 걸친 대제국을 통치하기란 어려웠다. 각 지역마다 맹주들이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돌프 1세는 우선 자기의 영토에 기반을 두고 세력을 키워나가지 않을수 없었다. 영토는 곧 권세였다. 1282년 루돌프 1세는 오스트리아와 슈티리아를 자기의 아들들에게 상속하였다.

 

 올로무츠 성단의 루돌프 1세 스테인드 글라스

 

이러한 상황은 룩셈부르크가문의 헨리7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 대관식을 가진 이후에 특히 두드러졌다. 헨리7세 이후의 독일 왕이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들은 모두 자기의 영토에 크게 의존하였다. 이를 하우스마하트(Hausmacht)라고 불렀다. ‘가문의 힘’이라는 뜻이다. 비텔스바흐의 루이 4세(국왕 1314: 황제 1328-1347)은 바바리아의 영토에 의존하였고 헨리 7세의 손자인 룩셈부르크의 샤를르 4세는 보헤미아의 영지를 근거로 권세를 확장하였다. 이렇듯 각국의 왕들이 영토를 확장하는 것은 결국 신성로마제국의 영토가 확장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군주들은 영토 이득이 많기 때문에 영토 확장에 분주하였다. 영토를 가진 군주는 그만큼 법적인 권세를 가졌다. 그러나 한가지 주목할 것은 각국의 군주들이 비록 제국 내에서 개별적으로 법을 집행하는 권세를 가졌다고 해도 법을 제정하는 권세는 가지지 못했다. 그러한 상황은 15세기경까지 계속되었다. 당시에는 일반적인 법의 적용을 관습법에 의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 이 시기에 영토를 소유한 각국은 근대적인 국가로의 모습으로 변천되어 갔다. 특히 바바리아와 같이 종전부터 독일 민족이 국가를 형성해온 지역에서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졌다.

 

독일 슈파이어 성당의 루돌프 1세 석관 상단 조각. 아니, 왜 이렇게 갑자기 늙으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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