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로마제국 집중분석/HRE 더 알기

독일 왕 선출하기

정준극 2009. 7. 20. 23:13

독일 왕 선출하기

 

신성로마제국의 역사에 대하여는 이만 줄이기로 하고 이제는 독일왕을 어떻게 선출하는지에 대하여 일고(一考)코자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신성로마제국에 소속되어 있는 독일의 여러 제후국들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후보로 선출한 사람이 독일 왕이다. 독일 왕은 선출된 이후 로마로 가서 교황으로부터 대관식을 가져야 비로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라는 타이틀로 불리게 된다. 물론, 개중에는 교황과의 사이가 서먹하여서 로마에 가서 대관식을 갖지 않고 스스로 황제로 칭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교황으로서도 독일 왕으로 선출된 사람이 마땅치 않으면 황제 대관식을 미루는 경우가 있었다. 어쨌거나 ‘독일 왕은 곧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다.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 독일왕(로마 왕)은 로마의 바티칸에 와서 교황에 의해 대관식을 가져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부를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로마 왕(Rex romanorum)으로 선출되어야 한다. 로마 왕은 독일 왕과 같은 의미이다. 초기에는 다섯 명의 대표적 부족대표들이 로마 왕을 선출했다. 로레인의 살리 프랑크(Salian Franks) 부족 대표, 프랑코니아의 리푸아리아 프랑크(Ripuarian Franks) 부족 대표, 작소니 부족 대표, 바바리아 부족 대표, 슈봐비아(Swabia) 부족 대표 등이었다. 그 후에는 주요 왕국의 군주나 주교들로 구성된 사람들이 로마 왕을 선출토록 했다. 이들을 선제후(選帝侯: Kurfürsten)라고 불렀다. 선제후단은 1356년 보헤미아 왕인 샤를르 6세에 의해 공식적으로 구성되었다. 원래 선제후단은 7명으로 구성되었다. 라인팔라틴 백작, 보헤미아 왕, 작소니 공작,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쾰른 대주교, 마인츠 대주교, 트리어(Trier)대주교였다. 여기에 바바리아 공작이 30년 전쟁 기간중에 추가되었다.

 

로마 왕(독일 왕)을 선출하는 선제후 모임 

 

이렇게 하여 선출된 로마 왕은 로마로 가서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대관식을 받는다. 대체로 이러한 절차는 몇 년이나 걸린다. 내란을 제압해야 한다든지 외세의 침략을 물리친다든지 또는 교황과의 사이가 여의치 않은 등 여러 가지 사정 때문이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 교황에 의해 정식으로 대관식을 가졌던 마지막 인물은 1530년의 샤를르 5세였다. 그 이후에는 거의 로마 교황으로부터 대관식을 갖지 않고 황제의 타이틀을 사용하였다. 황제는 18세가 넘은 건강하고 모범적인 성격의 인물이어야 한다. 그의 4대 선조까지 모두 귀족 출신이어야 한다. 후보자는 가톨릭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관례상 당연히 가톨릭이어야 했다. 또한 반드시 독일인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샤를르 5세와 카스티유의 알폰소는 독일인이 아니었다. 1519년 후보에 올랐던 영국의 헨리 8세도 독일인이 아니었다. 아니, 그 카사노바 둘째 가라면 서러울 헨리 8세가 선제후 후보로 올랐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17세기에 이르러 후보자들은 일반적으로 제국 내에 영지를 갖고 있었다. 후보였던 프랑스의 루이 14세도 근간에 독일로부터 획득한 알자스-로렌을 제국 내의 영토로 간주하였다. 어떤 경우에도 황제는 제국과 관련한 칙령을 선포하거나 제국을 독자적으로 통치할수 없다. 제국의회의 동의가 있어야 했다. 제국의회는 15세기 이후에 설치되어 제국의 입법기구로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