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기념상/링슈트라쎄 기념상

홀로코스트 기념물

정준극 2009. 7. 22. 21:13

유덴플라츠의 홀로코스트 기념물

 

유덴플라츠(Judenplatz)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물 (Mahnmal fur die 65,000 ermorderten osterreichschen Juden und Judinnen der Shoa). 기념물의 오리지널 명칭은 <쇼와에 죽임을 당안 6만5천명 오스트리아 남녀 유태인을 위한 기념비>이다. 쇼와(Shoa)라는 말은 나치에 의한 유태인 인종청소, 종교박해 등을 뜻하는 것이다.

 

1938년 히틀러가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합방한 이후부터 1945년 2차 대전이 막을 내리기 직전까지 오스트리아에 살고 있던 유태인 중에서 6만 5천명이 나치에 의해 희생되었다. 일부는 오스트리아에서 체포되어 고문에 못이겨 죽었으며 더러는 더 이상 버틸수가 없어서 자살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 유태인은 강제로 끌려나와 기차에 태워 강제수용소로 가서 가스실에서 죽임을 당했다.

 

다하우 강제수용소 화장실에서 시체를 용광로에 밀어 넣고 있는 장면 

 

1988년,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시간에 비엔나 시내 한복판의 알베르티나플라츠에서는 알프레드 흐르들리카가 제작한 '전쟁과 파치슴을 경고하는 기념물'(Mahnmal gegen Krieg und Faschismus)이 제막되었다. 여러 파트로 구성된 이 조형물의 한 파트는 땅 바닥에 엎드려서 마치 목숨을 살려달라는 듯 애걸하는 유태인 노인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유태인들은 땅 바닥에 엎드려 있는 유태인 노인의 모습이 유태인을 모욕하는 것이라며 분개하였다. 오스트리아의 유태인들을 대표한 시몬 비젠탈(Simon Wiesenthal)은 흐르들리카의 조형물에 항의하는 뜻으로 옛부터 유태인들의 정착지였던 시내 중심지역의 유덴플라츠(유대광장)에 홀로코스트에 의해 희생당한 유태인들을 추모하는 기념 조형물을 별도로 설치키로 했다. 비엔나 시 당국도 이같은 계획을 적극 후원키로 했다. 조형물 설계에 대한 국제 공모가 있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영국의 조각가인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의 시안이 최종 선정되었다. 장방형으로 책을 쌓아 놓은 형태의 조형물이었다.

 

책의 등을 안으로 향하게 꽃아 놓아 책의 제목을 알수 없다.

 

라헬 화이트리드는 그의 조형물을 '무명의 도서관'(Nameless Library)라고 불렀다. 수많은 똑같은 책을 도서관의 서가에 차곡차곡 쌓아 놓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책은 유태인을 상징한다. 실제로 유태인들은 책, 즉 경전에 의존하여 생활한다. 경전은 그들에게 있어서 생활의 일부이다. 조형물에 표현되는 책들은 책의 등(Spine)이 안쪽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어떤 책인지 제목을 알수 없다. 또한 책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았기 때문에 열어 볼수도 없다. 설계자 화이트리드는 '똑같은 모습의 책의 반복은 무한한 희생자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무명의 도서관'은 높이가 3.8미터이며 가로가 10미터, 세로가 7미터이다. 조형물의 양쪽에 두개의 문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손잡이는 없다. 자유롭게 들어가고 나올수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물론 제막된 이래 지금까지 한번도 문을 열어본적은 없다고 한다.

 

 테레지안슈타트 강제수용소의 화장실(火葬室) 용광로

               

원래 계획은 1938년 11월 9일의 역사적인 크리슈탈나하트(Kristallnacht) 58주년을 기념하여 1996년 11월 9일 제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또는 미학적 논란이 끊이지 않아서 연기를 거듭하게 되었다. 더구나 공사를 하는 중에 지하에서 로마 유적이 발굴되어 또 한번 진통을 겪어야 했다. 결국 2000년 10월 25일, 오스트리아 국경일의 하루 전날 제막되었다. 오스트리아의 토마스 클레슈틸(Thomas Klestil) 대통령, 비엔나 시장인 미하엘 호이플(Michael Haupl)을 비롯한 수많은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거행된 제막식이었다. 베를린에 '유럽의 유태인 살해 기념물'(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이 완성되기 5년전이었다. 유덴플라츠의 홀로코스트 기념 조형물 하단에는 독일어, 히브리어, 영어로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In commemoration of more than 65,000 Austrian Jews who were killed by the Nazis between 1939 and 1945. (번역하면, <1939-1945년간 나치에 의해 죽임을 당한 6만5천명 이상의 오스트리아 유태인들을 기념하여>이다.)

 

가장 악명 높았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정문. Arbeit Macht Frei(자유를 얻으려면 노동을 하라)고 적혀 있다.

 

유덴플라츠의 홀로코스트 기념 조형물에는 유태인들이 끌려가 죽임을 당한 강제수용소들의 명단이 촘촘이 적혀 있다. 이곳들을 잊지 말자는 뜻이리라. Auschwitz, Belzec, Bergen-Belsen, Brcko, Buchenwald, Chelmno, Dachau, Flossenburg, Gross-Rosen, Gurs, Hartheim, Izbica, Jasenovac, Jungfernhof, Kaiserwald, Kielce, Kowno, Lagow, Litzmannstadt, Lublin, Majdanek, Maly Trostinec, Mauthausen, Minsk, Mittelbau/Dora, Modliborzyce, Natzweiler, Neuengamme, Nisko, Opatow, Opole, Ravesbruck, Rejowiec, Riga, Sabac, Salaspils, Sachsenhausen, San Sabba, Sobibor, Stutthof, Theresienstadt, Trawniki, Treblinka, Wiodawa, Zamosc 이다. 제막식에 참석했던 어떤 인사는 나치 강제수용소가 이렇게 많은 줄을 몰랐었다고 말했다.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 수감된 유태인들. 책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도서관의 서가(書架)와 같다. 그러고보니 유덴플라츠의 쇼와 기념물처럼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