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4-2
마리엔조일레(Mariensäule: 마리아 탑)
30년전쟁에서 비엔나 위기 탈출 기념
암 호프 교회와 마리아탑(마리엔조일레)
암 호프 광장의 한 가운데에 있는 탑이 마리엔조일레(Mariensäule)이다. 조일레(Säule)라는 단어는 기둥(칼럼 또는 필라)을 말하지만 편의상 탑이라고 번역한다. 그래서 마리엔조일레는 마리아탑이라고 부른다. 그라벤에 있는 페스트조일레(Pestsäule)를 페스트탑(Plague Pillar)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리아탑(마리엔조일레)은 30년 전쟁(1618-1648)에서 비엔나가 개신교군(스웨덴)의 공성으로부터 구원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우리는 30년 전쟁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지만 30년 전쟁의 당사자였던 오스트리아로서는 역사적으로 결코 잊을수 없는 사건이었다. 마치 우리나라가 일제 36년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다. 청동으로 제작한 마리아탑은 1667년 페르디난트 3세 황제 때에 이탈리아의 카를로 마르티노 카를로네(Carlo Martine Carlone)가 시작하여 카를로 카네발레(Carlo Canevale)가 완성하였다. 성모 마리아는 네모난 기단 위에 높이 서 있다. 네모난 기단에는 각 면에 어린 천사들이 용, 사자, 뱀, 바질리스크를 칼로 제압하는 조각이 설치되어 있다. 어린 천사들이 제압하고 있는 용은 기아를, 사자는 전쟁을, 뱀은 불신을, 바질리스크는 역병을 의미한다. 바질리스크는 닭과 두꺼비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괴물로서 누구든지 직접 보게되면 죽게 된다고 한다. 마리엔조일레는 1638년 뮌헨에서 주조된 것을 모델로 하여 만들었다. 기아, 전쟁, 불신, 역병은 성모 마리아가 참신도로부터 보호해주는 항목들이다.
19세기 초반의 암 호프. 가운데의 마리엔조일레. 칼 벤첼 차지크 그림
30년 전쟁이 한창이던 1646년, 스웨덴 군대가 북쪽으로부터 진격하여 비엔나를 포위하고 공성하였다. 비엔나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페르디난트 3세는 성모에게 간구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비엔나를 포위하고 있던 스웨덴 군대가 안개처럼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왜 스웨덴 군대가 급작스럽게 철수하였는지는 지금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무튼 이로서 비엔나는 성모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페르디난트 3세는 이를 기념하여 성모 마리아를 숭앙하는 기념물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마리엔조일레는 너무도 아름답게 제작되었으므로 복사품을 만들어 보관키로 했다. 현재 복사품은 북부 오스트리아의 베른슈타인(Wernstein)성에 세워져 있다.
마리아탑의 하단, 칼과 방패와 갑주로 무장한 네명의 어린 천사들이 괴수들을 제압하고 있는 모습. 어린 천사(케루빔)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푸토(Putto)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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