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35
프리드리히 슈미트 플라츠와
건축가 프리드리히 폰 슈미트(Friedrich von Schmidt)
프리드리히 슈미트 플라츠는 위대한 건축가인 프리드리히 폰 슈미트(1825-1891)을 기념하여서 붙인 이름이다. 슈미트는 19세기 비엔나에서 최고의 건축가로서 대표적인 작품은 라트하우스(시청)이다. 프리켄호펜(Frickenhofen)에서 태어난 슈미트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후 1845년부터 쾰른대성당의 조각팀원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쾰른에서 15년간을 일했다. 1848년 도편수(건축장)가 되었고 이듬해에는 국가에서 시행하는 건축사 시험에 합격하여 건축사가 되었다. 1858년 가톨릭으로 개종한 그는 밀라노에 가서 건축학교수가 되었으며 산탐브로지오(San'Ambrogio)대성당의 복원작업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러다가 1859년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비엔나로 돌아왔다. 그는 비엔나미술아카데미에서 1862년까지 교회건축학을 강의했다. 1888년 그는 마침내 프란츠 요셉 황제로부터 궁정건축가로 임명을 받았다.
프리드리히 폰 슈미트가 설계한 라트하우스
슈미트는 비엔나에서 처음에는 교회건축에 중점을 두었다. 성라사로교회(St Lazarus), 브리기테나우성당 등은 그의 초기 작품이다. 오늘날 베토벤플라츠 옆에 있는 아카데미 김나지움 건물도 그의 작품이다. 원래 그 자리에는 야외극장이 있었으나 화재로 폐허가 되었었다. 그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독일에서 여러 고틱양식의 건물들을 건축했다. 그는 터키의 제2차 비엔나 공성 이후, 그는 1872년 성슈테판성당의 복구작업을 책임 맡아 남탑의 첨탑을 새로 복원하였다. 클로서터노이부르크 수도원 교회의 보수작업도 그의 몫이었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라트하우스(시청)이다. 가운데에 높은 탑을 두고 양쪽으로 두 개씩의 작은 탑을 둔 고틱 건물이다. 슈미트표 고틱 양식의 특징은 무조건 높이 올리는 첨탑을 옆으로 안배한 것이다. 라트하우스 내부에는 큰 안뜰을 두었으며 이밖에도 여섯 개의 작은 안뜰을 두었다. 비엔나 시는 라트하우스 앞 슈미트를 기념하여 동상을 세웠다. 그의 아들인 하인리히는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의 건축감독관이었으며 뮌헨에서 중세건축에 대한 강의를 했다. 하인리히는 루마니아 뷰카레스티의 성요셉대성당과 바두즈대성당(Vaduz Cathedral)을 설계했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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