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일화/그리고 종묘

영녕전을 지은 뜻

정준극 2009. 8. 4. 22:27

영녕전을 지은 뜻

 

 

영녕전

 

조선 초기에는 종묘에 정전 한 채만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신위를 모셔야 하는 신실이 모자라게 되었다. 당시의 원칙은 천자의 나라인 중국은 종묘에 7개의 신실을 두어 신위를 모시며 제후의 나라인 조선은 그보다 규모가 작아야 하기 때문에 5개의 신실을 두어야 했다. 그래서 입주 대상자가 증가했지만 함부로 종묘의 정전을 늘일수가 없었다. 신위를 5신실에 모시는 오묘제(五廟制)는 조선왕조를 일으킨 태조와 현재 왕의 4대 조상을 모시는 제도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태조의 4대조까지 왕으로 추존하여 그 신위들을 모시게 되었다. 세종 때에 2대 정종의 신위를 정전에 모셔야 할 입장이 되자 신실이 부족하게 되었다. 부족한 신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 송나라의 제도를 참고하여 사당을 하나 더 짓고 정전에 있던 일부 신위들을 옮기기로 했다. 그래서 정전 옆에 새로 지은 별묘가 영녕전(永寧殿)이다. ‘왕가의 조상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라’는 뜻이다. 영녕전의 모습은 정전과는 달리 가운데 부분의 지붕이 높게 만들어졌다. 태조의 4대 조상들을 모신 곳이므로 지붕이 높다.

 

영녕전의 신문  

영녕전 전경  

영녕전의 동경색 

영녕전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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