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44
헤쓰가쎄와
제국의 장군 하인리히 폰 헤쓰(Heinrich von Hess)
오스트리아 제국의 유명한 장군인 하인리히 폰 헤쓰(1788-1870)의 공식 이름은 하인리히 헤르만 요셉 프라이헤르 폰 헤쓰(Heinrich Hermann Joseph Freiherr von Hess)이다. 제국 황제로부터 남작에 준하는 작위를 받았기 때문에 프라이헤르라는 단어가 붙었다. 약관의 17세에 제국군에 입대한 그는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여 젊은 나이에 이미 장교의 반열에 올라갔다. 그는 아슈페른과 바그람 전투에 중령으로서 참전하였으며 이들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워 총사령부에 근무하게 되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엘바에서 탈출하여 다시 권세를 잡게 되자 그는 슈봐르첸버그 장군의 휘하에 들어가 제국군의 일원으로서 출전하였다. 그후에는 이탈리아 전선의 라데츠기 장군 휘하에서 지휘관으로서의 실무경험을 쌓았다. 1842년 그는 드디어 연대장이 되어 제49보병연대의 지휘관이 되었다. 49보병연대는 오스트리아제국군에서 가장 용감한 정예부대로서 지휘관인 헤쓰 장군의 이름을 따서 헤쓰연대라고 불렀다. 그후 다시 레데츠기 장군의 휘하에 들어간 그는 1849년의 저 유명한 노바라(Novara)전투에 참가하여 빛나는 전과를 거두었다. 그리하여 장군으로 진급하였으며 황제로부터 남작에 준하는 프라이헤르 작위를 받았다. 헤쓰장군은 오스트리아를 위하여 전장을 누빈 영웅이었다. 그는 비엔나 중앙공동묘지의 14그룹 A, 33번에 안장되었다. 헤쓰는 두 번 결혼하였다. 처음에는 카타리나였고 두 번째는 안나 딜러(Anna-Diller)였다. 안나-딜러는 누이의 딸이었다. 자녀는 다섯명을 두었으나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났다. 헤쓰 장군은 자기의 손자조카가 되는 프리드리히를 양자로 맞아 들였다.
노년의 하인리히 폰 헤쓰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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