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雜祥)과 무단청(無丹靑)
종묘의 건물들에는 일반 궁궐에서 볼수 있는 단청이 일체 없다. 이른바 무단청! 관례적으로 단청을 입힐수 있는 곳은 궁궐과 사찰뿐이다. 단청은 어찌하여 입히는가?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목재보호, 두번째는 위엄표현이다. 왕이 사는 궁궐과 부처님을 모신 절에 단청을 입히는 것은 이상의 두가지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엄숙한 종묘에는 화려한 단청이 금물이다. 그대신 대부분 기둥은 붉은 색이 돈다. 붉은 색은 악귀를 쫒아내는 색이다. 악귀가 못들어오게 하기 위한 또 다른 비법은 지붕의 석가래에 잡상을 두는 것이다. 종묘가 어떤 종묘인데 감히 무슨 악귀가 놀러온다고 잡상까지 세우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있으면 있는대로 보기에 좋으니 설치해 놓은 것 같다. 정전과 영녕전에는 당연히 잡상이 있다. 삼장법사와 손오공과 저팔계와 사오정 등이 한줄로 늘어서 있는 것이다. 유교의 제례를 엄격히 따지는 곳에서 웬 불교적 잡상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종묘의 입구인 외대문에도 잡상들이 늘어서 있다. 잡상은 홀수로 설치한다. 잡상이라고 하니까 잡동사니 형상(像)들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여러가지 상서로운(祥) 조형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잡상(雜像)이라고 기록한 경우가 많다. 어떤 것이 맞는가?
무단청의 멋
붉은 색의 영녕전의 기둥들
영녕전 지붕 위의 잡상. 네개다. 대체로 궁궐에서는 홀수로 세우는데 여긴 짝수이다. 1908년의 사진자료에는 영녕전의 잡상이 분명히 다섯개 였다고 한다. 복구하면서 어처구니없게 하나를 빠트린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잡상을 다른 표현으로는 어처구니라고 한다. 맷돌의 손잡이도 어처구니라고 한다. 손잡이가 없이 맷돌을 돌리는 일은 과연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종묘 정문인 외대문의 잡상. 여긴 잡상이 다섯개나 된다. 우리말에 어처구니라는 표현이 있다. 혹자는 맷돌의 손잡이를 어처구니라고 주장한다. 혹자는 지붕 위의 잡상들을 어처구니라고 한다는 주장이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은 황당하다는 뜻이다. 있어야 할 곳에 없으니 황당하다는 뜻이다. 멧돌을 돌려야 하는데 손잡이가 없으니 황당하다는 뜻이며 지붕 위에 잡상들을 얹어야 하는데 깜빡 잊고서 올리지 못해서 황당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어처구니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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