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50
칼스플라츠와 칼스키르헤(칼광장과 칼교회)
(Karlsplatz- Karlskirche)
칼스키르헤. 아름다운 바로크 건물이다. 현관부분은 그리스 신전을 본따서 만들었다.
칼스플라츠는 1구 인네레 슈타트와 4구 뷔덴(Wieden)의 경계에 있다. 칼스플라츠라고 하면 비엔나에서 가장 번화한 지하철역을 말하기도 하지만 실은 칼스키르헤(칼교회)의 앞에 있는 광장을 말한다. 칼스플라츠의 주변에는 칼스키르헤(칼교회), 비엔나 예술가회관(Künstlerhaus), 비엔나 악우회(Musikverein), 비엔나 박물관, 비엔나 공과대학교(TU Wien), 오토 바그너의 칼스플라츠 기차역사(Otto-Wagner-Pavillon), 조금 떨어져서 제체시온(Wiener Secession) 등의 유서 깊은 건물들이 많기 때문에 비엔나 관광의 1번지이다. 칼스플라츠는 19세기 비엔나강의 유로(流路)를 개선할 때에 조성된 광장이다. 칼스플라츠라는 명칭은 1899년 칼 6세(샤를르 6세) 황제를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칼 6세(재위: 1711-1740)는 유명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아버지로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는 샤를르 6세(칼 6세)이지만 오스트리아 대공으로서는 칼 3세라고 부른다. 칼 6세의 시절인 1713-1714년에 비엔나에는 뜻하지 아니한 페스트가 창궐했다.
칼스플라츠와 칼스키르헤, 비엔나공과대학교. 비엔나박물관 등. 칼스키르헤의 두 원주에는 성보로메오의 일생을 부조로 만들었다.
칼 6세는 페스트가 물러간 것을 감사하며 또한 앞으로 페스트가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을 기원하여 1716-1737년간 칼스키르헤를 건축했다. 그러므로 칼 6세가 칼스키르헤를 건축했기 때문에 칼교회라고 부른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실은 자기와 이름이 같은 성자 칼 보로메오(Carl Borromeo: Karl Borromäus)에게 봉헌한 교회이기 때문에 칼교회라고 부른다. 칼 보로메오는 칼교회의 수호성인이며 역별의 성인이다. 칼스키르헤는 비엔나에서 가장 중요한 바로크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건축은 1716년에 시작하였다. 거장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얼라흐(1656-1723)가 건축책임을 맡았다. 그러다가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인 요제프 에마누엘 폰 에얼라흐가 1723년부터 1737년의 10년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완공했다. 칼스키르헤를 처음에 지을 때는 도시계획을 고려하여 호프부르크의 미하엘러플라츠에서 시작한 아우구스티너슈트라쎄와 일직선이 되는 선상에 지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칼스플라츠를 조성할 때에는 그때문에 상당한 난관을 겼었다.
19세기의 칼스키르헤와 그 옆에 흐르던 비엔나강(Wien Fluss). 비엔나강은 운하로서 물길을 바꾸었으며 덕분에 칼스키르헤 앞에 넓은 광장이 조성되었다. 그것이 현재의 칼스플라츠이다.
칼스키르헤의 앞 광장에는 커다란 둥근 풀이 있다. 마치 어린이용 얕은 수영장과 같은 구조물이다. 가운데에 있는 현대조각은 헨리 무어(Henry Moore)의 작품이다. 그 옆으로 비엔나 공과대학교(TU Wien)의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칼스키르헤와 공과대학교 사이에는 레쎌파르크(Resselpark)라는 작은 공원이 있다. 비엔나 공과대학교 교수였으며 발명가인 요셉 레쎌(Joseph Ressel)을 기념하는 공원으로 레쎌의 기념상이 서 있다. 공원의 다른 쪽에는 역시 공학자인 지그프리트 마르쿠스(Siegfried Marcus)와 요셉 마더슈퍼거(Josef Madersperger)의 흉상들이 세워져 있다. 칼스키르헤 남쪽에는 비엔나 박물관(Wien Museum)이 있다. 전에는 비엔나시 역사박물관(Historisches Museum der Stadt Wien)이라고 부르던 박물관인데 새로 건물을 짓고 자리를 옮겼다. 비엔나 공과대학교와 함께 신학교(Evangelischen Schule)도 있다. 칼스키르헤는 신학교의 전속교회이기도 하다. 신학교의 학생들은 칼스키르헤에서 수련을 한다.
비엔나기술대학교(TU Wien)
칼스키르헤의 동쪽, 전차길 방향으로는 요한네스 브람스의 기념상이 있다. 브람스는 현재 비엔나 공과대학교의 옆 건물에서 지낸 일이 있으며 남쪽으로 길건너에 있는 비엔나 악우회에 사무실을 가지고 도서정리를 하면서 지냈다. 한편, 칼스키르헤의 서쪽 바로 옆에는 위대한 작곡가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의 기념상이 있다. 그리고 칼스키르헤의 뒤편에 있는 성칼 보로메우스가 지내던 건물이 있으며 그 건물의 정면에 칼 보로메우스의 기념상이 있다. 그리고 칼스플라츠에 인접한 북쪽의 큰길가에는 오토 바그너의 유겐트슈틸 건물인 오토-바그너-파빌론이 있다. 쌍둥이 건물인 오토-바그너-파빌론은 종전에 칼스플라츠 전차역사(Station Karlsplatz der Wiener Stadtbahn)로서 주로 프란츠 요셉 황제가 사용했다.
비엔나 악우회. 매일 저녁 요한 슈트라우스-모차르트 연주회가 열린다. 새해 첫날에는 비엔나신년음악회가 열리는 곳이다.
칼스플라츠의 주변에는 비엔나 악우회(Wiener Musikvereins)가 있으며 그 건너편에는 예술가회관(Künstlerhaus)이 있다. 상업학교(Handelsakademie)도 칼스플라츠 주변에 있다. 국립오페라극장(슈타츠오퍼)쪽에 있는 카페 무제움(Cafe Museum)도 지나칠수 없는 곳이다. 서쪽으로 가면 황금양배추처럼 생긴 돔이 있는 유명한 비엔나 제체시온건물이 있다. 그리고 더 걸어가면 나슈마르크트(Naschmakrt)가 나오며 그곳에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이 있다. 칼스플라츠 지하철역 일대는 슈베덴플라츠의 지하철역과 함께 마약장이들이 진을 치고 있는 장소가 되어서 밤늦게 지나가기가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경찰은 칼스플라츠를 아예 보호구역(Schutzzone)으로 삼고 마약단속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쉽지는 않다고 한다. 마약퇴치 운동에는 뷔드너하우프트 슈트라쎄에 있는 개신교 신학교 학생들도 적극 동참하였다. 그래서 마약상들이나 마약소비자들은 경찰뿐 아니라 신학생들과도 신경전을 벌어야한다. 비엔나시는 칼스플라츠에 대한 오명을 씻고자 2004년 ‘쿤스트플라츠 칼스플라츠’(Kunstplatz Karlsplatz)라는 사업을 펼쳤다. 칼스플라츠의 공원에서 음악회를 개최하고 지하철역 안에서는 미술전을 개최하는 등의 예술광장을 조성했던 것이다.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
비엔나 제체시온
J.B. 에어라흐는 칼스키르헤의 정면의 중앙부분을 그리스의 사원을 본 따서 설계했다. 건물의 양쪽에 날개처럼 세워진 기둥은 조각가 로렌조 마티엘리(Lorenzo Mattielli)의 작품이다. 로마에 있는 트라얀(Trajan) 신전의 원주 기둥을 모델로 했다. 두 개의 타워 파빌리온은 로마의 바로크 스타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현관 위에 있는 돔은 아들인 J.E. 에어라흐가 원래의 설계보다 낮게 만든 것이다. 그래도 아직 상당히 높이 솟아있다. 교회 외부의 조각들은 대부분 궁정조각가인 칼 구스트브 헤리우스(Carl Gustav Heraeus)의 작품이다. 성보로메오를 주제로 한 성상들이 여러개 있다. 현관 상단의 박공에 있는 조각상은 4명의 덕목(Cardinal virtues)을 표현한 것이다. 그 위에는 성보로메오가 자리 잡고 있다. 양쪽의 나선형 기둥에는 성보로메오의 일생을 부조로 만들어 놓았다. 옛날 예루살렘 성전의 앞에 서 있었다는 보아즈(Boaz)와 야힘(Jachim)을 연상케 하는 기둥들이다. 이 기둥들은 ‘헤르쿨레스의 기둥’(Pillars of Hercules)라고도 부른다. 제국의 권세를 상징하는 웅대한 것이다. 현관 양 옆에는 구약과 신약에 등장하는 천사들이 각각 늠름하게 서 있다. 두개의 기둥과 천사들의 조각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칼스키르헤를 방문한 보람이 있다. 하지만 내부에는 더 볼만한 것들이 많이 있다.
성보로메오가 성모와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 역병으로부터의 치유를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프레스코화.
교회내부의 돔 프레스코는 잘츠부르크 출신의 요한 미하엘 로트마이르(Johann Michael Rottmayr)의 작품이다. 성보로메오가 성모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께 역병의 퇴치를 간구하는 장면이다. 이 대작의 주변에는 네가지 덕목을 비유로 한 그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사이드 채들들에 있는 프레스코는 다니엘 그란(Daniel Gran)의 솜씨이다. 중앙제단 높이 걸려 있는 방사선 모양의 황금 조각은 유일신인 여호와를 상징한 것이며 부드러운 노란 색은 여호와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중앙제단의 성화는 성보로메오가 승천하는 장면으로 페르디난트 막시밀리안 브로코프(Ferdinand Maximilian Brokoff)의 작품이다. 칼스키르헤는 피셔 폰 에어라흐 부자의 걸작중 걸작이다. 아마 쇤브룬 다음으로 손꼽을수 있는 작품일 것이다. 칼스키르헤는 또한 터키와의 전쟁이 승리로 끝났음을 감사하는 ‘삶의 기쁨’(Joie de vivre)를 표현한 것이다.
중앙제단의 여호와를 상징하는 조형물. 은은하고 부드러운 황금색은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가운에는 삼위일체를 상징했으며 히브리어로 야훼라고 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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