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56
로브코비츠플라츠(로브코비츠 광장)
로브코비츠 궁전의 극장박물관
로브코비츠플라츠(Lobkowitzplatz)는 로브코비츠 궁전(Palais Lobkowitz) 앞에 있는 작은 광장이다. 로브코비츠 궁전은 비엔나 1구에 있는 시내궁전 중의 하나로 18세기 중반부터 보헤미아의 귀족인 로브코비츠 가문이 보유하고 있던 저택이다. 로브코비츠 궁전은 바로크 건축이지만 겉으로보면 수수한 모습이다. 하지만 내부는 화려하다. 로브코비츠 궁전의 상당부분은 현재 극장박물관이 차지하고 있다. 로브코비츠 궁전에서 가장 유명한 방은 나중에 에로이카 홀(Eroika Saal)이라고 부르게 된 연회장(Festsaal)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이 이곳에서 초연되었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교향곡 제3번인 일명 Eroica(영웅)을 이 저택의 주인이며 자기의 후원자인 프란츠 요셉 막시밀리안 폰 로브코비츠(Franz Joseph Maximilian von Lobkowitz) 대공에게 헌정하였다. 베토벤은 교향곡 ‘영웅’을 처음에 나폴레옹에게 헌정할 요량으로 표지에 ‘어떤 영웅에게 바치는 작품’라고 썼으나 그가 황제로 등극했다는 소식을 듣자 나폴레옹도 역시 속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탄 및 경멸을 하고 ‘어떤 영웅에게 헌정하는 작품’이라는 타이틀을 지워버렸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영웅 교향곡에 대한 에피소드의 진위를 떠나서 현재까지 역사적으로 분명한 것은 이 교향곡이 로브코비츠 대공에게 헌정되었다는 것이다.
베토벤이 영웅 교향곡을 헌정한 프란츠 요셉 막시밀리안 로브코비츠 대공
프란츠 요셉 막시밀리안 폰 로브코비츠(1772-1816) 대공은 계몽주의 황제인 요셉 2세의 치하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는 예술을 크게 애호하여 수많은 예술가들과 예술단체들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한 사람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경제적 어려움까지 겪었다고 하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비엔나 사교계의 유명한 여성인 패니 폰 아른슈타인(Fanny von Arnstein: 1758-1818)과 함께 오늘날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비엔나 악우회(Wiener Musikverein: 비엔나음악가동호인협회: Gesellsachaft der Musikfreunde in Wien)을 창설하였다. 그는 또한 Gesellschaft zur Förderung der Musikkultur in Böhmen(보헤미아음악문화진흥협회)를 창설하였고 비엔나극장연합회(Wiener Theater Unternehmungs-Gesellschaft)의 창설멤버였다.
패니 폰 아른슈타인 부인. 로브코비츠 대공과 함께 비엔나악우회(비엔나음악의 친구협회)를 창설하였다.
로브코비츠 궁전은 비엔나에서도 가장 오래된 시내궁전의 하나이다. 로브코비츠 궁전은 터키의 제2차 비엔나 공성이후에 건설된 몇 안되는 바로크 건물이다. 터키의 2차 공성이 끝난 후 부유한 귀족들은 궁전을 짓는 대신 군사목적을 위해 많은 투자를 했다. 원래 현재의 로브코비츠 궁전 자리에는 일반적인 건물이 있었다. 그 집은 1685년 제국마사(馬舍)책임자인 필립 지그문트 폰 디트리히슈타인(Philip Sigmund von Dietrichstein) 백작에게 팔렸다. 당대의 건축가인 조반니 피에트로 텐칼라(Giovanni Pietro Tencala)가 대대적인 보수확장 사업을 펼쳤다. 디트리히슈타인 백작은 그 자리에 원래 있었던 공중목욕탕 건물도 합병하여 그의 저택으로 확장하였다. 그후 이 저택은 몇 번에 걸쳐 주인이 바뀌다가 1745년 페르디난트 필립 폰 로브코비츠(Ferdinand Philip von Lobkowitz) 공자의 소유가 되었다. 로브코비츠 공자는 이 저택을 거장 J.B. 에어라흐와 J.E. 에어라흐 부자(父子)에게 위임하여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개조하였다. 베토벤을 후원한 로브코비츠 대공은 페르디난트 필립 폰 로브코비츠 공자의 아들이다. 베토벤은 로브코비츠 궁전에서 몇 차례에 걸쳐 연주회를 가진 일이 있으며 이곳에서 역사적인 ‘영웅’교향곡의 초연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로브코비츠플라츠 주변의 모습.
오늘날 로브코비츠 궁전 건물에는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 산하의 극장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비엔나 의회’(Congress of Vienna)가 여러 가지 행사와 무도회를 개최하는 곳도 로브코비츠 궁전이다. 제1차 대전이 끝난 이듬해인 1919년부터 1938년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할 때까지 로브코비츠 궁전은 체코슬로바키아 대사관이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비엔나의 알리앙스 프랑스 건물이었다. 1980년 로브코비츠 궁전은 오스트리아 정부의 소유가 되었다. 1991년,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마무리되자 극장박물관이 들어섰다.
극장박물관이 들어서 있는 로브코비츠플라츠의 팔레 로브코비츠. 마리아 칼라스 특별전시회를 열고 있었다. 2006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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