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58
막스 봐일러 플라츠와
화가 막스 봐일러(Max Weiler)
1990년의 막스 봐일러
화가이며 그래픽아티스트인 막스 봐일러(1910-2001)는 티롤 지방의 아브잠(Absam)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교사가 되기 위해 사범고등학교를 졸업했으나 미술가로서의 적성을 인식하고 비엔나의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유명한 칼 슈테러(Karl Sterrer)의 지도를 받으면서 현대화가로서의 자질을 쌓아갔다. 그에게 기회가 온것은 1936년이었다. 아직도 무명의 젊은 작가인 봐일러에게 학교장인 클레멘스 홀츠마이스터(Clemens Holzmeister)는 파리 만국박람회에 건조되는 오스트리아 채플에 전시할 그림을 그리도록 주선해 주었다. 봐일러는 채플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완성하였다. 그로부터 봐일러의 작품은 국제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1960년에 그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오스트리아 대표로 참가하였다. 그리고 1967년에는 몬트리얼에서 열리는 세계 박람회(엑스포)에 ‘풍경처럼’(Wie eine Landschaft: Like a Landscape)라는 작품을 출품하였다.
1941년 결혼식 사진. 왼쪽 끝 눈을 살며시 내려 감은 여인이 신부 게르트라우트 프로이너(Gertraud Freuner). 가운데는 주례를 본 신부
그의 창작력은 폭이 넓어서 판화, 유화, 수채화, 소묘뿐만 아니라 모자익, 유리작품, 프레스코, 도자기, 벽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제 봐일은 ‘오스트리아 현대미술의 장로(Doyen)'이라는 칭호를 듣게 되었다. 1961년 그는 오스트리아국가대상을 받았으며 1979년에는 명예예술상을 받았다. 그는 2001년 1월 29일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후, ’막스 봐일러 재단‘이 설립되었다.
막스 봐일러의 작품 오스트리아 우표에 수록된 '해바라기'
봐일러는 80세가 되는 1991년에 ‘교향곡처럼’(Wie eine Symphonie)라는 대작을 완성하였다. 가로 6.3m, 세로 5m의 대작이었다. 부제는 Homage a Mozart(모차르트에게 경의를 표하며)였다. 봐일은 잘츠부르크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 잘츠부르크 음악회장인 Festspielhaus를 건축한 사람이 바로 클레멘스 홀츠마이스터였다. 비엔나미술아카데미의 학장으로서 봐일을 파리 국제박람회에서 작품을 제작토록 주선해준 은인과 같은 사람이었다. 봐일러는 홀츠마이스터 교수와 평생을 친분을 유지하며 지냈다. 그리고 봐일러는 누구보다도 모차르트를 존경하였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사무국은 봐일러의 작품인 ‘교향곡처럼-모차르트에게 경의를 표하며’를 잘츠부르크 음악제가 열리는 곳에서 전시하고 싶어서 오래 동안 ‘막스 봐일 재단’과 교섭을 벌였다. 마침내 막스 봐일 재단은 그 작품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사무국에 영구임대키로 결정하여 2008년 여름에 작품을 인도하였다. 이 작품은 우선 칼 뵘 홀(Karl Böhm Saal)에 전시되며 그후에는 펠젠라이트슐레(Felsenreitschule)의 회랑에, 모차르트 생가에, 그리고 다른 행사가 있을 때에 전시할 계획이다. 막스 봐일러의 ‘교향곡처럼’은 현대에 있어서 음악과 회화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인스부르크 화실에서 작업중
인스부르크 화실에서
'교향곡처럼 - 모차르트에게 경의를 표하며' - 실제로는 5m X 6.3m의 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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