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1구 인네레 슈타트

18. 폭스가르텐슈트라쎄(Volksgartenstrasse)로부터

정준극 2009. 8. 13. 19:41

폭스가르텐슈트라쎄(Volksgartenstrasse)로부터 첼린카가쎄(Zelinkagasse)까지

 

폭스가르텐분수와 장미 정원. 배경으로 보이는 건물들은 보티프키르헤(보티프교회), 비엔나대학교, 부르크데아터(궁정극장) 들.

 

- 폭스가르텐슈트라쎄(Volksgartenstrasse): 1869년부터 폭스가르텐(국민공원)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폭스가르텐은 1820년 프란시스 1세 황제 시절에 완공되었다.

 

폭스가르텐. 가운데 보이는 조형물은 그릴파르처 기념상

 

- 포아라우프슈트라쎄(Vorlaufstrasse): 비엔나 시장을 지낸 콘라트 포아라우프(Konrad Vorlauf: 재임은 1403-04년)을 기념하여 1886년에 붙인 이름이다. 포아라우프는 1408년 레오폴드 황제에게 반대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사연인즉 이러하다. 알브레헤트4세가 세상을 떠나자 레오폴드4세와 에르네스트(Ernest) 사이에 대단한 다툼이 있었다. 다음번 왕위에 오를 알브레헤트(나중에 5)의 섭정을 누가 맡느냐에 대한 다툼이었다. 당시 비엔나 시장이었던 콘라트 포아라우프는 레오폴드를 반대하였다. 왜냐하면 레오폴드는 반대파를 제압하기 위한 군자금으로 쓰기 위해 시민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했기 때문이었다. 레오폴드는 포아라우프가 자기를 반대한다는 것을 알고 포아라우프 및 그를 동조하는 시의원들을 즉각 체포하고 나중에는 처형하였다. 사형집행인이 포아라우프를 사형대로 끌고 가서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죽임을 당하게 되자 포아라우프는 동료들을 돌아보며 나는 살아서와 마찬가지로 죽음에 있어서도 그대들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외쳤다. 로브코비츠플라츠와 글룩가쎄가 만나는 코너에 다음과 같은 명판이 붙어있다. 이들은 죽음으로서 의무를 다했다. 레오폴드4세 대공에게 저항한 의무이다.

 

현재의 로브코비츠플라츠에서 콘라트 포아라우프 비엔나시장을 처형하는 장면

 

- 배흐터가쎄(Wächtergasse): 1650년부터 1773년까지 이곳에 있었던 비엔나시 경찰초소를 기념하여 1862년부터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다.

 

배흐터가쎄. 렌가쎄 방향

 

- 봘피슈가쎄(Walfischgasse): 1700년경에 이곳에 있었던 Bey den Wallfisch(고래집) 여관을 기념하여 붙인 거리이름이다. 여관집의 간판에는 Zum Jonas mit dem Walfisch(고래배속에 들어간 요나 여관)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봘피슈가쎄

 

- 봘너슈트라쎄(Wallnerstrasse): 이곳에 옷감을 다듬어 바래는 사람들(Tuchwalker)이 살았기 때문에 1848년부터 봘너슈트라쎄라는 이름을 붙였다. 14세기에는 봘리흐슈트라쎄(Walichstrasse)라고 불렀다. 역시 옷감을 다듬어 바랜다는 뜻이다.

 

봘너슈트라쎄의 팔레 에스터하지

                     

- 봐이부르크가쎄(Weihburggasse): 비엔나 성곽에 있었던 탑이 있는 요새 중의 하나인 봐이엔부르크(Weihenburg)를 기념하여서 1867년부터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다. 봐이에(Weihe)라는 단어는 봉헌하다는 뜻이다. 요새를 만들고 하나님께 봉한하고 축성(祝聖)하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같다.

 

봐이부르크가쎄. 옆이 코부르크바슈타이며 저 멀리 프란치스카너키르헤의 종탑이 보인다.

 

봐이부르크가쎄 3번지는 현재 카이제린 엘리자베트 호텔(Kaiserin Elisabeth Hotel)이다. 이 호텔의 현관에는 과거에 어떤 유명 손님들이 묵었섰는지를 일부 명단만을 알려주는 기념 명판이 붙어 있다. 다음과 같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67), 클라라 슈만(1838), 프란츠 리스트(1856), 안톤 루빈슈타인(1859), 리하르트 바그너(1862), 안톤 브루크너(1863), 화가 모리츠 폰 슈빈트(1863), 화가 아우구스트 폰 케텐호펜(1889), 화가 아돌프 멘첼(1895), 에드바르드 그리그(1896), 화가 오스카르 코코슈카(1958), 합스부르크 마지막 황태자 오토 폰 합스부르크(1980) 등이다.


카이제린 엘리자베트 호텔의 현관에 부착되어 있는 명판. 모차르트를 비롯한 과거 이 호텔에 투숙했던 저명 예술가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필자도 이 호텔에 1990년대 말에 이틀밤 투숙한바 있다.


- 봐이스키르흐너가쎄(Weiskirchnergasse): 비엔나 시장을 지냈으며 국회의원을 지낸 리하르트 봐이스키르흐터(Richard Weiskirchner)를 기념하여 1932년에 붙인 거리이름이다. 그전에는 볼차일레(Wollzeile)의 일부였다.

- 베르더토르가쎄(Werdertorgasse): 옛 비엔나 성곽에 있었던 성문인 베르더토르(Werdertor)로부터 비롯한 이름으로 1864년부터 부르기 시작했다. 베르더는 작은 섬을 말한다. 따라서 도나우의 작은 섬을 통해 비엔나에 출입하는 성문을 말한다. 기록에는 1305년에 이미 봐이더토르가 있었다고 되어 있다.

 

베르더토르가쎄와 노이토르가쎄가 만나는 곳

                             

- 비징거슈트라쎄(Wiesingerstrasse): 성직자로 설교에 능했던 알베르트 뷔징거(Albert Wiesinger)를 기념하여 1902년부터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다.

 

비징거슈트라쎄 1번지 건물의 기이한 조각

 

- 빌트프레트마르크트(Wildpretmarkt): 사냥하여 잡은 짐승이나 조류의 고기를 팔았기 때문에 빌트프레트(사냥짐승)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4세기에는 노이어 킨마르크트(Neue Kienmarkt)라고 불렀다. 새로 생긴 장작시장이라는 의미이다.

 

빌트프레트마르크트

 

- 빈트하아그가쎄(Windhaaggasse): 자선가인 요아힘 엔츠뮐러 폰 빈트하아그(Joachim Enzmüller von Windhaag: 1600-1678)를 기념하여 1894년부터 부르기 시작한 거리이름이다. 한때는 이곳에 있었던 수도원을 기념하여 슈티프트가쎄(Stiftgasse)라고 부르기도 했고 작은 천문대가 있었기 때문에 슈테른봐르트가쎄(Sternwartgasse)라고 부르기도 했다. 배커슈트라쎄와 존넨펠스가쎄를 연결하는 짧은 길이다.

 

빈트하그가쎄

 

- 비플링거슈트라쎄(Wipplingerstrasse): 한때 이곳에 살았던 어떤 시민가족의 이름에서 연유되었다고 하는데 그 시민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다만 1272년에는 빌트베르카에레 스트라짜(Wildwerkaere Strazza)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Wildwerker는 모피장사를 말한다. 1547년에는 빌핑거슈트라쎄(Bilpingerstrasse)라고 불렀다는데 이것 역시 빌트베르커(모피장사)에서 비롯한 명칭이라고 한다.

 

뷔플링거슈트라쎄의 알테스 라트하우스(구시청) 현관의 바로크 조각

                   

- 볼펜가쎄(Wolfengasse): 이곳에 있었던 여관인 Zum weissen Wolf(하얀 늑대집)에서 비롯한 명칭으로 1862년부터 볼펜가쎄(늑대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볼펜가쎄 4번지 건물. Innung der Baumeister, uralte Haupthütte in Wien라고 적혀 있다. 비엔나 건축사 조합 사무실이었다.

 

- 볼차일레(Wollzeile): 이곳에 모직업자와 양모 상인들이 살았기 때문에 볼차일레라는 이름이 붙었다. 차일레(Zeile)는 집들이 늘어서 있다는 뜻이다. 차일레와 라우베(Laube)는 거의 같은 뜻이다. 1158년 기록에는 볼스트라짜(Wollstrazza)라고 불렀다고 되어 있으며 1261년에는 볼레차일(Wollezeil)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봐이부르크가쎄. 비엔나 시내 중심인데도 이렇게 한적한 거리가 있다.

 

- 체들리츠가쎄(Zedlitzgasse): 극작가 겸 서사시인인 요셉 크리스티안 폰 체들리츠(Joseph Christian von Zedlitz: 1790-1862)를 기념하여 1865년부터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다. 폰 체들리츠는 오늘날 체코공화국의 야로브나(Jarovna)에서 태어나 비엔나에서 활동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당시는 오스트로-헝가리제국이었다.

 

체들리츠가쎄

 

- 첼린카가쎄(Zelinkagasse): 비엔나 시장을 지낸(1861-68) 안드레아스 첼린카(Andreas Zelinka: 1802-1868)을 기념하여 1869년에 명명한 거리이름이다. 첼린카 시장은 인자하여서 파파 첼린카라는 애칭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가 시장으로 재임 중에 슈타트파르크(시립공원)가 조성되었다. 슈타트파르크에 그의 기념상이 있다.

 

슈타트파르크(시립공원)에 있는 17세기 비엔나 시장이던 안드레아스 첼린카(파파 첼린카) 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