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궁전/호프부르크

이루지 못한 카이저포룸의 꿈

정준극 2009. 8. 17. 08:24

이루지 못한 카이저포룸의 꿈

 

노이에 호프부르크의 위용

 

요셉플라츠에 출입구가 있는 국립도서관(구 제국도서관: Hofbibliothek)은 원래 호프부르크와 떨어져 있는 건물이었으나 나중에 호프부르크의 멤버로 통합되었다. 일명 프룬크잘(Prunksaal: 화려한 홀)이라고 부르는 도서관은 마리아 테레자의 아버지인 샤를르 6세가 창설했다. 프룬크잘은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Österreichische Nationalbibliothek)이 관리하고 있다. 말하자면 호프부르크의 국립도서관도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 중의 하나인 셈이다. 국립도서관의 건축은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어라흐가 시작하여 역시 위대한 건축가인 그의 아들 요셉 에마누엘이 1735년 완성했다. 부자(父子) 공동합작이다. 귀중한 장서들은 오이겐 공자의 기증도서를 주축으로 하고 있다. 프룬크잘의 프레스코는 거장 다니엘 그란(Daniel Gran)의 작품이며 홀에 늘어서 있는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의 기념상은 파울 슈트루델(Paul Strudel)의 작품이다. 프룬크잘은 프레스코와 황제들의 기념상으로 인하여 호프부르크에서도 가장 예술적으로 화려한 홀로 인정받고 있다. 요셉스플라츠에서 볼수 있는 국립도서관 건물의 지붕 위에 있는 장식은 1726년 로렌조 마티엘리(Lorenzo Mattielli)가 완성한 것이다. 가운데에 있는 조각상은 지혜의 여신 팔라스 아테네(Pallas Athene)가 4륜마차를 타고 있는 모습이다. 팔라스 아테네의 왼편에는 천체를 받들고 있는 아틀라스가 있고 오른편에는 가이아(Gaia)가 지구를 받들고 있는 조각상이 있다. 아틀라스의 양 옆에는 천문학(Astronomy)과 점성학(Astrology)을 상징하는 조각이 있으며 가이아의 양 옆에는 기하학(Geometry)과 지리학(Geography)을 상징하는 조각이 있다.

 

호프부르크의 정문인 미하엘러토르(미하엘문)

 

슈탈부르크(제국마사)의 건너편에 있는 겨울승마학교(Winterreitschule: 스페인승마학교)도 에어라흐 부자의 공동작품이다. 슈탈부르크는 마구간이지만 그 이전에는 회의장이어서 1848년에는 오스트리아 제국의회가 처음 열렸었다. 에어라흐 부자의 공동작품은 또 있다. 레오폴드트락트의 건너편에 있는 라이히스칸츨라이트락트(Reichskanzleitrakt: 제국수상동: Imperial Arch-Chancellor Wing)이다. 라이히스칸츨라이트락트에는 제국수상의 집무실뿐만 아니라 라이히스호프라트(Reichshofrat: 제국참의원) 사무실, 제국부수상(라이히스비제칸츨러: Reichsvizekancler)의 집무실이 함께 있었다. 신성로마제국의 수상은 중세로부터 관례적으로 마인츠(Mainz)의 대주교가 형식적으로 맡게 되어 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제국부수상이 수상의 역할을 했다. 1806년 신성로마제국이 종식을 고한 이후, 라이히스칸츨라이트락트는 한때 나폴레옹 2세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나폴레옹 2세는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프란시스 2세의 딸 마리 루이제(Marie Luise)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결혼하여 생산한 아들이다. 나폴레옹 2세는 예우상 프랑스 황제라고 부르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라이히슈타트(Reichstadt) 공작이라고 불렀다. 나폴레옹 2세(라이히슈타트 공작)는 아버지 나폴레옹 1세가 실각하여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당하자 비엔나의 쇤브룬궁전에 연금되다시피 하며 지내다가 2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호프부르크에도 잠시 거주했던 것이다.

 

 

나폴레옹 2세(라이히슈타트 대공)

 

세월의 흐름과 함께 호프부르크도 조금씩 영역을 넓혀 나갔다. 대표적인 경우가 현재의 국립도서관과 아우구스틴교회를 연결한 것이다. 요셉플라츠의 한 귀퉁이에 출입문을 낸 아우구스틴교회는 황실전용교회로서 마리아 테레자와 로레인의 프란시스가 결혼한 장소이기도 하다. 프란츠 요셉 황제와 바바리아 출신의 아름다운 왕비 엘리자베트(씨씨)가 결혼식을 올린 곳도 아우구스틴 교회였다. 아우구스틴교회의 납골당에는 합스부르크 왕족들의 심장을 보관하고 있는 영묘가 있다. 1763-1769년 기간에 현재의 국립도서관과 아우구스틴교회를 연결하고 그 앞에 요셉플라츠(Josephsplatz)를 조성한 건축가는 니콜라우스 폰 피카씨(Nikolaus von Picassi)였다. 한편, 1820년대에 건축가인 요셉 코른호이젤(Joseph Kornhäusel)에 의해 알베르티나가 개선되자 호프부르크에 연결되었다. 이로써 합스부르크의 호프부르크는 부르크테아터(궁정극장)으로부터 알베르티나(미술관)까지 광범한 지역을 카버하는 단지(團地)가 되었다.  

 

요셉스플라츠와 국립도서관(프룬크잘) 입구. 지붕위의 각종 조각 장식이 화려하다.

 

현재의 헬덴플라츠(영웅광장)에서 링슈트라쎄의 대로 쪽으로는 원래 상당히 규모가 큰 요새건물이 있었다. 이 요새건물은 1809년 나폴레옹군의 포격으로 무너져 버렸다. 전쟁이 끝나자 요새의 잔해를 철거하고 땅을 고른후 그곳에 신고전주의 양식의 부르크토르(Burgtor: 궁성문)를 세웠다. 그리고 1817년 부르크토르를 중심으로 새로운 성벽을 조성하였다. 이후, 새로운 성벽의 안쪽에 궁정공원(부르크가르텐), 영웅광장(헬덴플라츠), 국민공원(폭스가르텐)이 들어섰다. 부르크토르(궁성문)와 폭스가르텐의 테세우스 신전은 페터 폰 노빌레(Peter von Nobile)의 작품이다. 또 하나 추가된 것은 현재 각종 국제회의와 전시회가 열리는 체레모니엔잘(Zeremoniensaal: 행사장)이다. 루이 몽토예(Louis Montoyer)의 작품이다. 처음에 이 건물은 원래의 호프부르크에서 삐죽하게 나와 있기 때문에 나제(Nase: 코)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현재는 노이에 호프부르크에 연결되어 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정기총회가 열렸었다. 화려한 페스트잘(대연회장)에서는 무도회도 열리며 보통 때에는  비엔나 필 단원들로 구성된 요한 슈트라우스-모차르트 연주회가 열린다. 주로 관광객 대상이다.

 

노이에 호프부르크의 페스트잘(대연회홀)에서의 무도회 

 

마지막으로 길건너편의 미술사박물관(국립미술관)과 자연사박물관을 거론하지 않을수 없다. 1860년대에 비엔나의 중심가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은 모두 허물게 되었다. 따라서 호프부르크는 크게 확장되었다. 당초에는 카이저포룸(Kaiserforum)이라는 원대한 계획을 구상했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기존의 호프부르크를 중심으로 양쪽 날개에 새로운 궁전을 짓고 다시 저 길건너 쪽에 장대한 미술관과 자연사박물관을 건설하며 그 가운데에는 마리아 테레자 여제를 기념하는 광장과 기념상을 만는다는 계획이었다. 또한 헬덴플라츠(영웅광장)를 본격적으로 조성하여 한쪽에는 샤를르대공의 기마상을, 또 다른 한쪽에는 오이겐 공자의 기마상을 세우게 되었다. 하지만 샤를르대공의 기마상이 있는 쪽으로 현재의 노이에 호프부르크와 대칭되게 건축하려던 건물은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완성되지 못하였다. 카이저포룸의 조성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링슈트라쎄의 건너편에 대한 계획은 강행되었다. 쌍둥이 박물관의 건축은 독일에서 초빙한 거장 고트프리트 젬퍼(Gottfried Semper)와 비엔나 출신의 칼 폰 하제나우어(Karl von Hasenauer)가 공동 담당하였다. 쌍둥이 박물관 건물은 1891년에 완성되었다. 이어서 1913년 호프부르크의 남서쪽에 노이에 호프브루크가 완성되었다.

 

노이에 호프루브크의 프룬크잘(국립도서관)

 

노이에 호프부르크에는 현재 에베소박물관, 무기갑옷박물관, 고대악기박물관, 인종박물관, 그리고 국립도서관의 열람실 등이 들어서 있다. 1938년 3월 15일, 아돌프 히틀러는 헬덴플라츠에 모인 공식추산 20만명의 비엔나시민들 앞에서 독일제3제국과 오스트리아의 합병(Anschluss)을 선언하며 '이제 오스트리아는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소리쳤다. 비엔나 시민들은 열광했지만 그때로부터 나치는 지식인과 유태인들에 대한 무자비한 사냥을 시작하였다. 요셉스플라츠의 요셉 2세 기마상은 프란츠 안토 자우너(Franz Anton Zauner)의 작품이며 인네러 부르크호프(Innerer Burghof)의 프란시스 1세(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는 프란시스 2세) 황제 기념상은 폼페오 마르케시(Pompeo Marchesi)의 작품이다. 미하엘로플라츠(미하엘광장)가 완성된후 호푸부루크의 정문인 미하엘러토르(미하엘문)의 양쪽에 두 개의 거창한 조각작품이 설치되었다. ‘바다의 권세’는 루돌프 봐이르(Rudolf Weyr)의 작품이며 ‘땅의 권세’는 에드문트 헬머(Edmund Hellmer)의 작품이다. 1992년 11월 26일 밤, 요셉스플라츠(요셉광장) 쪽에 있는 레도우텐젤레(Redoutensäle)에서 대화재가 발생했다. 위층과 지붕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1997년에 복원되었다.

 

헬덴플라츠(영웅광장)의 샤를르 대공 기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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