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 더 알기/세례 요한은 누구?

세례요한의 탄생, 사역, 순교

정준극 2009. 8. 23. 19:34

[세례요한의 탄생, 사역, 순교]

 

신약성서의 네 복음서에는 모두 세례요한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모든 복음서는 한결같이 세례요한을 그리스도의 오심을 선언하는 사람으로 표현했다.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복음서)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요한복음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다. 다만, 요한복음에는 세례요한이 그가 오시리라고 기다리던 바로 그 사람임을 인정하는 기록은 있다. 이제 세례요한의 탄생과 어린 시절, 그리고 사역에 대하여 다시한번 살펴본다.

 

요르단 정교회의 벽화 이콘. 예수 그리스도가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

                      

누가복음에는 세례요한의 탄생과정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아버지는 제사장 사가랴(Zachariah)이며 어머니는 엘리사벳(Elizabeth)이라고 되어 있다. 두 사람은 나이가 많이 들도록 아이가 없었다. 두 사람은 아이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였다. 어느날, 천사장 가브리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분향하고 있는 제사장 사가랴에게 나타나 뜻밖에도 엘리사벳이 수태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천사는 이어서 엘리사벳에게도 나타나 수태소식을 전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사가랴는 아비야 반열의 사제이며 엘리사벳은 아론(Aaron)의 자손이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아버지 쪽으로 보나 어머니 쪽으로 보나 모두 아론의 후손이 된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한 것은 엘리사벳이 세례요한을 잉태한 것보다 여섯달 후가 된다. 가톨릭은 누가복음의 기록에 따라 세례요한의 탄생일을 예수 그리스도보다 6개월 전인 6월 24일로 지키고 있다. 성서에는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장으로부터 성령으로 잉태하게 된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이 소식을 엘리사벳에게 전하러 갔을 때에 엘리사벳의 복중에 있는 세례요한이 기뻐 뛰놀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가랴는 가브리엘로부터 엘리사벳이 잉태한다는 소식을 들을 직후부터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나중에 아기에게 요한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후에야 말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세례요한은 친족간으로서 그들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서로 사촌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누가복음을 제외한 다른 복음서에는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관계에 대한 언급이 없다. 신학자 레이몬드 브라운(Raymond Brown)은 이로 미루어보아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사촌간이라는 것은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른 학자인 게자 베르메(Geza Vermes)는 이를 누군가 꾸며낸 말이라고까지 주장했다. 세례요한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는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사무엘의 탄생과 대단히 흡사하다. 학자들은 사무엘의 이야기가 누가복음에 나와 있는 세례요한 이야기의 모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한나가 사무엘을 엘리 선지자에게 의탁함. 게르브란트 반 덴 에크우트(Gerbrand van den Eeckhout) 작품.

                                     

네복음서 모두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설교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당시의 모든 사람들과는 달리 세례요한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다시한번 강조하거니와 세례요한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의미있는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준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요한으로부터 물로 세례를 받음으로서 예수의 공생애를 통한 사역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와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설명되어 있다. 그때에 하늘로부터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왔으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요한복음에는 예수가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는 내용이 없다. 다만, 세례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 양’(아누스 데이)이라고 소개했다는 내용만 나올 뿐이다. 한편, 세례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생애에 대한 이야기는 흡사한 점이 많다. 기독교에서는 세례요한을 구약시대를 마감하는 마지막 선지자로 보며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라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 이후에는 어떠한 선지자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보며 만일 ‘내가 선지자요 구세주로다’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거짓 선지자이며 거짓 구세주일 뿐이라고 믿고 있다.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나니라' 라고 소리치는 세례요한. 콜 토마스(Cole Thomas) 작품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의아하게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세례요한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준 이유는 죄를 회개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예수도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예수는 원죄조차 없는 몸으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세례요한은 예수께서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하자 거절하면서 오히려 세례를 받을 사람은 자기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세례요한을 다시 설득하여 결국 그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는 세례요한도 무오의 몸으로 아무런 죄가 없이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는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후 곧이어 세례요한처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느니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친히 세례를 베풀어 주었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서, 즉 일부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유태인들 사이에서는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지만 예수라는 사람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또는 세례요한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로서는 자기의 스승(랍비)인 세례요한이 예수라는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끌어 세례를 주었다고 해야 직성이 풀릴 모양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세례를 준 사람들이 세례요한이 세례를 준 사람들의 숫자보다 많았다고 한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를 대신하여 세례를 주었기 때문에 숫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세례를 주는 일을 제자들에게 위임했다는 얘기가 없다. 또한 이제 막 제자들이 된 예수의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학자들은 누가 세례를 주던지 회개하는 죄인에게 세례를 주면 된다고 설명했다.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다. 얀 브뤼겔 작품

                                  

기왕에 세례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초대 교회 사람들은 예수께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좀 당황스럽게 생각하였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메시아께서 세례요한보다도 지위가 낮다고 하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세례요한을 예수 그리스도의 앞길을 예비한 자라고 내세우고 있다. 성경에 의하면 세례요한 자신도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고 고백한 것이 좋은 예라는 것이었다(마태 3: 11, 누가 3: 16). 그러나 해롤드 애트릿지(Harold Attridge)와 같은 신학자들은 세례요한이 예수보다도 더 낮은 사람으로 표현된 것은 순전히 초대교회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면서 예수의 우위성을 더한번 표현하기 위해 사도행전 18: 24 또는 19: 4에 있는 내용대로 세례요한의 제자였던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 많이 몰려왔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 35-37에 보면, “35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2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이라고 되어 있고 이어 40절에는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라고 적혀 있음을 볼때 세례요한의 제자 중에서 핵심제자들이 상당수 예수에게 가서 제자가 되었음을 알수 있다.

 

요단강에서 예수가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을 때에 천사가 수종하였으며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복음서에 따르면, 세례요한의 사역은 헤롯 안티파스가 그를 체포하여 감옥에 가둠으로서 더 이상 수행되지 못하였다. 헤롯 안티파스는 자기가 이복형인 헤롯(2세)의 부인이었던 헤로디아스와 결혼한 것을 세례요한이 공공연히 책망하자 더 이상 책망의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세례요한을 체포하였던 것이다. 초대 기독교의 위대한 신학자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37-100)는 세례요한이 감금된 곳이 페리아(Peraea) 지방의 남단인 마케루스(Machaerus: Macherus)요새로서 사해에서 동쪽으로 14km 떨어진 곳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곳이다. 현재는 요르단의 영토이다. 나중에 헤롯 안티파스가 연회를 베풀었을 때 헤로디아스의 딸(20세기에 오스카 와일드라는 극작가가 헤로디아스의 딸에게 살로메라는 이름을 붙여줌)이 나와 춤을 추고 보상으로 세례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달라고 하자 헤롯 안티파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을수 없어서 마지못해 병사를 시켜 세례요한의 머리를 잘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마가복음 6: 27-28을 보면 “27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베어 28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라고 되어 있다. 마치 옆방에 세례요한이 붙잡혀 있으므로 당장 나가서 목을 베어 가져왔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만일 세례요한이 마케루스 요새에 감금되어 있었다면 그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거리가 아닐수 없다.

 

살로메와 안티파스의 앞에 세례요한의 영혼이 나타난 장면. 구스타브 모로 작품.

                                 

헤롯 안티파스가 세례요한을 죽인 것은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민란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왕을 반대하고 사회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자는 가차없이 처단하겠다는 것을 보여주어 두려워서라도 민란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세례요한의 무덤은 어디 있는지 확실치 않다. 다만, 성경에는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세례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마가 6: 29). 그렇다면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떠나서 장사를 지내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훗날 줄리안(Julian)시대에는 세례요한의 무덤이 사마리아에 있다고 소개된바 있다. 이때에 주민들이 무덤을 열고(아마 동굴 무덤인듯) 시신을 꺼내 뼈의 일부분을 화장했다고 한다. 훗날 기독교인들이 이곳에서 세례요한의 유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수습하여 예루살렘의 수도원에 있는 필립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전해주었다고 한다. 아르메니아의 타론(Taron)지방에 있는 4세기의 ‘세례요한수도원’에는 가이사랴(Caeserea)에서 가져온 세례요한의 유해가 간직되어 있다고 한다.

 

세례요한의 무덤이 있다고 하는 갈릴리호수 동부 마케루스로 가는 길의 세례요한 묘지 안내판

 

세례요한은 감옥에 있으면서 사역을 시작한 예수가 메시아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알고 싶어서 사람들을 보내어 물어보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례요한이 그런 질문을 할 것으로 알고 있었는지 사람들에게 “오리라한 엘리야가 바로 이 사람이니라”라고 대답해 주었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세례요한이야말로 다시 돌아온 선지자 엘리야(Elijah)라고 얘기함으로서 자기가 메시아임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마케루스의 유적지. 마케루스는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혀 있다가 헤롯 안티파스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40리나 떨어져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