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호이리거와 그린칭

비엔나의 명소 호이리거(Heuriger)

정준극 2009. 9. 6. 21:30

비엔나의 명소 호이리거(Heuriger)

 

비엔나 근교의 포도밭에서 바라본 비엔나 시가지. 옆에는 도나우강이 흐른다.

 

비엔나는 휘핑크림을 잔뜩 넣은 커피, 달콤한 초콜렛 케이크, 뵈슬라우(Vöslau) 또는 괴써(Gösser)와 같은 시원한 맥주로 유명하다. 그러나 와인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비엔나는 얕으막한 언덕들이 시내의 한쪽을 둘러싸고 있는 도시이다. 언덕마다에는 대부분 포도밭이 자리 잡고 있다. 아마 유럽의 대도시 중에서 비엔나만큼 시내로부터 포도밭이 가까이 있는 도시도 없을 것이다. 비엔나에서는 조금만 교외로 나가면 호이리거(Heuriger)를 쉽게 찾을수 있다. 와인 태번(Tavern: 주점)이다. 호이리거는 호이리게를 파는 집이다. 호이리게(Heurige)라는 단어는 호이어(Heuer)에서 나온 것으로 금년(This year)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호이리게는 그 해에 수확한 포도로 빚은 와인을 말한다. 그리고 금년에 빚은 와인을 파는 집을 호이리거라고 부른다.

 

호이리거에서의 비엔나 음악 연주

 

가을이 되면 비엔나 사람들은 비엔나 숲에 흩어져 있는 호이리거로 몰려간다. 그 해에 담근 햇와인을 맛보기 위해서이다. 작은 정원의 오래된 마로니에 아래에서 친구들 또는 가족들과 함께 나무로 만든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호이리게 글라스를 기울인다. 해가 기울고 어둠이 찾아오면 마로니에 나뭇닢 사이로 밤하늘의 별들이 반짝인다. 바이올린과 기타, 아코디온을 둘러멘 악사들이 멜랑콜리한 음악을 연주한다. 이보다 더 아늑하고 감상적일 수가 없다. 호이리거 주점에서 연주하는 비엔나 특유의 음악을 슈람멜음악(Schrammelmusik)이라고 한다. 호이리거에서 맛볼수 있는 아늑하고 흥겨운 분위기, 그러면서도 더러는 옛 추억을 되새기게 해주는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독일어로 게뮈틀리히카이트(Gemütlichkeit)라고 부른다. 게뮈틀리히카이트라는 단어는 프랑스어의 주아-드-비브르(Joie-de-vivre: 삶의 기쁨)라는 말과 의미가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똑같은 뜻은 결코 아니다. 비엔나만의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에도 게뮈틀리히카이트를 꼭 집어서 표현할만한 단어가 없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비엔나의 호이리거 분위기를 독일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게뮈틀리히카이트라고 쓴다. 

 

호이리거음악 연주. 요즘에는 호이리거 연주자들이 순수 비엔나 호이리거 스타일의 슈람멜음악만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각국 관광객들을 위해 각국 노래를 한두곡씩은 연주할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호이리거를 찾아가면 이들이 다가와서 아리랑을 연주한다. 그러면 팁을 주어야 한다.

 

게뮈틀리히카이트(Gemütlichkeit)란?

 

쌀쌀한 날씨에 어떤 집에 들어갔는데 비록 넓지는 않지만 방안에 난로를 피워 훈훈하며 게다가 방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아 아늑하게 느껴지는 곳이라면 게뮈틀리히카이트라는 단어가 꼭 알맞은 표현이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호이리거 주점이 게뮈틀리히(Gemütlich)하다고 말한다. 형용사인 게뮈틀리히의 명사형이 게뮈틀리히카이트이다. 상냥함, 안락함, 포근함, 흐뭇함, 느긋함이 복합된 뜻이다. 게뮈틀리히라는 단어는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이다. 어떤 집이나 식당에 초대를 받아 갔을 때 ‘게뮈틀리히!’라고 말하면 일단 초청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만든다. 어떤 호이리거의 문지방에 Abandon all burden, ye who enter here!라고 적혀 있다. '이 곳에 들어오는 사람은 모든 짐을 벗어 던져야 할 것이다'라는 뜻이다. 게뮈틀리히를 제대로 설명한 문구이다.

 

호이리거의 문 앞에 소나무 가지를 달아두면 오픈했다는 뜻이다.


독일어의 게뮈틀리히를 영어로 표현 할 때 가장 비슷한 단어는 Coziness이다. 하지만 호이리거의 훈훈하고 아늑함을 다만 Cozy하다고만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게뮈틀리히카이트라는 단어를 영어로 표현하고 싶지만 정확하게 부합하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독일어인 게뮈틀리히카이트를 그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영국에서도 게뮈틀리히카이트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요즘에는 게뮈틀리히카이트라는 단어를 휴일이나 휴가와 연계하여 자주 사용한다. Ein gemütlicher Tage라고 하면 ‘유쾌한 하루’라는 뜻이다. 휴가나 축제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음악이 있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넉넉할 때에 게뮈틀리헤스 페스트(‘Gemütliches Fest)라고 말한다. 사람에게도 게뮈틀리히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Gemütlich person이라고 하면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지나치게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고 헤쳐 나가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상냥하며 친절한 사람을 일컫는다.

 

호이리거의 테이블

 

자꾸 말하면 잔소리이지만 와인의 맛과 품질은 어떤 포도를 사용하였는지에 크게 좌우된다. 비엔나의 호이리거에서는 좋은 품질의 와인을 세가지로 보고 있다. 첫째는 향기가 좋은 리슬링(Riesling)으로 담근 와인이다. 리슬링은 원래 라인지방에서 나는 고급 포도로서 푸른색이 감도는 것이다. 비엔나 주변에서도 리슬링이 상당히 재배된다. 둘째는 초록색 벨트리너(Veltliner)로 담근 와인이다. 고급 머스캣(Muscat) 포도로 빚은 와인이다. 오스트리아에서 나오는 와인의 상당부분은 벨트리너 품종으로 담근 것이다. 셋째는 과육이 많은 붉은 색의 츠봐이겔트(Zweigelt)로 만든 와인이다. 와인의 족보에서 이세가지 포도로 빚은 것이라면 일단은 좋은 품질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밖에도 블라우프랭키슈, 봐이써 부르군더 및 샤로돈네, 블라우어 포르투기저 등의 품종도 있다. 모두 따지면 35종 이상이 된다.

 

그림처럼 아기자기한 그린칭의 호이리거(뤼켄바우어)

 

비엔나 근교에서 호이리거가 몰려 있는 마을은 크게 세곳이다. 첫째가 관광 1번지로 유명한 그린칭(Grinzing)이다. 비엔나대학교 앞의 쇼텐토르에서 38번 전차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또는 U4의 하일리겐슈타트(Heiligenstadt) 종점에서 내려 38A를 타면 그린칭에 올수 있다. 그린칭 옆의 누쓰도르프(Nussdorf)도 빼놓을수 없다. 우리 식으로 보면 밤나무골이다. 두 번째 장소는 슈탐머스도르프(Stammersdorf)이다. 지하철 U6를 타고 플로리드스도르프(Floridsdorf)에서 내려 전차 30번이나 31번을 타고 가면 나온다. 쇼텐링에서 31번 전차를 타고 가도 된다. 세 번째 장소는 비엔나 서부의 오타크링(Ottakring)이다. U3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오타크링과 연계하여 마우어(Mauer)에도 훌륭한 호이리거들이 있다. 오버라아(Oberlaa)에도 기쁘게 즐길수 있는 호이리거들이 있다.

 

호이리거 안내표지와 소나무 가지

 

호이리거라고해서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니다. 전통이 있고 사연이 있는 호이리거들이 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 그린칭의 마이어-암-화르플라츠(Mayer-am-Pfarrplatz)는 베토벤이 하숙하던 집이었다. 베토벤은 이곳에서 교향곡 제6번인 전원(Pastoral)과 교향곡 제9번인 합창의 일부를 작곡했다. 그린칭의 루돌프스호프(Rudolfshof)는 합스부르크의 루돌프 황태자가 자주 들렀던 곳이다. 집 벽면에 그런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라인프레헤트(Reinprecht)는 유명한 작곡가 로베르트 슈톨츠(Robert Schtolz)가 그린칭에 살 때에 단골로 찾아왔던 호이리거였다. 그는 라인프레헤트에서 여러 노래들을 작곡하였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은 Ich bin in Grinzing einheimisch(나는 그린칭 토박이)라는 곡이다. 라인프레헤트 주점의 벽면에 슈톨츠의 부조와 함께 그런 내용을 적은 명판이 있다. 비잠버그(Bisamberg)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슈탐머스도르프(Stammersdorf) 또는 예들러스도르프(Jedlersdorf) 부근은 그림 같은 경치를 자랑한다. 슈탐머스도르프의 빈처호프 레오폴드(Winzerhof Leopold)는 훌륭한 품질의 와인을 아름다운 환경에서 즐길수 있도록 해준다. 이외에도 멋있고 아기자기하며 전통이 있는 호이리거 주점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호이리거에서 즐길수 있는 것은 햇포도주 뿐만이 아니라 지방색이 흠뻑 담겨 있는 뷔페 식사도 있다.

 

자연속의 호이리거

 

얇게 저민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빵가루를 묻혀 튀긴 비엔나의 명물 슈니첼(Schnitzel)은 물론이고 슈봐인브라텐(Schweinbraten: 로우스트 포크)도 일품이다. 대개의 호이리거에는 살라드 바가 설치되어 있어서 마음대로 골라서 접시에 담을수 있다. 빵에 발라 먹는 것으로는 립타우어(Liptauer)를 빼놓을수 없다. 크림치즈에 파프리카, 양파 등을 믹스한 것이다. 립타우어에 대하여는 나중에 좀 더 설명코자 한다. 후식으로는 어느 집이나 아펠슈트루델(Apfelstrudel)이 있다. 사과로 만든 파이 비슷한 것이다. 호이리거에서 와인과 식사를 마친후 디저트로 달콤한 케익 한 조각을 먹는것 까지는 무어라고 하지 않지만 만약 커피나 홍차를 주문한다면 문제가 있다. 어떤 집에서는 아예 커피를 서브하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카페로 가면 될 것이지 어찌하여 이곳 호이리거까지 왔느냐는 생각에서이다.

 

전형적인 홈메이드 샐러드바

 

호이리거에서 빼 놓을수 없는 즐거움은 호이리거 특별 음악을 들을수 있다는 것이다. 비엔나에 있으면서 요한 슈트라우스 아버지와 아들은 잘 알면서 슈람멜(Schrammel) 형제는 누군지 잘 모르겠다고 하면 곤란한 일이다. 호이리거 음악을 정착시킨 사람들이다. 이들 형제를 기념하여 호이리거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슈람멜음악이라고 부른다. 호이리거에 들어가면 한두 사람의 악사들이 기타, 아코디온 또는 바이올린을 들고 이러 저리 좌석을 돌면서 연주를 한다. 이들이 연주하는 곡목은 대개 애수에 넘친 세레나데와 같은 것들이다. 이것이 바로 비엔나 특유의 슈람멜음악이다. 슈람멜음악에 대하여는 별도로 설명코자 한다.

 

오타크링의 호이리거 디 체너 마리(Die 10er Marie) 

 

마지막으로 한마디! 비엔나라는 명칭은 라틴어의 포도주(와인)를 의미하는 비눔(Vinum)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비엔나에는 처음에 켈트족들이 정착하여 살았으나 그 후에는 로마인들이 몰려와 살았다. 로마인들은 와인을 즐겨했다. 3세기의 로마황제인 프로부스(Probus)는 로마의 영토인 비엔나 일대에 포도밭을 일구도록 장려했다. 비엔나 일대에서 나온 포도로 만든 와인은 향기가 있었다. 비엔나의 로마시대 명칭인 빈도보나(Vindobona)에도 ‘좋은 와인’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주장에 따르면 빈(Wien)은 ‘숲의 개울’이라는 뜻의 베두니아(Vedunia)라는 단어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베두니아(Vedunia)가 베니아(Venia)로, 다시 비네(Wienne)로 변했으며 결국 빈(Wien)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주장에 의하면 빈(Wien)의 옛 명칭인 빈도보나(Vindobona)는 ‘아름다운 또는 축복받은 땅’이라는 뜻으로 이 단어가 빈도비나(Vindovina)로 변했고 다시 비덴(Viden)으로 변했다가 빈(Wien)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주장이 맞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빈(Wien: Vienna)은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이 다분히 담겨 있다.

 

호이리거 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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