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호이리거와 그린칭

호이리게(Heurige)가 뭐 길래?

정준극 2009. 9. 6. 21:32

호이리게(Heurige)와 호이리거(Heuriger)

 

19구 되블링의 화르플라츠(교구교회광장). 옆에 있는 흰색 건물이 유명한 마이어 암 화르플라츠로서 한때 베토벤이 살면서 전원교향곡을 작곡한 집이다. 현재 호이리거 주점이 들어서 있다. 포도주 한잔을 마시더라도 그런 집에서 마시면 감회가 깊을 것이다.

 

호이리게는 햇포도주를 말한다. 그 해에 수확한 포도로 빚은 와인을 말한다. 호이리거(Heuriger)는 호이리게 와인을 파는 주점(영어로는 Tavern)을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멋도 모르고 '오늘 저녁엔 호이리게나 가자'라고 말한다면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호이리거를 가자'고 말해야 정확하다. 호이리거 주점은 또 다른 말로 부센샨크(Buschenschank)라고 부른다. 부센은 나뭇가지를 말하며 샨크는 주점, 특히 술 도매상을 말한다. 부센샨크라고 부르게 된 것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칙령 때문이었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호이리게 와인을 파는 집에는 그런 집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현관 문지방에 소나무(또는 전나무)가지를 걸어 놓아야 하며 주점이 문을 열었으면 문 앞에 등불을 밝혀 놓아야 하고 닫았으면 등불을 꺼놓아야 한다고 지시하였다. 18세기 중반에는 군주들이 별로 할 일이 없어서 별것도 아닌 것을 칙령으로 선포하였으니 참으로 한가한 세상이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큰아들로서 오스트리아의 대공 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요셉 2세는 1784년 그린칭이건 어디건 포도밭을 가지고 포도를 경작하며 와인을 만드는 백성들은 당국의 허락을 받지 않고 자기들이 만든 와인을 집에서 팔수 있다는 우악한 내용의 칙령을 선포하였다. 요셉 2세는 주점에서 와인뿐만 아니라 쥬스(넥타 포함)와 기타 음식도 팔아도 좋다고 선포하였다. 아무튼 옛날 황제들은 식당의 메뉴까지 정해주는 여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날 모든 호이리거는 오스트리아의 법에 따라 규제되고 있다. 호이리거를 규제하는 법령은 각 주마다 내용에 차이가 있지만 하여튼 좋은 포도주를 만들어서 바가지 씌우지 말고 적당한 값에 팔라는 취지이다.

 

그린칭의 호이리거인 버거. 그린칭의 호이리거들은 그림같이 아기자기하다. 길거리는 가을 비에 을씨년 스럽지만 호이리거 안으로 들어가면 게뮈틀리히, 즉 아늑한 분위기가 틀림 없을 것 같다.

 

전형적인 호이리거 주점은 집안의 안뜰(Hof)에 피크닉 탁자와 의자를 놓아 둔 경우가 많다. 안마당에 포도나무를 길러서 포도나무 잎으로 하늘을 가리는 집도 있다. 호이리게 와인은 주로 피쳐(Pitcher: Ewer: 주둥이가 넓은 병)에 담아서 나오며 머그(Mug) 또는 와인글라스에 부어서 마신다. 와인글라스는 주로 피어르텔(Viertel: 4분의 1리터짜리)과 아흐텔(Achtel: 8분의 1리터짜리)을 사용한다. 포도주를 좋아하는 사람은 커다란 아인 할베스(Ein Halbes)의 잔을 사용할 것이다. 호이리거에서는 손님들이 와인에 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네랄워터(Mineralwasser)를 피쳐에 담아 내놓기도 한다. 와인에 미네랄워터 또는 소다수를 섞은 것을 와인 슈프리처(Spritzer)라고 부른다.


저녁나절, 도심에서 벗어나서 언덕위의 호이리거에서 친구 또는 가족들과 포도주를 기울이며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비엔나 생활의 기쁨이다.

 

호이리거에서는 원칙적으로 자기 집에서 만든 와인만을 팔아야 한다. 그리고 뷔페 식사도 홈메이드의 몇몇 음식만을 내놓는 것이 관례이다. 20세기 초에는 호이리거에 올 때에 자기가 먹을 것은 자기가 가져오는 것이 관습이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장사를 위해 일반 식사도 팔고 맥주와 같은 다른 음료도 파는 집들이 많아졌다. 심지어는 호이리거에서 멜란즈 커피도 달라면 준다. 호이리게는 1년 내내 문을 여는 것이 아니다. 1년에 몇 달 만을 문을 연다. 물론 요즘에는 아무 때나 문을 여는 호이리거 주점이 한두군데 있기는 있어서 사철 구경할수 있다. 자기의 집을 전문 와인제조업자에게 세를 주어 호이리거 영업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런 주점을 빈처슈투베(Winzerstube)라고 부른다. 빈처는 포도를 재배하는 사람을 말하며 슈투베는 작은 방을 말한다.

 

그린칭의 호이리거 거리. 밤을 위해 낮을 쉬는 거리이다.

 

오스트리아의 와인 생산지역은 크게 네곳으로 나눈다. 남부오스트리아(니더외스터라이히), 부르겐란트(Burgenland), 비엔나 남부의 슈타이어마르크(Steiermark), 그리고 비엔나 동북부의 도나우강을 따라 펼쳐진 구능지대이다. 비엔나 근교에서 호이리게 와인으로 유명한 지역은 그린칭 이외에도 지버링(Sievering), 노이슈티프트 암 봘데(Neustift am Walde), 페르흐톨즈도르프(Perchtoldsdorf), 마우어(Mauer), 슈탐머스도르프(Stammersdorf), 군트람스도르프(Guntramsdorf), 가인파른(Gainfarn), 뒤른슈타인(Dürnstein), 랑겐로이스(Langenlois), 봐하우(Wachau) 지역, 루스트(Rust), 쾨니히슈테텐(Königstetten), 키체크(Kitzeck) 등이다. 대부분 도나우강을 따라 자리 잡고 있는 마을들이다. 호이리거라는 이름을 내걸은 주점이지만 와인보다는 사과 사이더(아펠자프트)나 배 사이더, 그리고 산딸기와 같은 각종 과일로 만든 슈납스를 파는 곳도 있다. 이런 곳을 대체로 모스트호이리거(Mostheuriger)라고 부른다. 모스트(Most)는 원래 발효 중인 포도즙 또는 과일주를 말한다.

 

그린칭의 호이리거 아우스그슈텍트(2008. 11). 아기자기한 집들이 늘어서 있는 동화와 같은 마을거리를 걷는 것도 관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