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호이리거와 그린칭

그린칭(Grinzing)을 찾아서

정준극 2009. 9. 6. 21:31

그린칭(Grinzing)을 찾아서


그린칭 그림엽서. 1930년대


트룸멜호프 기념명판. 이 장소에 로마시대의 주거지가 있었다고 적혀 있다. 그린칭이 그만큼 오래 되었다는 얘기다.

 

비엔나 관광객들에게 있어서 필견의 명소중의 하나가 그린칭이다. 그린칭은 비엔나 시내의 쇼텐링 전차역에서 북쪽으로 38번 전차를 타고 약 30분 거리에 있는 마을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버스 38A를 타고 가도 된다. 버스나 전차로 쉽게 갈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시골이라는 느낌이 거의 없는 교외이다. 그린칭은 그 해에 수확한 포도로 빚은 와인(Heurige: 호이리게)을 파는 주점들(Heuriger: 호이리거)로 유명한 마을이다. 사실 와인이야 아무데서나 사서 마실수 있지만 굳이 그린칭을 찾는 이유는 이곳 마을과 주점들의 분위기 때문이다. 그린칭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은 시골스런 분위기, 그러면서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비엔나 고유의 '그린칭 문화'가 살아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독일어로는 Gemütlich(게뮈틀리히)라고 부른다. '아늑하다'고 번역할수 있다. 그러므로 그린칭을 비엔나 민속관광의 테마 파크라고 부르는 것은 영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혹자는 햇 포도주를 파는 집을 호이리겐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어찌보면 영어식 표현이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새로 만든 포도주는 호이리게, 그런 포도주를 파는 집은 호이리거라고 한다. 우선 그린칭의 역사에 대하여 한마디!

 

그린칭의 트룸멜호프. 1150년이라고 써 있다. 오늘날 그린칭의 토박이인 그린초 식구들이 살던 집이다. 물론 보수를 여러번해서 이만큼 관리되고 있다. 원래 있던 집은 화재 등으로 파괴되었고 몇번에 걸쳐 다시 지었다. 처음에는 이 지역을 관리하는 사람의 집이었다.

 

그린칭이라는 명칭이 기록에 등장한 것은 일찍이 1114년이다. 지명에 <-ging>이라는 어미(語尾)가 붙으면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 즉 토박이라는 뜻이다. 일찍이 11세기에 이곳에는 그린초(Grinzo)라는 지주가 살았다. 그래서 그린초 가족들을 통틀어서 그린칭거라고 불렀으며 마을 이름은 그린치간(Grinzigan)이라고 불렀다. 그린초 가문이 살던 집이 현재 코벤츨가쎄(Cobenzlgasse) 30번지에 있는 트룸멜호프(Trummelhof)이다. 물론 집만 남아 있고 그린초 후손들은 살지 않고 있다. 그린초 가족들은 마을 농부들과 함께 포도밭을 일구어 좋은 포도를 생산하고 와인을 만들었다. 마을은 점차 번창했다. 그러다가 14세기에 마지막 그린초 가족(그린칭거)이 아무런 후손이 없이 세상을 떠나자 클로스터노이부르크(Klosterneuburg) 수도원이 그린초 가족들이 운영하던 그린칭 마을을 대신 다스리고 포도밭도 관리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교회나 수도원이 권세가 높아서 농노들을 거느리고 농사를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은 19세기에 농지개혁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린칭 마을을 관리하였다. 그린칭의 명소에 속하는 그린칭교회는 1426년에 세워진 것이다. 지금은 칼렌버그로 올라가는 길목에 서 있다. 그린칭교회는 그린칭 마을의 대표적인 교회였지만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이 마을을 운영했기 때문에 교구교회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다가 1783년에 이르러서야 그린칭 마을을 관할하는 교구교회로 승격되었다. 

 

겨울철의 그린칭 거리와 그린칭교구교회(가운데). 비엔나에는 눈이 와도 며칠씩 쌓이는 법이 별로 없다. 마을의 모습이 한 장의 그림엽서와 같다.

 

그린칭이 마을로서 형성되던 중세 초기에는 그런대로 행복한 마을이었다. 마을 뒤편으로는 비엔나 숲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주변 환경이 제일 큰 행복이었다. 그러나 중세 중반에는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헝가리의 마티아스 코르비누스(Matthias Corvinus: 1443-1490)가 이끄는 반도들이 마을을 노략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쳐들어와서 휩쓸어 갔다. 터키의 제1차 비엔나 공성 때에는 더욱 큰 피해를 보았다. 터키군이 무작정 대포를 쏘아댔기 때문에 마을은 거의 파괴되었다. 1604년에는 대화재가 일어나서 대부분 집들이 잿더미가 되었다. 그리고 1683년, 터키군이 두 번째로 비엔나를 침공할 때에는 이들이 아예 그린칭을 휩쓸고 갔다. 그후 얼마 동안은 평화스러웠다. 그러다가 18세기 초에 그린칭에도 역병이 돌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역병으로 희생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린칭은 인근의 다른 마을보다도 훨씬 발전했다. 교통이 좋아서였기 때문이었다. 1892년, 그린칭은 마침내 비엔나 시에 통합되어 오늘날 19구에 속하게 되었다.

 

그린칭의 호이리거에서 와인과 뷔페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

 

2차대전후, 그린칭에 호이리게 햇술을 파는 주점들이 과거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들어서자 비엔나의 공식 관광명소가 되었다. 주로 미국과 일본 관광객들이 밤만 되면 관광버스로 몰려왔다. 그린칭은 다른 마을의 호이리거들과는 달리 관광버스 주차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그래서 늦은 여름부터 가을을 거쳐 겨울까지 관광버스가 줄을 지어 들어선다. 한때는 한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왔다. 이곳저곳에서 아리랑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전에는 하이 하이하는 일본 관광객들의 소란한 소리가 들렸는데 요즘은 중국 관광객들의 쏼라 쏼라 하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고 한다. 너무 시끄러워서 못살겠다고 한다. 그린칭의 주점(호이리거)들은 포도밭을 가꾸고 와인을 직접 만드는 사람들이 아닌 장사하는 사람들의 소유가 되었다. 대단히 상업화되었다. 그린칭에 시끄러운 관광객들이 몰려오자 비엔나 사람들의 방문은 상대적으로 점점 줄어들었다. 아마 요즘 같아서는 비엔나 사람으로서 외국에서 온 손님들을 접대하기 위해 그린칭에 가는 사람들은 있을지언정 일부러 포도주를 마시러 그린칭을 찾아가는 비엔나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호이리거 후버(Huber)의 여직원. 빨간 조끼와 하얀 블라우스의 조화

 

그린칭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너무 많다보니 교통이 복잡해졌다. 이에 따라 오스트리아의 녹색당은 그린칭의 교통혼잡을 감소시키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결국 단체 관광객들이 타고 오는 대형관광버스의 주차를 억제하는 방향이 될것 같다는 얘기다. 반면에 주민들은 그린칭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면 정부와 국제기구로부터 더 많은 보호예산을 받을수 있으며 더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할수 있다. 하지만 유네스코 당국은 그린칭의 세계문화유산 신청을 승인하지 않았다. 문화유산으로서 특이한 면이 부족하고 또한 옛 모습대로 보존된 곳도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상 전쟁후에 새로 지은 집들이 많다.

 

그린칭의 전형적인 집들

 

그린칭 주변에서 찾아가볼 만한 곳은 우선 그린칭공동묘지(Grinzinger Friedhof)이다. 위대한 작곡가 구스타브 말러, 그의 부인이었던 알마 말러-베르펠(Alma Mahler-Werfel), 오스트리아의 유명배우인 아틸라 회르비거(Attila Hörbiger), 역시 배우인 하이모토 폰 도더러(Heimoto von Doderer), 작가인 토마스 베른하르트(Thomas Bernhard)가 이곳에 영면하여 있다. 그린칭에서 버스 38A를 타면 칼렌버그 산정까지 올라 갈수 있다. 산정에는 넓은 광장이 있고 광장 한쪽에는 일명 폴랜드교회라고 하는 성요셉교회가 있다. 성요셉교회라는 명칭은 인근의 요제프스도르프(Josefsdorf) 마을에서 가져온 것이다. 1683년 터키의 제2차 비엔나 공성때에 구원병을 이끌고 온 폴랜드의 얀 조비에스키(Jan Sobieski)왕과 로레인의 샤를르 공작이 터키군을 격퇴하기 위해 새벽에 모여 하나님께 엄숙하게 기도하며 이교도들을 몰아내겠다고 다짐한 장소이다. 교회에는 그런 내용의 명판이 붙어 있다. 코벤츨(Kobenzl)에 올라가면 비엔나 시내가 시네마스코프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코벤츨에 올라가는 중에 씨씨교회(Sisi Kapelle)도 만날 수 있다. 합스부르크의 프란츠 요셉 황제와 결혼한 바바리아 출신의 아름다운 왕비 엘리자베트(씨씨)를 기념하는 하얀 교회이다. 아마 씨씨가 비명으로 세상을 떠난 것을 애도하여서 지은 교회라고 생각된다. 알렉스 타마요 볼프(Alex Tamayo Wolf)의 소설 Revolution(혁명)에는 1차 대전 이전의 그린칭의 생활, 풍경, 문화 등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리슬링 포도를 재배하는 주인공과 그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되블링에 있는 씨씨 예배당. 프란츠 요셉 황제와 엘리자베트 왕비의 1854년 4월 24일 결혼식을 기념하여 1856년 7월 31일에 봉헌한 교회. 성엘리자베트, 아씨시의 성프란치스코, 성요셉에게 봉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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