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더 알기/오스트리아 와인

유규한 와인 역사

정준극 2009. 9. 12. 17:12

4천년 유규한 와인 역사

 

기왕에 얘기가 나온 김에 오스트리아의 와인 역사에 대하여도 일고코자 한다. 오스트리아의 와인 역사는 4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니, 그렇게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었나?’ 라고 의아해 하겠지만 고고학자들은 4천년 전에 남부오스트리아 트라이젠 강변의 트라이젠탈(Traisental)이라는 곳에서 포도를 재배했다는 물증을 확인했다. 이어 사거스도르프(Xagersdorf)라는 곳에서는 기원전 7백년의 것으로 보이는 포도씨를 발견했다. 항아리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독일과의 접경지대인 잘츠부르크의 뒤른버그(Dürrnberg)에서는 기원전 5세기 경의 것으로 보이는 켈트족의 청동 와인잔이 발견되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과거 로마시대로부터 포도재배가 크게 권장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영문인지 알프스 북쪽에는 포도를 재배하면 안된다는 법이 있었는데 프로부스(Probus: 재위 276-282) 황제가 이같은 금지령을 해제하였다. 아마 밀을 경작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포도경작 금지령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프로부스 황제의 포도경작 해제로 인하여 너도나도 포도재배에 열을 올리게 되어 포도재배 면적이 크게 늘어났다. 이때에 이미 그뤼너 벨트리너(GV)와 벨슈리슬링(Welschriesling) 품종이 도나우 일대에서 경작되었다.

 

프로부스 로마 황제. 술깨나 좋아하게 생겼다.

 

좋은 때가 있으면 역경도 있기 마련이다. 오스트리아의 포도밭은 바바리아족, 슬라브족, 아바르족(Avars) 등의 계속적인 침입으로 고통을 겪었다. 이들 야만인들의 침입은 결국 로마제국의 멸망을 재촉한 것이기도 했지만 포도경작에도 타격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788년에 프랑코니아에서 샤를르마뉴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하여 여러 군소 종족들이 할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를 평정하고 내친김에 오랜 전통의 포도재배를 크게 육성하였다. 이어 955년 신성로마제국을 오픈한 오토 대제가 마쟈르족을 오스트리아에서 몰아내고 도나우 주변의 포도 벨트를 안정시켰다. 이에 따라 수도원들과 교회들이 앞을 다투어 포도밭을 재건하고 포도재배에 열을 올렸다. 그때부터 수도원 레벨을 붙인 와인이 등장하게 되었다. 하기야 기독교와 포도는 '가나의 혼인잔치' '포도밭 비유' '최후의 만찬' 등 여러모로 관계가 깊으므로 수도원이 포도재배를 장악하고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다. 더구나 수도원에서도 성만찬용으로 포도주가 필요했다. 오스트리아 최초의 포도원으로 기록에 남아 있는 경우는 1208년 크렘저 잔트그루베(Kremser Sandgrube)였다. 1359년 루돌프 4세는 처음으로 와인세를 도입하였다. 바야흐로 비엔나가 도나우지역의 와인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으므로 세금을 거둘 명분이 생겼던 것이다. 당시의 와인세금은 운겔트(Ungeld)라고 불렀다. ‘돈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돈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오스트리아의 와인산업은 16세기에 만개하였다. 하지만 개신교와 가톨릭이 죽어라고 싸웠던 17세기의 30년 전쟁으로 나라가 황폐되는 바람에 와인산업도 빈사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백성들은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과도한 세금을 내야했다. 특히 당국은 별별 명목의 주세를 모두 개발하여 백성들에게 부과하였다. 예를 들면 와인을 저녁 6시 이후에 사서 마시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세월이 흘러 나라가 안정을 찾자 마리아 테레지아와 요셉 2세는 1780년, 오스트리아의 와인산업을 진흥시키기 위한 몇가지 칙령을 선포했다. 우선, 여러 가지 복잡한 주세를 통일하였다. 이어서 1784년의 칙령은 오스트리아 고유의 햇포도주 주점인 호이리거(Heuriger)를 육성한다는 내용이었다. 각 호이리거는 자기 집에서 만든 와인뿐만 아니라 음식도 팔수 있게 허락하였다. 새로운 와인시즌이 시작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소나무 가지를 문지방에 달도록 하는 규정도 만들었다. 그런 호이리게 주점을 부셴샹크(Buschenschank))라고 부른다. 부셰(Buschen)은 나뭇가지를 말한다. 아무튼 당시의 황제들은 별로 할일이 없었는지 별별 것들을 다 법으로 만들었다.

 

노이봘데그

 

19세기에 오스트리아 와인은 또 다른 곤혹을 치루었다. 생물학적 침략으로 고통을 겪었던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곰팡이병이 번저서 포도재배가 쑥대밭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하필이면 쑥대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엉망진창이라는 표현을 하려면 예외없이 쑥대가 대명사로 등장하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오스트리아의 포도나무는 가지에 솜털과 같은 곰팡이가 생겨서 죽어만 갔다. 북미로부터 전파된 곰팡이병이라고 했다. 오스트리아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클로스터노이부르크(Klosterneuburg) 수도원에 ‘연방포도경작연구 및 진흥연구소’를 설치했다. 초대 소장은 유명한 포도품종 개발자인 프릿츠 츠봐이겔트(Fritz Zweigelt)가 임명되었다. 츠봐이겔트라는 품종은 이때 개발된 것이다. 한편, 곰팡이병이 어느 정도 안정세를 찾게 되어 마음을 잡고 있는데 이번에는 포도나무 뿌리에 진디물이 생겨 포도나무를 말라 죽이는 병이 생겼다. 1872년부터 생겨난 필로세라(Phylloxera)라는 병이었다. 필로세라병은 오스트리아뿐만 아니라 중부 유럽 전역을 휩쓸며 맹위를 떨쳤다. 그로부터 포도나무의 건강을 회복하는데 수십년이 걸렸다. 하지만 역경은 또다른 기회가 되기도 했다.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여 종전의 허약한 품종들을 대체한 것이다. 그뤼너 벨트리너(Grüner Veltliner)는 대표적인 새로운 품종이었다. 오스트리아의 와인산업은 날로 발전하였다. 1차대전이후 오스트리아는 유럽 3위의 와인 생산국이 될 정도였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 오스트리아 신품종의 포도 개발의 본산이다.

 

20세기에 이르러 오스트리아의 와인산업은 대규모 비즈니스로 발전하였다. 주로 독일로 수출하였다. 때맞추어 1980년대 초반의 어느 해의 포도생산은 대풍이었다. 하지만 와인을 만들었더니 맛이 엷고 물로 희석한 듯 밋밋하며 신맛이 너무 많이 났다. 그런 와인은 아무도 마시지 않을 것이다. 몇몇 와인 브로커들은 큰일이라고 걱정하던 중, 다이에틸렌 글리콜을 조금 섞으면 와인을 파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다이에틸렌 글리콜은 자동차 부동액으로 사용하는 물질로서 쉽게 구할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다이에틸렌 글리콜을 조금 첨가했더니 와인 맛이 조금 달게 되었고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신맛도 사라졌다. 와인 브로커들은 쾌재를 불렀다. 다이에틸렌 글리콜을 첨가한 것은 수출검사에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뜻하지 아니한 데에서 문제가 터졌다. 다이에틸렌 글리콜을 사서 첨가했던 어떤 와인 브로커가 세금정산 할 때에 화학약품 구매에 따른 세금환급을 신청하였던 것이다. 당국은 와인 중간수출업자가 왜 화학약품을 구매하였는지 의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동액 스캔들’이 들어나게 되었다. 독일에 수출하는 오스트리아 와인에 첨가한 부동액은 인체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의 적은 양이었지만 오스트리아가 받은 타격은 국가경제를 휘청이게 할 정도였다.

 

사실상 와인에 포함되어 있는 알코올이 인체에 더 해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액을 넣었다는 보도가 터지자 오스트리아의 와인산업은 마치 2차대전 중에 공중폭격을 받은듯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나라마다 오스트리아 와인의 수입을 금지하였다. 유럽에서는 부동액 조크가 유행하였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부동액을 마시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도 반바지만 입고 잘들 돌아다닌다'는 따위의 조크였다. 그런데 부동액 스캔들은 결과적으로 오스트리아 와인산업의 구세주가 되었다. 이로부터 오스트리아정부는 철저한 규제로 우수한 품질의 와인만을 생산토록 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와인생산문화의 변화였다. 예를 들어 레드 와인을 보다 많이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에는 거의 모두 화이트만을 생산했었다. 이와 함께 오스트리아에서는 고급품질이 아니면 아예 생산을 하지 않는 문화가 조성되었다. 오늘날 오스트리아는 와인 생산량에 있어서 세계 19위에 불과하지만 와인의 품질에 있어서는 대단히 상위권에 들어가 있다.

 

비엔나 근교의 누쓰버그 포도원지대. 저 멀리에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그림같은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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