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스 이야기/전설따라 삼천리

산타클로스에 얽힌 전설

정준극 2009. 9. 16. 19:00

전설의 고향

 

미라의 주교인 성니콜라스는 생전에 많은 선행과 기적을 행하였다. 그레서 성니콜라스를 ‘기적을 이루는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니콜라스의 선행 중에서 특히 죽임을 당했던 세 어린이(또는 수도승)들을 살려낸 얘기는 성니콜라스의 대표적인 기적사례가 되어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께 간구할 사항이 있으면 성니콜라스를 통하여 간구하는 사람들이 많게 되었다. 성니콜라스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신발에 몰래 은전을 놓고 갔다. 그런 소문이 나돌자 가난한 사람들은 신발을 벗어 집 밖에 내다놓는 습관이 생겼다. 성니콜라스는 문밖에 내다 놓은 신발에 귀한 은전 한닢 씩을 얹어 놓아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 그로부터 성니콜라스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모델이 되었다. 어린이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산타클로스의 등록상표이다.

 

세처녀 집에 창문을 통해 지참금(황금 공)을 던져 넣고 있는 성니콜라스. 젠틸레 다 화브리아노 그림  

                           

성니콜라스와 관련한 가장 잘 알려진 전설로서는 가난한 집 세 딸에 대한 것이 있다. 어떤 마을에 딸 셋을 둔 가난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세 딸들은 나이가 차서 시집을 가야 했지만 가난한 사람은 지참금이 없어서 시집을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만일 지참금을 마련하지 못해 시집을 보내지 못한다면 딸들은 몸을 파는 창녀가 될지도 모르는 형편에 있었다. 성니콜라스가 그를 돕기로 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도와주면 자존심을 상하게 할지도 모르므로 몰래 돕기로 했다. 성니콜라스는 밤에 그 사람의 집에 가서 창문을 통해 금화가 들어 있는 주머니 세 개를 몰래 던져주었다. 가난한 사람은 뜻밖에 하늘에서 떨어진 금화를 가지고 부랴부랴 딸들을 시집보냈다.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성니콜라스는 금화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사흘밤에 걸쳐 한 개씩 던져 주었다고 한다. 또 어떤 이야기에 의하면 3년 동안 매년 한 개씩 던져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 딸들이 매년 한명씩 시집을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버전에 의하면, 3년째 되는 해에는 그 가난한 아버지가 도대체 누가 금화 주머니를 던져주는지 알아야 겠다고 생각하여 밤에 창문 밖에서 기다리다가 결국 성니콜라스와 마주쳤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이 성니콜라스에게 엎드려 절을 하며 감사하다고 말하자 성니콜라스는 ‘감사는 하나님이 받으셔야지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성니콜라스가 창녀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한 것은 창녀가 될 운명이었던 세 딸들을 구원해 준 전설 때문이다.

 

또 어떤 버전에는 금화주머니를 굴뚝을 통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딸들은 양말을 잘 빨아서 굴뚝 아래의 난로 가에 걸어 두었다고 한다. 성니콜라스가 굴뚝을 통해 던져준 금화주머니가 이들의 양말 속으로 들어갔음은 물론이다. 오늘날 세계적인 벽난로의 양말 풍습은 이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성니콜라스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는 전당포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원래 전당포라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성니콜라스를 수호성인으로 모시는 것은 이해가 된다. 전통적으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전당포의 문밖에 세 개의 황금 공을 걸어놓았다고 한다. 세개의 금화주머니를 상징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다른 모든 자선행위도 성니콜라스가 이름을 숨기고 행하는 것으로 믿었다.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성니콜라스가 그 재산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주고 있다고 믿었다. 성니콜라스가 세상을 떠나자 미라의 뜻 있는 사람들은 그의 유지를 받들어 계속 가난한 사람들을 몰래 도와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받는 사람들은 그것이 모두 성니콜라스가 주는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세 소년이 부활하여 나무통에서 기어 나오는 장면

                    

또 다른 전설은 세 어린이에 대한 것이다. 어느 해에 어떤 섬에 무서운 기근이 들었다.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뼈만 남은채 매일 같이 죽어나갔다. 푸줏간 주인은 팔 고기가 없자 어린아이 세명을 붙잡아서 죽이고는 고기를 햄으로 만들어 팔려고 했다. 마침 기근으로 고생하는 섬사람들을 돕기 위해 섬을 방문한 성니콜라스는 푸줏간 주인의 너무나도 악한 행동을 알아차리고 죽임을 당한후 곧이어 햄이될 신세인 세 아이들을 기도로서 모두 살렸다고 한다. 이같은 얘기는 11세기부터 전파되었는데 일설에 따르면 희생자들이 세 어린이가 아니라 세 명의 수도승이었다고도 한다. 세명의 수도승들이 죽임을 당하여 고기파이가 될 운명이었으나 성니콜라스가 기도로서 수도승들을 다시 살려 놓았다는 것이다. 모두 못먹고 굶주렸던 가난했던 시절의 전설이다. 그리스에서도 성니콜라스의 선행과 비슷한 전설이 있다. 그리스의 경우에는 케사리아라는 곳에 살았던 바실(Basil)이라는 사람의 얘기이다. 바실이 고기로 팔릴 운명에 있던 아이들을 기적으로 살렸다는 그리스의 민화는 터키의 성니콜라스의 전설과 흡사하다. 그리스에서는 1월 1일을 성바실의 축일로 삼고 있다. 이날에는 사람들이 선물을 교환하는 풍습이 있다. 남에게 먼저 선물을 주어야 자기도 받게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중세 영국에서는 성니콜라스 데이에 ‘소년 주교(비숍)’라는 퍼레이드가 거행되었다. 이날만은 어린아이들이 주교가 되어 교회의 장로들에게 지시를 해도 좋았다. 어린이들에게 큰 역할을 하도록 한것은 성니콜라스가 백정의 손에 죽임을 당했던 소년들을 기도로서 살렸다는 전설을 상기하여서이다.

 

영국에서의 소년주교 퍼레이드 그림. 이날만은 어른들이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풍습이 있다. 특히 교회에서. 하지만 아이들이 교회에서 장로님들에게 무슨 지시를 할수 있겠는가? 기껏해야 '사탕이나 좀 주시오' 정도일 것이다.   

 

성니콜라스의 고향인 미라(Myra)는 오늘날 터키 남부 지중해에 면하여 있는 안탈랴(Antalya)지방의 작은 도시이다. 고대 그리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 스타일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원형극장은 대표적이다.

 

성니콜라스의 고향인 미라에 있는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