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 이야기/막달라 마리아는 누구?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정준극 2009. 9. 22. 11:49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설]

 

예수가 일곱 마귀를 쫓아내 주어서 죄악에서 자유로워 진 마리아(막달라 마리아)는 그로부터 예수를 가장 헌신적으로 따르는 여인이 되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언제나 예수로부터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봉사하였다. 마리아는 예수와 제자들을 위해 자기의 재산을 바치기도 했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잡혀가고 사형선고를 받자 자기들에게도 화가 미칠 것 같아 두려워서 모두 피하였지만 담대한 마리아는 갈보리 언덕에까지 예수를 따라 갔던 몇 명 안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막달라 마리아는 성모 마리아와 함께 십자가의 아래에서 눈물을 흘리며 누구보다도 예수의 고난을 애통해 하였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을 가장 처음 목격한 사람도 마리아였다. 이 사실은 신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하여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처음으로 만난 이 세상의 사람이 바로 사랑하는 막달라 마리아였던 것이다. 그러한 막달라 마리아는 경외서의 내용과 비교적(秘敎的)인 전설에 따르면 예수의 부인으로서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할 싯점에 임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얘기는 예수의 신성(神性)에 영향을 주는 것이므로 나중에 복음서를 편찬하던 사람들이 성경에서 삭제했다는 것이다.

 

영화 다 빈치 코드 포스터. 이 영화에서는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 사이에 자녀가 태어났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얘기에 대하여는 세월과는 관계없이 논란이 분분하다. 예수결혼의 당위성에 대한 근거로서는 유태율법을 먼저 내세우고 있다. 예수가 활동하던 시절, 즉 로마의 압정 아래에 있었던 유태에서 노총각이나 홀아비로 사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노총각이나 홀아비는 거의 무조건 군인이나 노예로 끌려갔기 때문이었다. 원래 유태인의 전통에 의하면 유태인 남자는 13세에 성년이 되며 그때부터 결혼하여 가정을 꾸릴수가 있다. 이는 율법에 기록된바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말씀(미츠바)에 근거한 것이다. 예수는 어릴 때부터 유태인의 율법에 따라 성장하였다. 태어난지 8일 만에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았으며 그 후 어린 시절에는 부모를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공생기간 중에도 유월절을 지키는 등 율법에 따른 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나이 30 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않았을까?

 

막달라 마리아의 회심. 파올로 베르네세 작. 1543년


물론 예수가 기혼이었는지 미혼이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복음서에 결혼했다는 기록이 없으므로 미혼으로 간주하고 있을 뿐이다. 어머니 마리아는 적어도 16세에 목수 요셉과 정혼하였고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를 낳았다. 아버지 요셉도 예수가 탄생하였을 때에 30이 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셉도 유태 율법을 잘 지키는 진실하고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율법에 따라 ‘번성하기 위해’ 결혼을 서둘렀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막달라 마리아는 다른 어떤 여인보다도 성경에 자주 등장한다. 모두 13번 등장한다.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보다도 그 이름이 더 많이 등장하였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를 끝까지 헌신적으로 따라다닌 여인이었다. 부인이 아니라면 여인으로서 가정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다닐수 있었을까? 물론 형제자매나 부모도 없는 홀홀단신이라면 자유롭게 따라 다닐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말이다.

 

가나의 혼인잔치. 예수께서 제일 처음 이적을 보이신 것이 결혼식장이었으므로 결혼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막달라 마리아에 대하여 알고 있어야 하는 다섯가지 사항


- 로마 가톨릭은 막달라 마리아의 축일을 7월 22일로 정했다.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선포되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붙여진 수식어는 '제자들 중의 제자'(아포스톨로룸 아포스톨라)이다. 바티칸은 그보다 앞서서 막달라 마리아를 성인으로 시성하였다. 막달라 마리아가 다른 제자들보다 특별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를 처음 만난 사람'이며 '부활하신 예수께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도록 명하신 사람'이고 따라서 '부활의 기쁨을 처음으로 전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또 다른 설명에 따르면 막달라 마리아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의 상징'이기 때문에 성인으로 받들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스페인 카탈로니아 박물관


- 막달라 마리아는 성인으로 공경하는 것은 가톨릭 교회뿐만 아니라 동방정교회, 성공회, 루터교회, 그리고 바하이 신앙에서 그러하다. 막달라 마리아는 회개하는 죄인들의 수호성인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또한 명상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이다. 그런가하면 회심자, 장갑장이, 헤어드레서, 향수장이, 가죽 무두장이, 약사들의 수호성인이며 신앙 때문에 조롱받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이다. 그리고 물론 잠시 섹스에 대한 유혹이 생기는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헤어드레서들의 수호성인인 것은 그가 예수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바르고 긴 머리칼로 씻었다는 얘기 때문인것 같다. 약사들의 수호성인인것도 그가 평소에 의료용으로 사용할수 있는 향류를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수 있다. 그런데 장갑장이의 수호성인인 것은 이유를 잘 모르겠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어 씻음. 루벤스 작


- 막달라 마리아라고 하면 공연히 창녀라는 생각을 갖는다. 그러나 성경의 어느 곳에도 그가 창녀였다는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였다는 얘기가 있지만 성경에는 그런 내용의 기록이 한 군데도 없다. 그러나 화가들은 막달라 마리아를 창녀의 모습으로 그리기도 했다.


- 막달라 마리아는 용기있는 여인이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제자들은 요한만 제외하고 모두 어디론가 숨어 있었다. 예수와 한 패였다는 것이 알려지면 곤혹을 치룰 것이 두려워서였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여인의 몸으로서 골고다의 십자가 아래까지 가서 예수께서 운명하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로마 병사들을 두려워하지 않은 용기있는 여인이었다. 십자가 아래에는 막달라 마리아 이외에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제자인 요한이 함께 있었을 뿐이었다.


예수를 장사지내려고 함. 라파엘작. 16세기.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시체의 지근에서 모시고 있고 성모 마리아는 혼절하여서 다른 여인들의 부축을 받고 있다.


-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의 마리아는 같은 여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므로 베다니의 마르다는 막달라 마리아의 언니가 되며 나사로는 오빠가 된다. 예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셨을 때에 언니 마르다는 예수께 대접할 음식을 준비하느라고 분주하였지만 동생 마리아는 예수의 발 아래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마르디가 불평의 소리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실은 마르다가 동생 마리아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도록 일부러 배려했다는 얘기가 있다.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 씌였다가 예수께서 귀신들을 몰아내 주시어서 온전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남아 있던 터였다고 한다.


1900년대의 막달라 마을. 폐허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