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 이야기/이런저런 에피소드

막달라 마리아의 사랑

정준극 2009. 9. 22. 17:08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와 결혼했었다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내지 소문에 대하여 조금 더 살펴보자. 우선 이것은 순전히 일부 사람들에 의해 전해 내려오는 얘기일 뿐이며 확고한 근거가 없는 내용임을 덧붙인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찌하여 예수의 결혼에 대하여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학자들의 생각이다. 예수라고 해서 결혼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다는 말이냐는 얘기이다. 30세나 된 남자인데 결혼도 하지 않고 지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우선 세계의 3대 종교라고 하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창시자들의 결혼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불교는 석가모니가 창시했으며 이슬람교는 무하마드(마호메드)가 시작하였고 기독교는 예수에 의해 일으켜진 종교이다. 석가모니(석가족 출신의 성자)와 마호메드는 모두 결혼한 경력이 있다. 고타마 석가모니는 16세 때에 아버지 수도다나(Suddhodana)가 주선하여 동갑인 야소다라(Yasodhara) 공주와 결혼하였고 아들 라훌라(Rahula)까지 두었다. 야소다라 공주는 석가모니의 사촌이었다. 두 사람은 13년간 결혼생활을 하였다. 석가모니는 29세가 되던 해에 가족들을 뒤로 두고 용감하게 가출하였다. 나중에 부인 야소다라와 아들 라훌라는 모두 신실한 불교 신자가 되었다.

 

십자가상의 그리스도. Simon Vouet 작품. 성모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글로바의 마리아, 사도 요한의 모습을 볼수 있다.

 

마호메드(Muhammad: Mohammed)는 어떠한가? 25세에 카디쟈(Khadija)라는 부유한 과부와 결혼하였다. 카디쟈는 마호메드보다 훨씬 연상이었다. 두 사람은 25년간 결혼생활을 하였다. 딸 화티마까지 두었다. 카디쟈가 세상을 떠난후 마호메드를 헌신적으로 추종하며 후원하던 실력자 아부 바크르(Abu Bakr)가 마호메드의 재혼을 주선하였다. 두 사람의 후보가 있었다. 하나는 과부인 사우다(Sawda)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부 바크르의 6살 난 딸인 아이샤(Aisha)였다. 마호메드는 둘 중의 하나를 택할 입장이 되지 못하여 과부 및 어린 아이샤와 차례로 결혼하였다. 이후 마호메드는 토탈 13명의 여인을 부인의 리스트에 올렸다. 대단하다. 그런데 기독교는 어떠한가? 결혼은 신성한 것이며 하나님이 주선해 주시는 것이라고 믿으면서도 예수의 결혼에 대하여는 마치 금기사항처럼 얘기하기를 꺼린다.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하신 후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이브를 만들어 함께 살도록 하고 이 세상에서 번성토록 했다. 그러므로 결혼하여 자녀들을 낳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예수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예수가 결혼을 하지 않고 30세가 되도록 혼자 생활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이 아닐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도 결혼했으며 부인은 바로 막달라 마리아라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19세기 막달라 마리아의 대표적인 이미지. 아리 셰퍼(Ary Scheffer) 작품 

 

어떤 주장에 의하면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는 결혼하여 사라(Sarah)라는 딸까지 두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의 혈통이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누가 예수의 후손이라는 말인가? 이에 대한 얘기를 서서히 풀어보자. 믿거나 말거나! 근자에 이르러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결혼했다는 내용을 적극적으로 선전한 사람은 댄 브라운(Dan Brown)이다. 그는 2003년에 내놓은 소설 ‘다 빈치 코드’를 통하여 그런 내용을 마치 사실처럼 설명했다. 댄 브라운을 비롯한 일부 작가들은 예수의 결혼 사실을 복음서의 저자들이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으며 바울서신에서도 의도적으로 삭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작가들은 자기들의 주장이 경외서와 그노시스교(비교)의 기록에 근거한 것이라고 내세웠다. 예를 들어 빌립복음서(Gospel of Philip)에는 막달라 마리아를 다른 어느 제자들보다 예수와 가까운 사이, 즉 그리스어로 코이노노스(Koinonos)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코이노노스는 ‘가까운 친구’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반자’(반려자)라는 뜻이 더욱 강하다.

 

막달라 마리아. Giovanni Bellini 작품

 

경외서인 빌립복음서에는 주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다른 어느 제자보다도 사랑하시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자주 키스를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신학자들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와 결혼했다는 기록이 없음을 상기하였다. 그러면 빌립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와 가장 가까운 ‘동반자’(Companion)라는 표현은 어떤 대상을 말하는 것인가? 동반자란 상대방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으며 상대방의 말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가 그랬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주 키스를 하였다는 것도 당시 관습으로 제자들이나 가깝게 따르는 사람들과 키스를 하는 것이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자주 키스를 하였다는 것은 로맨틱한 사항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찌하여 빌립은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자주 키스를 하였다는 것을 강조하였을까?

 

옥합을 들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 마치 주교와 같은 망토를 걸치고 있다. 안토니 아우구스투스 샌디스 작품. 1860년.

 

그건 그렇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상당수 학자들은 예수가 30세가 넘도록 결혼하지 않은 것은 유태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구나 어릴 때부터 성전에서 지냈기 때문에 신실하기가 이를데 없는 마리아와 의로운 사람인 요셉이 큰 아들 예수의 결혼문제를 율법을 어기면서까지 등한시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이미 결혼하였음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다른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들도 많다. 당시 유태사회에서는 랍비의 역할이 정착되지 않아서 유태 율법이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았으므로 일찍 결혼하는 것이 강제조항이 아니라는 주장이며 그 예로서 세례요한도 나이 30세가 되도록 결혼하지 않았고 사도 바울도 그 나이에 미혼이었다는 점을 들었다. 유태 사회에서 랍비의 역할이 정착된 것은 주후 70년 경,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 제2의 성전이 파괴된 이후부터라고 보고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전하는 전도자의 입장에서 수입도 없이 결혼하여 가정을 가지고 정착한다는 것은 곤란한 일이라는 설명이었다. 로마 가톨릭에 의해 초대 교황으로 받들어 모셔지고 있는 베드로는 일찍이 결혼하였다. 성경에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리자 예수께서 고쳐주셨다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부인은 어떻게 생겼을까? 둔둔할까 날씬할까? 자녀들은 과연 있었을까? 바티칸의 초대 교황인 베드로는 결혼하여 가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다음의 교황들은 죽을 때까지 독신을 고수하였고 지금도 그렇다. 대단하다.

 

 

다음은 문화일보 2012년 9월 19일에 게재된 기사내용이다.

 

예수가 '나의 아내'를 직접 언급한 것을 기록한 4세기 콥트어 문서가 12일 국제학회에 정식으로 보고됐다. 예수가 결혼해 자신의 아내를 제자로 삼고 자녀를 낳았다는 설은 그동안 각종 성경 외경과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 등에서 제기한 적이 있지만, 예수가 '아내'를 언급한 것이 기록된 문서가 학계에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뉴욕타임스(NYT), 보스턴글로브, 하버드대 매거진은 초기 기독교 연구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지닌 캐런 L 킹(58) 하버드대 신학부 교수가 18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최된 국제 콥트학회에 4세기 콥트어로 작성된 파피루스 문서 파편을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킹 교수는 '예수 아내의 서(書)'로 명명한 이 문서 파편의 콥트어 텍스트를 해독한 결과, "예수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의 아내'…" "그녀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아는 그럴 만하다" 등의 내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는 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을 통해 이 문서를 "예수가 자신의 아내를 지칭한 현존하는 유일한 텍스트"로 평가했다.

 

특히 세계 3대 파피루스 전문가로 꼽히는 로저 배그널 뉴욕대 교수, 초기 기독교 연구 분야 권위자 앤 마리 류젠디크 프린스턴대 교수, 고대 콥트어 전문가인 아리엘 쉬사 할레비 이스라엘 헤브루대 교수로부터 파피루스 문서와 텍스트가 진본으로 확실시된다는 확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오는 2013년도 '하버드 신학리뷰' 1월호에 게재될 예정이다. 킹 교수는 18일 문서 파편의 앞면과 뒷면 사진을 하버드대 신학부 홈페이지(http://www.hds.harvard.edu)에 공개하고, 콥트어 문장의 영어 번역문을 게재했다. 또한 "이것을 예수가 결혼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는가" 등 12개 질문을 올려 학생 및 학계의 보다 적극적인 논의를 촉구했다.

 

킹 교수는 NYT와 인터뷰에서 "예수 사후 수백년 후에 작성된 문서이니만큼 이것을 예수가 결혼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로 볼 수는 없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내면서도 "이미 2~4세기부터 예수 결혼이 신자의 관심사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킹 교수는 '유다 읽기:유다서와 기독교 형성' 등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 서적을 출간한 초기 기독교 분야 전문가로,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하버드대 '홀리스석좌교수'직을 지난 2009년부터 보유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교황청은 2012년 9월 29일 성명을 내고 문제의 문서라는 것은 가짜라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