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세계의 여왕: 빅토리아

알버트와의 만남

정준극 2009. 10. 15. 12:48

세계의 빅토리아여왕 - 5

 

[알버트와의 만남]

빅토리아가 남편이 될 알버트공(1819-1861)을 처음 만난 것은 빅토리아가 17세 때인 1836년이었다. 빅토리아와 동갑인 알버트는 외사촌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빅토리아가 3개월 연상이었다. 알버트의 공식 타이틀은 작세-코부르크 및 고타 왕자(Prince of Saxe-Coburg and Gotha)였다. 작세-코부르크 및 고타는 독일에 있는 작은 공국이었다. 알버트의 아버지는 빅토리아의 외삼촌인 에르네스트3세(Ernest III)의 아들이었다. 에르네스트도 자기 아들 알버트가 누이동생의 딸, 즉 조카인 빅토리아와 짝이 맺어지는 것을 크게 환영하였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빅토리아가 처음에는 알버트를 별로 신통치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빅토리아는 알버트에게 처음부터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정답이었다고 한다. 빅토리아는 알버트를 만난 후에 이렇게 기록했다.

 

“정말 멋쟁이다. 그 사람의 머리칼은 나와 색깔이 같다. 그 사람의 눈은 크고 푸르다. 그 사람은 코가 잘 생겼으며 입도 잘 생겼고 더구나 치아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장 매력적인 것은 그의 말솜씨였다. 정말 즐거웠다” 빅토리아는 외삼촌인 벨기에의 레오폴드1세에게도 편지를 보내어 “나를 위해 그를 보내심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 사람은 나를 전적으로 행복하게 해 줄 자격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빅토리아가 아직 17세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은 조금 이르다고 생각하여 늦추었다.

 

젊은 시절의 알버트 공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837년 6월 20일, 빅토리아는 대영제국의 왕관을 쓰게 되었다. 빅토리아는 비록 군주가 되었지만 아직 결혼 전이기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지내야 했다. 여왕이 된 빅토리아는 자기가 어린 시절부터 받아왔던 켄싱턴 시스템의 교육에 대하여 대단히 불만스럽게 생각했다. 은근히 똑똑한 빅토리아는 이미 오래전부터 켄싱턴 시스템이 결국 자기를 어머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구속하는 조치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있었다. 여왕이 된 빅토리아는 어머니를 버킹엄 궁전의 한쪽 구석에 있는 방에서 지내게 했다. 어머니와 되도록 멀리 떨어져서 지내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빅토리아는 어머니가 만나고자 요청해도 응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수상인 멜버른 경은 빅토리아에게 어머니에게서 벗어나려면 결혼을 하라고 종용하였다. 빅토리아는 외사촌인 알버트를 장래의 신랑감으로 생각해서인지 알버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려면 충분한 교육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권장하였다. 하지만 빅토리아는 알버트와의 결혼을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어서 속히 결혼하소서!’라고 주장하는 이면에는 무슨 흑심이 있다고 생각하여 경계하였다.

 

빅토리아여왕과 알버트공이 결혼식을 올린 성제임스채플

 

[헤이스팅스 사건]

여왕으로서 빅토리아는 국민들 사이에서 대단히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빅토리아의 명성은 1939년의 플로라 헤이스팅스(Flora Hastings)부인 사건으로 상당한 손상을 입었다. 빅토리아의 어머니인 켄트공작부인의 시종부인인 헤이스팅스는 복부에 종양이 생기는 바람에 시간이 지날수록 배가 비정상적으로 팽창하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은 헤이스팅스 부인의 배가 불러오는 것을 보고 왕실 재정관인 존 콘로이 경과 관계를 맺어 임신한 것이라면서 수군거렸다. 켄트공작부인으로서는 너무나 기분 나쁜 소문이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한 대로 34세의 젊은 나이로 과수댁이 된 켄트공작부인은 존 콘로이 경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는 존 콘로이 경이 다른 여자와 섬싱이 있다는 것은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켄트공작부인은 헤이스팅스부인에 대한 소문이 이상하게 확산되자 차제에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실확인을 위해 헤이스팅스 부인에게 의사의 진찰을 받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헤이스팅스 부인은 자기의 병을 감추기 위해 의사에게 가서 진찰을 받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레이디 플로라 헤이스팅스

 

[어머니와의 불화]

빅토리아여왕은 콘로이 경을 무척 싫어하였다. 우선 엄마와 붙어 지내면서 수작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게다가 빅토리아는 콘로이 경이 켄싱턴 시스템을 만들어 자기의 어린 시절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헤이스팅스와 콘로이 경이 이상한 관계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빅토리아여왕은 그 소문을 듣고 콘로이경 과 헤이스팅스 부인을 함께 미워하였다. 얼마후 헤이스팅스 부인은 주위의 강권에 못이겨 마침내 의사의 진찰을 받았다. 복부에 암이 생겼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헤이스팅스 부인은 1939년 7월에 세상을 떠났다. 몇 달후, 콘로이 경의 가족들과 헤이스팅스 부인의 가족들은 여왕이 고의적으로 거짓 소문을 퍼뜨려서 두 사람 모두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며 언론 플레이를 했다. 그래서 빅토리아여왕은 한때 아주 곤혹스러운 입장이 되었다. 빅토리아여왕은 이 모든 것이 어머니인 켄트공작부인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라고 믿었다. 빅토리아여왕은 어머니인 켄트공작부인을 버킹엄궁전에서 나가 살도록 했다. 이후 빅토리아는 오래동안 자기의 어머니를 거의 만나지 않았다.

 

빅토리아여왕의 어머니 켄트공작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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