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세계의 여왕: 빅토리아

어라운드 더 월드

정준극 2009. 10. 15. 12:54

세계의 빅토리아여왕 - 10

 

[어라운드 더 월드](Around the World)

 

빅토리아여왕은 국제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었다. 대영제국의 군주로서 상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여러 나라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능력이 있는 여걸이었다. 가족관계 때문이었다. 빅토리아여왕의 가족들은 유럽의 여러 나라와 혼인을 통하여 인척이 되었다. 그래서 빅토리아여왕을 ‘유럽의 할머니’라고 불렀던 것이다. 빅토리아와 알버트는 9명의 자녀와 42명의 손자들을 두었다. 빅토리아의 후손들은 증손자들까지 합하면 수백명에 이른다. 2009년 현재 빅토리아의 후손으로서 군주를 지냈거나 현재 군주로 되어 있는 인물들을 살펴보면 영국의 엘리자베스2세 여왕(남편 필립공도 빅토리아여왕의 후손에 포함된다), 노르웨이의 하랄드5세 국왕, 스웨덴의 칼 구스타프16세 국왕, 덴마크의 마르그레테2세 여왕,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1세 국왕(왕비도 포함된다), 폐위된 그리스의 콘스탄틴2세 국왕(왕비도 포함), 추방된 루마니아의 미하엘 국왕 등을 꼽을수 있다. 공화국이 되기 이전의 세르비아, 제정러시아, 프러시아의 왕실도 빅토리아여왕의 후손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시드니 타운홀 앞의 빅토리아여왕 기념상

 

세계에서 빅토리아여왕을 기려서 그의 이름을 붙인 지명은 수도 없이 많다. 아마 이만큼 많은 지명을 제공한 인물은 역사상 빅토리아여왕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호주의 빅토리아 주와 퀸스랜드(Queensland) 주는 대표적이다. 캐나다의 브리티쉬 컬럼비아의 주도는 빅토리아이다. 사스카치완의 주도인 리자이나(Regina)도 빅토리아여왕을 뜻하는 이름이다. 인도양에 면한 셰셀군도(Seychelles)의 주도는 빅토리아이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호수의 이름도 빅토리아이다. 세계에서 가장 장대한 폭포의 이름은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폭포(Victoria Falls)이다. 지중해의 말타군도에 있는 고조(Gozo)섬의 수도는 시타 빅토리아(Citta Victoria)로서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시타 빅토리아의 옛이름은 라바트(Rabat)였다. 이밖에도 수많은 거리, 광장, 연구소, 교량, 건물 등이 빅토리아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짐바브웨 쪽에서 바라본 빅토리아폭포

 

[빅토리아 데이]

 

캐나다는 빅토리아여왕의 탄생일인 5월 24일을 ‘빅토리아 데이’로 지정하여 경축하고 있다. 빅토리아 데이는 대체로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쉬므로 이를 롱 위크엔드(Long weekend)라고 부른다. 빅토리아 데이에는 현재의 군주인 엘리자베스2세의 생일도 겸하여 축하한다. 빅토리아 데이에 대하여는 나중에 별도로 자세히 설명코자 한다. 빅토리아 데이가 캐나다에서만 축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스코틀랜드의 어떤 지역에서도 빅토리아 데이를 두어 축하한다. 특히 에든버러(Edinburgh)와 던디(Dundee)에서는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캐나다의 영어권 지역에서는 빅토리아 데이라고 부르지만 불어권 지역에서는 페트 드 라 렝(Fete de la Reine)라고 부른다. 여왕의 축일이라는 뜻이다.

 

런던 버킹엄 궁전 앞 광장에 있는 빅토리아 기념상(클로스 업) 

 

[수많은 기념상]

 

세계에서 기념상이 가장 많은 인물은 누구일까?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짐작컨대 예수님의 기념상(특히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이 가장 많을 것이며 2위는 부처님, 3위는 아마 성모 마리아, 그리고 4위는 빅토리아 여왕일 것이다. 실로 빅토리아여왕의 기념상은 전세계에 헤아릴수 없이 많다. 가장 유명한 것은 런던 버킹엄궁전 앞 광장에 있는 장엄한 빅토리아 메모리얼(Victoria Memorial)의 기념상이다. 이 기념상은 여왕의 서거후 버킹엄궁전의 정면 부분을 리모델링하면서 세운 것이다. 너무 규모가 커서 아래에서 보면 여왕의 얼굴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가하면 심지어 가나(Ghana)의 케이프 코스트(Cape Coast)라는 마을에 있는 작은 공원에도 빅토리아 여왕의 기념상이 서 있다. 이처럼 빅토리아여왕의 기념상은 대도시의 중심가에도 있지만 한가한 시골마을에도 자리 잡고 있다.

 

캐나다 오타와의 팔리아멘트 힐에 있는 빅토리아여왕 기념상

 

빅토리아여왕의 기념상은 호주에 가장 많다. 사우드 오스트레일리아의 수도인 애덜레이드(Adelaide)의 빅토리아 스퀘어(광장)에 빅토리아여왕의 기념상이 있다. 퀸스랜드의 수도인 브리스베인(Brisbane)의 퀸스 스퀘어(여왕 광장)에도 기념상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수도 멜버른의 도메인 가든(Domain Garden)에도 기념상이 있다. 뉴 사우드 웨일스의 수도인 시드니의 퀸 빅토리아 빌딩 입구에 있는 기념상은 아일랜드 의사당 앞뜰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시드니에는 맥퀘리 스트리트(Macquarie Street)에 있는 연방법원 앞마당에도 여왕의 기념상이 있다. 바로 길 건너에는 알버트공의 기념상이 서 있어서 서로 마주보는 것 같다.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의 수도인 퍼스(Perth)에는 킹스 파크에 빅토리아여왕의 기념상이 서 있다. 워털루 전쟁에서 사용되었던 대포들에 둘러싸여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빅토리아 주에 있는 발라라트(Ballarat)시에는 동상이 서 있다. 인도의 방갈로어(Bangalore)에는 중심가인 마하트마 간디 거리의 초입에 빅토리아여왕의 기념상이 서 있다. 캐나다에는 곳곳에 여왕의 기념상이 있다. 온타리오 주 토론토의 중심가인 유니버시티에 있는 온타리오 정부청사 앞에도 여왕의 기념상이 장엄하게 마련되어 있다.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에는 더 많이 있다.

홍콩 커스웨이 베이의 빅토리아 파크에 있는 빅토리아여왕 기념상

 

영국 영토였던 홍콩에는 홍콩섬의 커스웨이 베이(Causeway Bay)에 있는 빅토리아 파크에 여왕의 기념상이 있다. 원래는 센트랄(Central)의 스태튜 스퀘어(Statue Sqaure)에 있었는데 일본이 홍콩을 점령했을 때 도쿄로 가져가기 위해 해체하여 한쪽에 보관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자 홍콩을 다시 차지한 영국정부는 즉시 여왕의 기념상 잔해를 찾아와 빅토리아 파크에 세웠다. 말타의 수도인 발레타(Valletta)의 중심가에도 여왕의 기념상이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나탈(Natal)을 비롯한 몇 곳에 여왕의 기념상이 있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이 없어서 이만 줄인다.

 

인도 콜카타(Kolkata)에 있는 빅토리아 메모리얼

 

빅토리아여왕은 1892년 7월, 아프리카 라이베리아(Liberia)의 마사 앤 릭크(Martha Ann Ricks)여사를 윈저성에 초청하였다. 릭스는 미국 테네시주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자유를 얻어 라이베리아에 와서 살고 있었다. 그는 여왕이 영국해군에게 명령하여 아프리카 서해안을 지키도록 한데 대하여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라이베리아에서 런던으로 가기로 하고 그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전 한 푼이라도 저축하였다. 영국해군은 아프리카 서해안에서 비밀리에 노예무역을 하는 배들을 색출하기 위해 동원되었다. 릭스는 여왕의 손을 잡고 감사의 말을 했으며 커피나무로 만든 누비이불을 선물하였다. 여왕은 이 누비이불을 이듬해인 1893년 컬럼비아에서 열린 엑스포에 전시토록 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누비이불의 행방은 묘연하다. 

 

카이라 힉스가 쓴 '마사 앤 릭스의 누비이불' 소설 표지. 릭스로부터 받은 누비이불은 어디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