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세계의 여왕: 빅토리아

[참고자료 8] 플로라 스캔들

정준극 2009. 10. 15. 13:26

[참고자료 8]

플로라 스캔들

(Lady Flora Scandal)

 

플로라 스캔들은 빅토리아가 여왕이 된 직후에 버킹엄 궁에서 있었던 대단한 가십의 스캔들로서 빅토리아여왕의 명성에 적지않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었던 사건이었다. 빅토리아여왕의 어머니인 켄트공작부인의 시녀였던 레이디 플로라에 얽힌 스캔들이기 때문이다. 사건은 기본적으로 궁전 사람들 간의 반목과 질시에서 발단된 것이었다. 레이디 플로라의 풀 네임은 레이디 플로라 엘리자베스 러던-헤이스팅스(Lady Flora Elisabeth Rawdon-Hastings)였다. 여성에게 수여하는 레이디(Lady)라는 호칭은 경(Sir)과 같은 작위에 해당하는 명예로운 것이다. 플로라는 헤이스팅스 가문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플로라 스캔들을 헤이스팅스 스캔들이라고도 부른다.

 

레이디 플로라 헤이스팅스

 

빅토리아여왕의 어머니인 켄트공작부인은 일찍이 남편과 사별하자 자기의 개인비서인 존 콘로이(John Conroy)와 누가 보던지 각별한 사이로 지냈다. 항간에서는 콘로이가 켄트공작부인의 정부(情夫)가 되었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콘로이는 빅토리아의 어머니의 개인비서이면서도 자기가 무슨 전체 가족들의 보호자나 되는 것처럼 어린 빅토리아 공주의 생활에도 일일이 간섭하였다. 빅토리아가 나중에 여왕이 될 것을 대비하여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철저하게 막고 자기의 말만을 듣도록 한 것은 대표적인 간섭이었다. 콘로이는 이른바 켄싱턴 시스템(Kensington System)을 만들어서 어린 빅토리아가 그 시스템 안에서만 행동하도록 하였다. 즉 빅토리아의 교육에서부터 대인관계에 이르기까지 일일히 간섭하는 일종의 브레이크 시스템이었다. 빅토리아의 어머니인 켄트공작부인은 콘로이가 자기와 딸 빅토리아를 위해 이토록 불철주야 고심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 그 즈음에 켄트공작부인의 시녀로서 레이디 플로라 헤이스팅스라는 여인이 있었다. 반반하게 생기고 애교도 상당히 있는 그런 여자였다. 레이디 플로라는 켄트공작부인의 시녀로서 지내면서 콘로이와 대단히 가깝게 지냈다. 심지어는 플로라와 콘로이가 항간에서 말하는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당시에 궁정에서 귀부인 시녀들과 궁정의 지체 높은 관리들 간에 썸싱이 있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콘로이는 홀몸이 된 주인 마님인 켄트 공작부인과도 지나칠 정도로 가깝게 지내면서 주인 마님의 시녀인 레이디 플로라와도 이상한 소문이 나돌 정도로 가깝게 지냈던 것이다.


빅토리아여왕의 어머니인 켄트공작부인

 

빅토리아는 어릴 때부터 날이면 날마다 어머니 옆에 붙어서 자기를 위하는 척 하면서 실은 감시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콘로이가 무척 싫었다. 빅토리아는 콘로이와 이상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들리는 레이디 플로라도 싫어하였다. 빅토리아에게는 레젠(Lehzen)남작부인이라는 가정교사가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레이디 플로라는 레젠을 싫어하였다. 말로만 싫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온갖 비방과 모함을 서슴치 않았다. 플로라는 나중에 빅토리아가 여왕이 된 후에 수상으로 임명한 멜버른경도 미워하였다. 멜버른경이 빅토리아여왕에게 별별 자문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런 플로라인데 이상하게도  여러 사람으로부터 호감을 받았다. 생긴 것도 곱상하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시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뒤에는 여왕의 어머니인 켄트공작부인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플로라의 시작(詩作)들은 그의 사후에 Poems by the Lady Flora Hastings(레이디 플로라 헤이스팅스 시집)로 발간되기까지 했다. 빅토리아여왕은 잘난체 하고 자기를 무시하는 플로라를 한번 혼내주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원인제공자인 존 콘로이경. 그럴듯하게 생겼다.

 

1839년에 들어서서 플로라는 통증과 함께 아랫배가 자꾸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플로라는 어의인 제임스 클라크(James Clark)경을 찾아갔다. 의사는 얘기만 들어서는 무슨 증상인지 알수 없으므로 정밀 진단을 해보자고 권유했다. 그러나 플로라는 배가 부풀어 오르는 증상이기 때문에 미혼녀로서 공연히 이상한 소문이 나면 곤란하므로 검진을 거절하였다. 의사는 플로라가 임신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생리도 끊어졌다고 하므로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의사는 플로라가 미혼이기 때문에 임신이니 무어니 하는 말을 자칫 잘못 꺼내면 곤란하므로 자기의 생각을 일체 입 밖에도 내지 않았다. 플로라의 적인 레젠남작부인과 그의 친구로서 빅토리아여왕과도 자주 만나는 타비스토크 후작부인인 엘리자베스 케펠(Elisabeth Keppel)이 간호원을 구어 삶아서 플로라가 임신한것 같다는 소식을 캐내었다. 두 사람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엘리자베스 케펠은 여왕을 비롯한 왕궁의 귀부인들과 매일 오후에 티타임을 갖고 수다를 떨고 지낼 정도로 입김이 센 여자였다. 사족이지만, 영국에서 오후의 차 시간(Afternoon Tea)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다름 아닌 타비스토크 후작부인이었다.

 

영국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엘리자베스 케펠 - 타비스토크 후작부인의 모습. 타비스토크 후작부인은 영국에서 Afternoon Tea를 처음 시작한 인물이다.

 

타비스토크 후작부인은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귓속말로 ‘당신에게만 말하는 비밀인데...’라면서 플로라가 임신했다면서 마치 기정사실처럼 소문을 퍼뜨렸다. 타비스토크 후작부인의 얘기를 들은 여인네들이 타비스토크 후작부인을 붙잡고 ‘아니, 도대체 상대가 누구야요? 네?’라고 궁금해서 못견디겠다며 물어보면 ‘누군 누구야! 콘로이가 뻔하지!’라고 은근히 말해주었다. 그러자 플로로와 라이발 관계에 있는 레젠 남작부인이 수상인 멜버른경을 만나 ‘플로라가 콘로이의 아이를 가진것 같은데 이건 걱정스러운 문제’라고 귀띰해 주었다. 멜버른으로서는 만의 하나라도 플로라가 아들을 낳아서 이 아이가 이미 고인이 된 에드워드의 아들이니 뭐니하고 주장하면 왕위 계승문제가 곤란하게 되므로 걱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일이 제대로 되느라고 그랬는지 어떤지 하여튼 이 얘기가 여왕의 귀에도 들어갔다. 빅토리아여왕은 일지에 ‘플로라의 아이는 콘로이의 아이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라고 썼을 정도이니까 일이 확대되어도 대단히 확대되었다. 콘로이를 극도로 증오했던 빅토리아는 소문을 사실처럼 받아들였던 것이다.

 

레젠남작부인

 

사태가 걷잡을수 없이 확산되고 드디어 플로라도 그런 소문을 알게 되었다. 플로라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가지고는 안되겠다!'라고 생각하여 스스로 왕실 의사들을 찾아가서 정밀검진을 받았다. 임신한 것이 아니라 간암에 걸렸다는 진단결과가 나왔다. 간에 종양이 생겨서 자꾸 커지는 바람에 아랫배가 불러왔다는 것이며 생리도 불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늦은 진단이었다. 플로라는 겨우 한달밖에 살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다. 그해 5월, 플로라는 33세의 젊은 나이로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레이디 플로라의 시신은 스코틀랜드의 헤이스팅스가문 영지에 있는 루돈(Loudoun)성에 안치되었다. 플로라의 오빠들과 소문의 당사자였던 콘로이는 억울해서 잠을 잘수가 없었다. 아무리 여왕이라고 해도 너무한다고 생각했다. 플로라의 오빠인 헤이스팅스경은 콘로이경과 합세하여 레젠남작부인, 타비스토크후작부인, 어의인 제임스 클라크를 공격하는 가두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플로라의 명예가 크게 훼손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문의 명예도 크게 타격을 입었으므로 관련자들이 사과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여왕도 플로라 음모의 공범자라면서 비난했다. 아무튼 이로써 도덕성을 우선으로 삼았던 빅토리아여왕은 명예에 타격을 받았다. 그후 빅토리아여왕은 남편 앨버트공의 권고에 따라 레젠남작부인을 궁정에서 파면하였으며 타비스토크후작부인의 궁정 출입을 금지하였다. 그리고 스캔들의 핵심에 있었던 콘로이경은 미국으로 유배를 보냈다. 그것이 플로라 스캔들의 전말이었다.

 

플로라 헤이스팅스의 영묘가 있는 스코틀랜드 갈스톤의 루돈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