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성물들/창에 얽힌 이야기

론기누스에서 모리스에게

정준극 2009. 11. 3. 00:22

[론기누스에서 모리스에게]

 

창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로마병사 론기누스는 안염(Ophtahlmia)을 앓고 있었다. 거의 실명할 정도의 중증 안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핏방울이 자기의 눈에 떨어지자 고통을 주던 안염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고 한다. 나중에 론기누스는 북아프리카의 로마군단으로 전보되었다. 론기누스는 언제나 성창을 지니고 다녔다. 따지고 보면 론기누스라는 이름도 라틴어의 창이라는 단어와 무관하다고 볼수 없다. 창(Lance)은 라틴어로 Logche라고 하는데 이 단어가 Logchinos, Logginos, Longinus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 아래에 있었던 로마병사의 이름을 론기누스라고 한 것은 단순히 창병(槍兵)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추측도 있다. 그건 그렇고, 안염이 고침을 받은 론기누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여 믿게 되었다. 북아프리카에 온 론기누스는 자기가 보고 경험한 것을 동료 병사들에게 증거하였고 이에 감동한 모든 로마병사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얼마후 론기누스는 세상을 떠날 때에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성스러운 창을 동료 신자에게 전해 주었다.

 

바티칸의 성베드로성당에 있는 성론기누스 기념상

 

세월이 흘러 3세기가 되었을 때에는 북아프리카 로마군 수비대의 지휘관인 모리스(Maurice: Mauritius: Moritz)가 성창을 보유하게 되었다. 당시 6천6백명(어떤 자료에는 6,666명)에 이르는 모리스의 테베군단(Theban Legion)은 100% 기독교인이었다. 하지만 로마제국에서는 아직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어 있지 않은 때였다. 당시 로마제국의 디오클레티안(Diocletian) 황제는 모리스에게 군단을 스위스로 이동할 것을 지시하였다. 스위스 서부지역에서 골족이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진압하기 위해서였다. 모리스는 군단을 이끌고 스위스의 아가우눔(Agaunum)에 도착하여 주둔했다. 디오클레티안 황제는 모리스에게 전투에 참가하기 전에 승리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되 사람을 희생물로 드려야 한다고 명령했다. 기독교인인 모리스는 이단적인 우상숭배는 할수 없다고 거부하였다.

 

성론기누스. 러시아 이콘

 

디오클레티안 황제는 모리스의 병사들이 로마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로 마음을 돌릴 때까지 매 10명마다 한 사람씩을 처형토록 명령했다. 처형이 시작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리스의 병사들은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게 하여 끝내는 모리스를 포함한 6천6백명의 병사들이 모두 순교하였다. 나중에 로마가톨릭은 모리스를 성인으로 시성하였다. 모리스가 가지고 있던 성창은 로마에서 가져갔고 그후 우여곡절 끝에 프라하에 있던 것을 1424년 신성로마제국의 지기스문트(Sigismund) 황제가 자기가 태어난 곳인 뉘른베르크에 옮겨 놓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폴레옹을 피하여 비엔나로 갔다가 훗날 히틀러에 의해 다시 뉘른베르크로 돌아왔고 전쟁이 끝나자 미국이 비엔나로 보냈다는 얘기는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나중에 또 설명코자 한다.

 

성모리스가 이집트를 떠나는 장면 스테인드 글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