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성물들/창에 얽힌 이야기

롬바르디에도 성창

정준극 2009. 11. 3. 00:24

[롬바르디의 성창]

 

이탈리아 롬바르디(Lombardi) 교회의 집사인 파울(Paul)이란 사람은 원래 롬바르디 왕가의 혈통을 이어 받은 사람으로서 군긴기(Gungingi)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군긴기라는 이름은 군그니르(Gungnir)에서 나온 것으로 ‘오딘의 창’이라는 뜻이다. 오딘은 북구의 신으로 롬바르디 왕가는 오딘의 후예라고 주장하였다. 롬바르디 왕국에는 예로부터 ‘오딘의 창’이라는 창이 있었다. 롬바르디의 왕이 대관식을 가질 때에는 이 창에 손을 얹고 서약을 했다고 한다. 롬바르디 왕국의 수도는 밀라노였다. 밀라노는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에 한때 서로마제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롬바르디 지방의 베니스(베네치아). 대운하와 리알토 다리

 

이와 관련하여 롬바르디 왕국에서 대관식 때에 사용하던 창은 원래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가 성지 예루살렘의 갈보리 언덕에서 발굴하여 가져온 것을 나중에 롬바르디 왕국에서 수선하여 다시 만들다시피 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이다. 롬바르디 왕국의 페르크타리트(Perctarit)왕과 그의 아들 쿠니페르트(Cunipert)는 7세기경에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롬바르디의 국왕들은 성창을 더 신성하게 만들기 위해 주물을 다시 떠서 붙이는 등 보수를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비엔나에 있는 성창이 7세기경의 제품으로 보인다는 것은 수긍이 가는 일이다. 그런데 774년에 롬바르디 왕으로 겸직하여 즉위한 샤를르마뉴 대제도 성창을 붙잡고 서약을 했을 것이며 독일로 돌아올 때에 성창을 가지고 왔다고 생각할수 있다.

 

한편, 8세기 이후 전통적으로 롬바르디 국왕의 왕관에는 십자가에서 사용했던 못을 장식해 놓았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3개의 못을 찾아 배를 타고 로마로 가지고 오다가 풍랑이 일어 모두 죽게되자 가기고 있던 못 중에서 하나를 바다로 던지고 ‘풍랑아 잠잠하라!’라고 말했더니 그 즉시 풍랑이 잠잠해져서 무사히 도착했다고 한다. 헬레나 모후는 나머지 2개의 못으로 하나는 아들 콘스탄틴 황제의 왕관에 장식하였고 다른 하나는 콘스탄틴 황제가 타고 다니는 말의 재갈에 장식했다고 한다. 그러면 롬바르디 왕관에 장식되어 있다는 못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롬바르디국왕의 의상, 왕관, 홀, 보주. (비엔나 제국보물실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