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성물들/창에 얽힌 이야기

크라코우의 성창

정준극 2009. 11. 3. 00:28

[크라코우의 성창]

 

또 다른 성창이 있다. 폴란드의 크라코우(Krakow)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1200년경부터 간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독일문헌에 따르면 크라코우의 성창은 비엔나의 성창을 복제한 것이라고 한다. 신앙심이 두터워서 야소미어고트(Jasomirgott)라는 별명을 가졌던 하인리히2세(Heinrich II)가 원래의 성창을 모델로 하여 똑 같은 은제 성창을 만들어 폴란드에 주었다는 것이다. 하인리히2세는 복제품을 하나 더 만들어서 헝가리 왕에게도 주었다고 한다. 영국 맘스베리(Malmesbury)의 윌리엄이라는 사람이 주장한 바에 의하면 프랑스의 휴 카페(Hugh Capet)왕이 영국의 아텔스탄(Athelstan)왕에게 성창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스토리는 너무나 비약적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하인리히 2세 야소미어고트 오스트리아 대공. 성창을 복제하여 폴란드에 주었다.

 

[트레버 레이븐스크로프트의 성창]

성창은 ‘운명의 창’(Spear of Destiny: Lance of Destiny)라고도 부른다. 그렇게 부르게 된 이유는 성창이 보여준 신비한 능력 때문이었다. 성창에 그런 능력이 있다는 주장은 극히 최근에 빈번하게된 것이다. 특히 뉴에이지(New Age)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다 빈치 코드’에서처럼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성창에 대한 전설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영국의 트레버레이븐스크로프트(Trever Ravenscroft)는 1973년도 저서인 The Spear of Destiny(운명의 창)에서 히틀러가 2차대전을 일으킨 것은 실은 성창에 대한 지나친 강박관념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21세에 미술공부를 위해 비엔나에 온 히틀러는 어느날 호프부르크에 있는 성창을 보고 말할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그후 히틀러는 성창을 차지해야겠다는 욕망으로 오스트리아와 합병하자마자 성창을 자기의 소유로 만들어 뉘른베르크로 옮겼다. 성창을 차지한 히틀러는 성창을 잃으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생각에 휩싸였다고 한다. 히틀러는 2차 대전의 막바지에 뉘른베르크의 성창이 미국의 조지 패튼 장군의 손에 들어갔다는 보고를 받고 크게 낙담하였으며 결국 자살로서 인생을 마감하였다. 레이븐스크로프트는 성창이 사탄의 능력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결국은 적그리스도가 바로 성창이라고 내세웠다. 그는 성창이 인간들의 욕망으로 얽혀 있다고 말했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1935년 뉘른베르크에서의 나치전국대회.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후 비엔나에 있던 성창을 뉘른베르크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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