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성물들/창에 얽힌 이야기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와 성창

정준극 2009. 11. 3. 00:23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 프란시스와 성창]

 

프란시스 2세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드비히 슈트라이텐펠트 작품

 

신성로마제국을 마지막황제로서 나폴레옹의 위세에 눌려서 신성로마제국을 스스로 해체하고 오스트리아제국을 선포한 프란시스1세는 여러 가지 어려운 중에서도 성창만은 굳게 지키며 남에게 주지 않았다. 그후 성창은 2백년 이상을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제국에 속하여 있었으며 1차 대전 이후 합스부르크제국이 종말을 고하고 오스트리아공화국이 출범하고서도 비엔나에 간직되어 있었다. 그간의 경과는 이루 설명할 여유가 없으므로 생략하고 간단히 결론만 말하자면 그 성창을 히틀러가 빼앗아 갔다가 전쟁 후에 다시 비엔나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1938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독일에 합병하자 무엇보다도 우선 성창을 독일제국의 소관으로 두어야 한다고 내세우고 뉘른베르크로 가져갔다. 2차대전이 끝나자 미국의 조지 패튼(George Patton)장군이 뉘른베르크의 어떤 폐허에 있는 성창을 발견하여 간직하고 있다가 오스트리아로 돌려보냈다. 비엔나에 돌아온 성창은 임시로 미술사박물관에 보관되었다가 현재는 호프부르크 궁전에 있는 미술사박물관 산하의 제국보물실(Schatzkammer)에 간직되어 있다.

 

미국의 조지 패튼장군. 연합군 전차군단을 이끌고 독일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이끈 주역. 그의 부하장병들이 뉘른베르크에서 성창을 발견하였다. 패튼 장군은 성창을 전후의 오스트리아로 돌려주었다.

 

[메로빙에서 합스부르크로]

585년에 프랑스 투르지방의 역사학자 겸 신학자인 그레고리(Gregory)가 저술한 ‘역사서’(Libri Historiarum)에는 메로빙(Meroving) 왕가의 군트람(Guntram)왕이 자기의 조카 쉴드베르(Childebert)에게 왕위를 이양할 때에 창을 건네주었다고 적혀있다. 메로빙 왕가에서는 창이 왕권을 상징했다고 한다. 군트람 왕이 사용했던 창은 아마도 샬레마뉴 대제가 8세기에 롬바르디로부터 가져온 것일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메로빙 왕가는 나중에 합스부르크 왕가로 혈통이 이어지는 것은 잘 아는 스토리이다. 그렇다면 비엔나의 성창이야 말로 오리지널이라고 믿을만 하다.

 

비엔나에 있는 성창. 가운데 금으로 둘러싼 곳에는 론기누스의 창이라는 설명을 적어 넣었다.

 

[로버트 휘더박사의 성창 검사]

영국의 저명한 금속학자인 로버트 휘더(Robert Feather)박사가 2003년 1월에 비엔나의 성창을 검사하였다. 휘더박사는 성창을 실험실로 가져가 성창 촉의 허리를 둘러맨 금판을 떼어내고 쇠로 된 촉 부분을 세밀하게 검사하였다. 휘더박사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테스트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성창이 주후 7세기경에 제작된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앞서 비엔나의 미술사박물관이 자체검사를 한 결과는 7세기 말이었다. 휘더박사의 검사결과와 거의 시기가 같았다. 한편, 휘더박사는 비엔나 제국보물실의 쇠못이 1세기경 로마시대에 사용했던 것과 거의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 놓았다. 말하자면, 쇠못은 예수님이 못박혀 돌아가신 십자가(참십자가)에서 사용했던 것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겠다는 의견이었다.

 

아르메니아의 성창교회 중앙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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