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성물들/창에 얽힌 이야기

히틀러와 성창

정준극 2009. 11. 3. 00:29

[히틀러와 성창]

 

1796년 독일을 휩쓸었던 나폴레옹은 전설의 성창을 차지하려고 무던히도 욕심을 부렸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신성로마제국은 뉘른베르크에 있던 성창을 나폴레옹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비밀리에 비엔나로 옮겼고 그후 성창은 거의 1백년 이상이나 비엔나의 합스부르크에서 은밀하게 보관되었다. 그러던 것이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된 직후에 히틀러의 손에 들어가 다시 뉘른베르크로 돌아가는 운명을 겪게 되었다. 젊은 시절, 비엔나에 와서 성창을 직접 보고 그에 대한 전설을 알게 된 히틀러는 비엔나의 성창이 과연 오리지널인지 등을 더 확실히 알고 싶었고 나아가 언젠가는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성창의 신비한 능력으로 유럽을 제패하려는 꿈을 꾸었다. 성창에는 누구든지 이를 소유하던지 또는 성창에 담겨진 비밀을 밝혀낸다면 좋은 방향이든지 나쁜 방향이든지 그의 손에 세계의 운명이 달려있게 된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성창을 ‘운명의 창’(Spear of Destiny)라고 부르기도 한다. 히틀러가 처음으로 성창을 보고 느낀 감동은 그의 저서 Mein Kampf(나의 투쟁)에 자세히 실려 있다.

 

아르메니아교회의 성창

 

히틀러에게 마침내 그러한 날이 다가왔다. 21세 때에 처음으로 제국의 수도 비엔나에 왔던 히틀러는 가난하고 배고픈 학생이었다. 그러나 1938년 3월, 비엔나에 입성하여 거리를 메운 수많은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은 히틀러는 마치 정복자와 같았다. 히틀러가 이끄는 제3제국이 유구한 역사의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였던 것이다. ‘운명의 창’은 히틀러의 군화에 대한 보상이었다. 히틀러는 성창을 나치의 본거지인 뉘른베르크로 옮겼다. 뉘른베르크는 예로부터 독일 신화의 중심지였다. 성창은 성카테리네교회의 대회랑에 마련된 ‘독일 전쟁 박물관’에 안치되었다. 독일국민들은 독일이 성창을 보유하게 된 것을 신의 뜻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샬레마뉴 대제, 오토대제, 바바로싸의 프레데릭 황제가 성창을 앞세워서 전쟁 때마다 승리를 이룩한 것처럼 히틀러도 성창을 앞세워서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믿었다. 그러나 전황은 점점 독일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1944년 3월, 영국 공군의 폭격기들이 성카테리나 교회를 폭격하여 한쪽 부분이 파손되었다. 히틀러는 위대한 유물인 성창을 다른 안전한 곳으로 옮기도록 했다. 처음에는 어떤 은행의 금고 속에 넣어 두었다. 그러나 그곳도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곧이어 뉘른베르크에 있는 중세 고성의 깊숙한 지하 창고로 옮겼다. 성창은 이곳에서 1945년 4월 30일 오후 2시 10분까지 안전하게 있었다.

 

1935년 뉘른베르크의 나치집회를 마치고 시가행진하는 나치국방군을 사열하는 히틀러

 

고성의 지하 깊숙한 창고에서 성창을 발견한 것은 패튼장군 휘하의 제3군 수색팀 병사들이었다. 성창은 미군의 소관이 되었다. 바로 그날, 성창이 미군의 손에 들어간지 90분후 히틀러는 베를린의 지하 벙커(늑대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운명의 창’의 저주가 실현된 것이다. 성창이 미군의 손에 있을 때 인류 역사상 가장 가공할 무기인 원자폭탄이 일본에 투하되었다. 그리고 미국은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성창에는 누구든지 성창을 소유하고 있다가 분실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면 불행이 닥친다는 전설이 있다. 샬레마뉴 대제가 손에 들고 있던 성창을 잘못하여 떨어트리자 말에서 낙마하며 전투에서 큰 패배를 당하게 된 것은 그러한 전설을 뒷받침해주는 얘기이다. 2차 대전이 끝난지 1년후인 1946년 1월 6일, 미국은 뉘른베르크에서 발견한 성창을 비롯하여 합스부르크의 보물들을 오스트리아로 반환하였다. 바로 그 직전에 패튼 장군은 원인을 알수 없는 급작스런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패튼 장군은 ‘성창의 저주’가 자기에게도 다가왔다고 믿었다. 패튼 장군은 성창의 전설을 믿었던 유일한 미국인이었다. 비엔나로 돌아간 성창은 1909년 청년 히틀러가 비엔나에 와서 처음으로 보고 감동했던 바로 그 자리인 호프부르크 궁전의 제국보물실에 전시되었다. 2009년 현재 성창이 제국보물실에 전시되어 있는지의 여부는 확실치 않다. 전시물을 수시로 교체하기 때문이다.

 

1928년 뉘른베르크 나치 집회에서 연설한후 시민들의 환호를 받고 있는 히틀러

 

[뷔흐너의 주장]

미국의 저명한 의사로서 2차 대전 중에 육군대령으로 복무한바 있는 하워드 뷔흐너(Howard Buechner)박사는 다하우(Dachau) 학살에 대한 책을 출판하였는데 이 책에서 그는 전쟁 중에 독일 잠수함(U-boat)의 함장이었던 빌헬름 베른하르트(가명)가 자기에게 성창에 대한 얘기를 해주었다고 적었다. 이에 의하면, 현재 비엔나에 전시되어 있는 성창은 가짜이며 진짜는 히틀러의 비밀지시에 의해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나치의 다른 보물들과 함께 남극으로 보내져 비밀 장소에 감추어 두었다가 당시 비밀수송의 책임을 맡았던 막시밀리안 하르트만(Maximilian Hartmann)대령이 1979년에 비밀리에 남극에 가서 나치의 보물들을 찾아 유럽의 모처에 은닉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유보트의 함장이었던 베른하르트는 뷔흐너박사에게 1979년 남극에서 찾아온 나치 보물 중에서 성창을 찍은 사진을 증거로 보여주었다고 한다. 하르트만은 남극에서 찾아온 나치 보물들을 유럽의 나치비밀조직에 넘겨주었으며 그중 한 사람은 히틀러유년대(Hitler Jugend)의 리더였던 아르투르 악스만(Arthur Axmann)이었다고 한다. 뷔흐너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현재 유럽의 나치비밀조직이 오리지널 성창을 보유하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2차대전이 끝난후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찾아낸 유태인 시신들. 히틀러는 유태인들을 말살하여 아리안족이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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