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성물들/창에 얽힌 이야기

성모리스 이야기

정준극 2009. 11. 3. 23:19

성모리스 이야기

Saint Maurice(Moritz, Morris, Mauritius)

 

비엔나 제국보물실에 있는 성창. 가운데 금으로 두른 곳에 성모리스의 창이라고 적혀 있다.

 

성모리스는 성창(Holy Lance: Holy Spear)을 가지고 있던 로마군의 지휘관으로서 예수를 믿고 우상숭배를 거부함으로서 순교를 한 사람이다. 모리스가 성창을 가지고 있게 된 것은 원래 그 부대에 1세기에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론기누스가 전보되어 왔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후 성창을 여러 병사들이 소유하고 있다가 3세기에는 모리스의 손에까지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리스는 일찍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기독교인이 된 사람이다. 모리스는 룩소르 유적으로 유명한 이집트의 테베에서 태어났으며 287년 스위스의 아가우눔(Agaunum: 현재의 생모리스)에서 순교했다. 교회사 자료에 의하면 모리스가 지휘관으로 있는 로마군단의 병사들은 모두 기독교인이었다고 한다. 모리스의 군단은 스위스 지방에서 로마제국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킨 골(Gaul)족을 진압하기 위해 테베에서 스위스로 이동명령을 받아 스위스의 아가우눔에 주둔하게 되었다. 당시 스위스는 막시미안(Maximian)이 통치하고 있었다. 막시미안은 우상숭배자로서 기독교를 배척하는 사람이었다. 막시미안은 모리스가 지휘하는 테베군단의 병사들로 하여금 스위스에서 비밀스럽게 예수를 믿는 주민들을 색출하여 처형토록 지시했다. 기독교인들인 테베군단의 병사들은 막시미안의 지시를 거부하였다. 막시미안은 다시 기독교인 색출을 명령했다. 병사들은 역시 그의 명령을 거부했다. 이에 막시미안은 전부대원인 6,666명을 차례로 처형했다. 이러한 참사가 발생했던 장소는 아가우눔이라는 마을이었으나 현재는 생모리스-앙-발레(Saint Maurice-en-Valais)라고 부르며 이곳에 성모리스 수도원이 있다.

 

성모리스가 함께 순교한 병사들과 함께 있다. 이집트 콥틱교회 이콘.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모리스의 병사들이 황제의 명령으로 어떤 마을에 진군하여 마을 사람들을 모두 살육한 일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순수하고 무고한 기독교인들이었다고 한다. 기독교인들인 병사들은 자기들의 형제자매를 죽인데 대하여 심히 가책을 느껴 이후 황제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처형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황제가 모리스 군단의 병사들에게 로마의 신에게 산제사를 드릴 것을 명령했지만 병사들은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칠수 없다고 하며 명령수행을 거절했기 때문에 모두 처형되었다고 한다. 처형 방법은 열 번째 병사를 선정하여 계속 처형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래도 명령을 듣지 않으면 계속 처형을 진행하여 결국은 전원을 처형하게 된다.

 

엘 그레코의 '성모리스의 순교'

 

모리츠의 테베군단에 대한 처형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근거가 희박하다는 주장도 있다. 우선 10번째 병사를 처형해 나가는 방법은 로마 군단에서 수세기동안 수행하지 않은 것이었다는 점이다. 병사들이 모두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도 근거가 희박하다. 로마시대에는 기독교를 믿게 되면 군대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명령에 따라 수시로 전쟁을 치루며 적들을 죽여야 하는 로마 군인으로서 기독교 신앙을 함께 갖는 것은 극히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때까지만 해도 기독교는 이단으로 간주되어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황제의 명을 받드는 군인으로서 로마가 인정하지 않는 종교를 믿을수는 없었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테베군단의 전원이 순교했다고 하는 전설은 당시 기독교 전파의 책임을 지고 있던 스위스 서부 발레(Valais)주에 속한 옥토두룸(Octodurum)의 주교 테오도레가 우상을 숭배하는 로마군대 내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낸 얘기라는 주장을 했다. 로마시대에 병사들은 노예와 마찬가지였다. 하찮은 목숨들이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기본인 평등과 부활과 영생은 이들에게 매력적인 현실돌파구였다. 순교는 곧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는 관문이라고 믿었다. 이에 따라 다른 주교들도 테오도레의 얘기를 전하면서 군선교에 앞장섰다는 것이며 그로부터 테베군단이 순교를 당한 스위스의 아가우눔(Agaunum)은 순례자들이 줄을 지어 찾는 장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스페인 엘 에스쿠리알의 산 로렌조 수도원(Monasterio de San Lorenzo)에 있는 로물로

신시나토의 '성모리스의 순교' 

 

[성모리스 숭배]

성모리스는 독일의 오토1세에 의해 출범한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1세(919-936)는 스위스의 아르가우(Aargau) 지방을 아가우눔 수도원에 주어 통치토록 하고 대신 아가우눔 수도원이 보관하고 있던 창(론기누스의 창), 모리스의 칼, 모리스의 박차를 받았다고 한다. 성모리스의 칼과 박차는 1916년까지 오스트로-헝가리 제국 황제들의 대관식 때에 왕권의 상징물로서 사용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의 일부 황제들은 바티칸 성베드로성당의 성모리스 제단 앞에서 교황에 의해 대관식을 가졌다. 929년 하인리히1세는 독일 북동부 엘베강변의 마그데부르크(Magdeburg)에서 제국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이때에 모리스를 기념하여 모리티우스(Mauritius: Maurice)수도원을 청설하였다. 961년에는 아가우눔에 있던 성모리스의 유해와 성물들, 그리고 성모리스와 함께 순교한 일부 성인들의 유해를 마그데부르크수도원 교회로 옮겼다. 그날은 마침 성탄절의 전날로서 신분의 고하와 귀천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성모리스의 유해가 이전되어 오는 것을 기쁨과 영광으로 맞이하였다.

 

독일 마그데부르크 대성당. 성모리스의 유해와 유물들을 간직하고 있다. 마그데부르크 수도원은 성모리스를 기억하여 완성한 것이다.

 

비엔나의 제국보물실에 있는 성창에는 모리스가 소유했던 것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스위스 동부의 산크트 모리츠는 모리스의 이름을 독일어식으로 표현한 것이며 프랑스에서는 52개 마을이 생모리스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존경을 받았다. 또한 세계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역에는 여러 지명이 생모리스(Saint Maurice)로 되어 있다. 다만, 인도양에 있는 모리셔스(Mauritius)는 성모리스와 관련이 없다. 모리셔스는 오렌지왕가 출신인 나소의 모리스(Maurice of Nassau)의 이름에서 가져온 명칭이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의 여러 나라에는 성모리스에게 봉헌된 종교재단은 650여 개나 된다. 스위스에서는 아르가우(Aargau) 지방에만 7개의 생모리스 교회가 있으며 루체른(Lucerne)주에는 여섯 곳, 솔로투른(Solothurn)주에는 네곳에 생모리스의 이름을 따온 교회가 있다. 스위스의 아펜첼 인너로덴(Appenzell Innerrhoden)주에서는 성모리스의 축일을 공휴일로 정하였다. 훈장에도 성모리스의 명칭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황금양털(Golden Fleece)단의 생모리스훈장이다. 1941년 교황 비오12세(Pius XII)는 이탈리아군의 알프스보병사단의 명칭을 성모리스로 명명하였다. 그로부터 성모리스사단은 매년 성모리스의 축일을 지키고 있다.

  

체코공화국(당시 오스트로-헝가리제국)의 올로무츠(Olomouc)대성당에 있는 산크트 모리츠(성모리스) 기념상 

 

[무어인 모리스]

성모리스는 간혹 검은 피부의 무어인으로 표현되고 있다. 사실상 그의 이름인 모리스(Maurice: Moritz: Morris: Mauritius)는 무어(Moor)라는 단어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모리스를 흑인 무어인으로 표현한 조각이 처음 등장한 것은 일찍이 1240년대에 마그데부르크 대성당에서였다. 이곳에서 성모리스의 기념상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오토1세의 기념상 바로 옆에 세워졌다. 마그데부르크 대성당은 현재까지 성모리스를 높이 받드는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 모리스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된 것은 이집트이다. 성모리스가 이집트의 테베출신이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콥틱교회에서는 모리스를 그리스식으로 마우리키오스(Maurikios)라고 불렀다. 모리스라는 이름은 이집트에서 흔한 이름이다. 이집트의 톨레미왕조에 만든 비석에도 모리스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알수 있다. 오늘날에도 이집트의 콥틱 신자들 중에는 모리스(마우리키오스)라는 이름이 많이 있다.

 

독일 북부 마그데부르크 대성당에 있는 성모리츠(모리스) 조각. 무어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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