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성물들/성배를 찾아서

성배는 성스러운 혈통을 의미?

정준극 2009. 11. 6. 08:02

[두 가지 오리진]

Two Veins of Thought

 

성배스토리의 오리진에 대하여는 두 가지 줄기가 있다. 하나는 고대 켈트족의 전설이나 신화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중세 웰스문학과 아일랜드 자료에서 성배에 대한 로맨스를 발견하고 그것이 현대의 성배스토리로 발전했다고 보았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마비노지온(Mabinogion)의 Bran the Blessed(복자 브랜)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아서왕의 후예인 피셔(Fisher)왕에 대한 이야기이다. ‘복자(福者) 브랜’에서는 잔이 아니라 커다란 솥(Cauldron)이 등장한다. 이 솥에 담겨있는 물건이 생명을 소생시켜 준다는 내용이다. 켈트의 또 다른 전설에는 마법의 접시 또는 쟁반이 등장하여 초현실적인 능력을 보여주며 진정한 영웅을 테스트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그런 그릇에서 곡식이 끊임없이 나온다든지 또는 죽은 자를 살린다든지 하는 기적을 보여준다. 또 어떤 경우에는 그릇이 다음 왕은 누가 될 것인지를 정해준다. 진정으로 선택된 군주만이 그 그릇을 들수 있다는 것이다. 아서 왕이 엑스칼리버를 빼내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이다.

 

성배를 들고 있는 스페인 몽세라의 마돈나

 

두 번째 줄기는 순전히 기독교적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토론토대학교의 조셉 괴링(Joseph Goering)이라는 교수는 피레네 산맥의 카탈로니아 지방에 있는 어떤 교회에서 성모 마리아가 들고 있는 성배로 생각되는 큰 대접(Bowl)에서 사방으로 불길이 뻗어 나오고 있는 벽화를 발견했다. 괴링 교수는 성배에서 성령의 불길이 나오는 것이야말로 성배에 대한 전설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그후 성배에 대한 최초의 문학작품인 트로예의 슈레티앙의 작품에서도 성배에서 불길이 뻗어 나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근세의 학자들은 성배에서 불길이 뻗어 나오는 것은 로마가톨릭에 의한 성만찬 의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독교에서의 성만찬 의식은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고 1세기의 초대교회에서도 행하여 졌다는 근거가 있으나 실제로 여러 의식을 통하여 성만찬을 행하는 것은 중세에 성배문학이 등장한 이후라고 보고 있다. 이렇듯 성배와 관련한 스토리는 두가지 기원을 가지고 있으나 대부분 현대의 학자들은 오늘날의 성배사상이 기독교의 전통과 켈트의 민화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하여 성배 이야기의 주제는 항상 기독교이며 그밖에 배경이나 환상적인 모험, 아름다운 로맨스는 켈트적 요소라는 것이다.

 

코르빈(Corbin)성에서 성배를 수호하고 있는 처녀. 아서 래컴(Arthur Rackham) 작품. 1917년.

 

[그레일(Grail)의 어원]

성배라는 뜻의 Grail(그레일)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고대 프랑스어의 Graal(그랄)이다. 이는 라틴어의 Gradalis(그라달리스) 즉, 식사 때에 음식을 내오는 접시를 말한다. 그리스에서는 식사 때에 오늘날 중국요리를 먹을 때처럼 음식을 하나하나 차례로 접시에 담아 내어왔다. 한편, 가톨릭백과사전에 따르면 중세에 성배에 대한 전설이 확고하게 정립된 이후에 일부 작가들은 Sangreal(상그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성배에 대하여 또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Sangreal이라는 단어는 처음에는 san과 greal이 합해진 것으로 ‘성스러운 잔’을 의미했으나 그것이 변형되어 sang과 real이 합한 단어로 간주되어 ‘성스러운 혈통’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이는 물론 글자놀이에 따른 단순한 변형이라고 볼수 있지만 상당수 학자들, 그리고 심지어는 종교인들 까지도 성배가 ‘성스러운 혈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데에 이상한 매력을 느꼈다. 성배와 관련된 현대의 문학이나 영화작품에서 특히 그러하다.

 

성배간 간직되어 있다는 성배의 성을 찾아가고 있는 파르지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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