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성물들/성배를 찾아서

성배의 모습

정준극 2009. 11. 6. 08:11

[성배의 모습]

 

 

'퍼시발, 성배이야기'를 쓴 프랑스 트로예의 슈레티앙은 성배를 대접이나 접시로 묘사했다. 다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 로베르 드 보롱은 성배를 인간(Vessel)으로 생각했다. 인간을 어떤 정신적 특질을 담는 그릇으로 보았던 것이다. 로마시대의 영국인(주로 웰스인)들인 프르뒤르(Peredur)를 다룬 작품에서는 아예 성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대신에 피가 뚝뚝 흘러 떨어지는 자기 친척의 잘린 목을 쟁반에 담아 들고 있는 용사를 표현했다. 볼프람 폰 에센바흐는 그의 ‘파르지발’에서 성배를 하늘에서 떨어진 돌이라고 설명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돌은 루시퍼가 하나님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 어느편도 들지 않고 중립을 지키던 천사들의 피난처였다고 설명했다. 이해하기가 힘들다. 벌게이트 사이클(Vulgate Cycle: 불가타성서)의 저자들은 성배가 신성한 은혜의 상징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갈라하드를 랜스롯보다도 더 위대한 용사라고 표현하였다. 갈라하드는 랜스롯과 엘레인(Elaine)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갈라하드는 성배를 찾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갈라하드의 성배 탐사에 대한 이야기는 15세기 토마스 말로리(Thomas Malory)경의 Le Morte d'Arthur(아서의 죽음)에 자세히 나와 있다.

 

엘레인이 성배를 받들고 있는 모습. 허브 로 작품

                

성배에 대한 이야기는 서유럽, 특히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널리 퍼져있다. 이런 나라에서는 시장에서 과일이나 빵을 파는 할머니들도 성배이야기는 다 알고 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동유럽과 미국에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동방정교회의 국가들에서는 아서왕의 전설이 뭐 말라비틀어진 것이냐는 생각인지 별로 관심이 없다. 같은 독일이면서도 통일되기 전의 동독에서는 파르지팔이건 성배건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이르러서야 할리우드 영화 또는 TV 드라마 때문에 성배에 대한 이야기가 인기를 끌게 되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예를 들면 성배를 찾아내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이다. 그리고 중세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현대판 성배 전설이 불현듯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다 빈치 코드'이다.

 

요르단의 페트라에 있는 알 카즈메는 성배가 감추어진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생각되고 있다.

                             

[중세 이후의 행방]

성배에 대한 신앙과 성배의 행방에 대한 궁금증은 중세 이후로 세월과는 상관없이 그치질 않았다. 논란의 중심은 도대체 성배를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한때는 성전기사단(Knights Templar)이 가지고 있다는 설이 가장 유력했었다. 12-13세기에는 성전기사단이 막강한 세력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에 성배도 당연히 그들이 가지고 있을 것으로 짐작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 교회들이 성배를 간직하고 있다고 내세우고 있다. 성배는 분명히 하나일텐데 여러 교회에서 각각 자기 교회에 있는 것이 원조 성배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농담이지만 세상에는 믿을 만한 교회가 하나도 없다는 말이 과연 믿을 만하다. 우선 스페인 남부 발렌시아의 성모대성당이 성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져온 성배를 3세기에 성로센스(산타 로렌조)가 결국은 발렌시아로 가져왔다는 것이다. 발렌시아의 성배는 오랫동안 인근의 ‘바위 속의 성요한수도원’(Monastery of San Juan de la Pena)으로 옮겨져 간직되었다고 한다. 이베리아반도를 침략한 무어인들의 손으로부터 성배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나중에 고고학자들이 발렌시아의 성배를 조사했더니 1세기에 중동지역, 그중에서도 시리아의 안디옥(현재는 터키)에서 나는 돌로 만든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발렌시아의 성배 Santo Caliz

                     

그렇게 밝혀지기 전에 발렌시아의 성배가 유명해지기 시작하자 역대 교황들이 이곳까지 와서 일부러 바로 그 성배를 가지고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다. 아무리 교황이지만 위대한 오리지널 성배를 직접 손에 들고서 마치 예수께서 말씀하시듯 ‘이는 내 피니 받아 마셔라’고 외치는 것은 꿈을 이루는 일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2006년 7월 9일에는 교황 베네딕트16세가 찾아왔었다. 한편, 이탈리아의 제노아에도 성배가 있다. 에메랄드로 만든 값비싼 것이다. 일찍이 십자군들이 유대의 가이사라 마리티마(Caesarea Maritima)에서 많은 돈을 치루고 사왔다고 한다. 가이사라 마리티마는 헤롯 대왕이 건설한 항구로서 현재의 텔아비브와 하이파 사이에 있던 도시였으나 역사의 흐름과 함께 쇠퇴해진 곳이다. 가이사라 마리티마는 성경에서 가이사라 빌립보라는 명칭으로 등장하는 곳이다. 십자군들이 가이사라 마리티마로부터 에메랄드 성배를 가지고 오다가 길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마차의 바퀴가 부서지는등 마치 고향을 떠나서 타지로 가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였다. 십자군들은 신성한 힘이 있는 성배가 그런 하찮은 사고를 당한데 대하여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말도 못하고 파리로 가져왔다. 파리에 있던 성배는 나폴레옹이 실각하자 제노아로 가져오게 되었다. 그리고 에메랄드로 만든 성배인줄 알았더니 초록색 유리로 만든 것이었다. 그래도 제노아는 이것을 계속 존중하고 있다.

 

헤롯 대왕이 건설한 가이사라 항구. 현재는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와 하이파 중간에 있다. 십자군들이 이곳에서 성배를 사서 제노아로 가져왔다고 한다.

                               

독일의 볼프람 폰 에센바흐는 성배가 스페인 바르셀로나 인근의 ‘우리 구세주’(Mons Salvationis: Muntanya de Montserrat) 성안에 간직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최초의 전설적인 성배의 왕인 티투렐(Titurel)이 이곳으로 가져와서 엄중하게 수호했다는 것이다. 현재는 산타 마리아 데 몽세라(Santa Maria de Montserrat)수도원에 있다. 사람들은 ‘우리 구세주성’이 전설적인 ‘성배의 성’이라고 믿고 있다. 성배의 전설을 말함에 있어서 스코틀랜드를 빠트릴수는 없다. 성배가 스코틀랜드의 로슬린(Rosslyn) 마을에 있는 로슬린교회에 간직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이 교회의 제단 지하에 파묻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파내면 어떠한 불행이 올지 모르므로 그대로 두고 있다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영국의 글라스턴베리 토르(Glastonbury Tor)에 있는 어떤 샘물 속에 숨겨져 있다고 주장했다. 과연, 어떤 것이 진짜란 말인가? 진짜가 있기는 한 것인가?

 

독일 아벤버그(Abenberg)성에 있는 음유시인 볼프람 폰 에센바흐의 석상. 성배의 이야기의 노래로서 유명했다.

 

그런가하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성배가 예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성배수호기사단에 의해 은밀하게 보호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들은 캐나다 노바스코샤(Nova Scotia)의 오크 아일랜드(Oak Island)에 살고 있는 성전기사단(Templar Knights)들의 후손들이 아직도 성배를 어딘가에 감추고 있다고 믿고 있다. 노바스코샤는 스코틀랜드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대서양 연안의 지역으로 오크 아일랜드에는 아직도 성전기사단의 후손들이 살고 있어서 성배를 죽어라고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오크 아일랜드에는 유명한 ‘모니 피트’(Money Pit)라는 구덩이가 있다. 지하의 수직으로 된 동굴인데 혹자는 이곳이야말로 성배가 감추어져 있는 곳이라고 주장했다. 수백미터의 지하에 동굴이 있어서 내려가 보았더니 이미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남아 있으며 보물이 감추어져 있다는 암호문까지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몇년에 걸쳐 조사했지만 성배는 찾지 못했다.

 

캐나다 노바 스코샤의 남쪽에 있는 오크 아일랜드에는 지하 깊숙한 동굴에 수많은 보물이 숨겨 있다고 한다. 그 중에는 성배도 들어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1900년대 초반 오크 아일랜드 탐사 회사의 건물. 

 

그런가 하면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아코키크(Accokeek)라는 마을의 전설에 의하면 영국에서 미국으로 운항한 존 스미스(John Smith)선장의 배에 탔던 어떤 신부가 성배를 아코키크 마을로 가져와서 간직하였다는 것이다. 성배가 아일랜드에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것을 아일랜드의 애국자인 두이르(Dhuir: Dwyer) 가문이 19세기에 미국으로 이민올 때 가져왔으며 그 가문의 후손들이 아직도 비밀리에 성배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두이르 가문의 후손들이 현재 주로 남부 미네소타주에 살고 있으므로 그곳에 성배가 간직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구체적으로 남부 미네소타의 아일랜드수도원에 있다고 주장했다.

 

메릴랜드주 아코키크의 피스카터웨이 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