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성물들/성배를 찾아서

엘레인(Elaine)은 누구?

정준극 2009. 11. 9. 18:37

엘레인(Elaine)은 누구?

 

갈라하드의 어머니

 

아서왕의 전설에는 엘레인이라는 이름의 여인이 여러 명 등장한다. 그 중에서 두 사람의 엘레인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첫 번째는 카르보네크(Carbonek) 왕국의 엘레인 공주이다. 엘레인은 카르보네크의 영주로서 ‘어부왕’(Fisher King)이라고 하는 펠레스(Pelles)의 딸이다. 펠레스는 성배를 수호하는 왕이다. 카르보네크 왕국이 어딘지는 확실치 않다. 설명에 의하면 어름과 눈의 나라라고 되어 있을 뿐이다. 카르보네크는 상상의 왕국이라는 주장도 있다. Carbonek라는 단어는 Coir benoit라는 말이 변형된 것으로 이는 Blessed Body 라는 뜻이라고 한다. Blessed Body(축복받은 육신)는 Body of Christ(그리스도의 육신)을 말한다. 여기서 잠시 성배에 대한 전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아보자. 성배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장사지낸 아리마대의 요셉이 가지고 있다가 영국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그후 수세기 동안 아리마대 요셉의 후손들이 성배를 수호했으나 어떤 경로인지 분명치 않지만 분실되어서 종적을 찾을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아서왕의 원탁의 기사들이 잃어버린 성배를 찾아 모험을 떠나며 마침내 갈라하드경, 퍼시발경, 보르스경이 성배의 성에서 성배를 찾는다는 것이다. 세 사람의 기사 중에서도 갈라하드경이 가장 먼저 성배를 찾는 영광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엘레인을 '성배의 여인'으로 묘사한 허브 로의 작품

 

펠레스왕은 갈라하드가 성배를 찾기 이전에 성배의 수호자로서 사명을 다하던 인물이다. 그를 피셔 킹(Fisher King)이라고 부르는 것은 초대 그리스도교의 심볼이 물고기이며 더구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말씀하신 것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파하는 책임있는 사람을 피셔 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켈트의 전설에 따르면 피셔 킹은 연어를 잡는 사람을 말하며 연어는 지혜의 상징으로 되어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그런가하면 프랑스어에서 어부(Pêcheur: Fisher)와 죄인(Pécheur: Sinner)이라는 단어는 발음이 거의 같으므로 피셔 킹은 곧 이 세상(속세)의 왕을 뜻한다는 해석도 있다.

 

어느날 펠레스왕은 환상 중에 그가 성배를 소유하는 사람의 할아버지가 된다는 예언을 받는다. 펠레스왕은 자기의 손자가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고 가장 기사다운 기사가 되기를 바란다. 마침 아서왕의 원탁의 기사 중의 한사람인 랜스롯이 펠레스왕의 카르보네크 성을 방문하자 펠레스왕은 예언이 실현될 기회라고 생각한다. 펠레스왕은 딸 엘레인의 시녀에게 지시하여 랜스롯에게 묘약을 주도록 했다. 묘약을 마시면  자기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엘레인 공주의 시녀는 마녀라고 하며 또 다른 주장에 따르면 모건 르 페이(Morgan le Fay)가 신분을 속이고 시녀로 들어왔다고 한다. 시녀가 주는 묘약을 무심코 마신 랜스롯은 엘레인을 귀네비에로 착각한다. 그리하여 두 번에 걸쳐 동침한다. 결과, 성배의 기사인 갈라하드가 태어난다. 나중에 엘레인의 함정에 속은 것을 안 랜스롯은 크게 분노하여 엘레인을 남겨둔채 멀리 떠난다.

 

성배를 수호하는 여인. 엘레인이라는 전설이 있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작품. 일설에는 막달라 마리아라는 주장도 있다. 여인의 신비한 손짓이 막달라 마리아라는 설명이다.

 

두 번째 엘레인은 랜스롯의 어머니이다. 엘레인은 벤위크(Benwick: 또는 베노익)의 왕 반(Ban)과 결혼하여 랜스롯을 낳았다. 엘레인은 보르스(Bors)왕의 부인인 에베인(Evaine)의 언니이다. 에베인은 라이오넬경(Sir Lionel)과 보르스경(Sir Bors)의 어머니이므로 랜스롯과 라이오넬 및 보르스(아들)는 사촌간이다. 엘레인 왕비는 벤위크 왕국이 클라우다스(Claudas)의 공격을 받아 함락되자 남편 반왕 및 아들 랜스롯과 함께 숲으로 피신한다. 그러나 반왕이 적들의 공격으로 중상을 당하자 간호하는데 정신을 쏟게 되고 그 틈에 어린 아들 랜스롯은 호수의 부인이 데려가 기르게 된다. 훗날 엘레인은 세상을 떠날 때에 비로소 아들 랜스롯을 처음으로 만난다.

 

5월의 여왕이 된 귀네비어 왕비. 존 콜리어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