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성물들/성배를 찾아서

아리마대 요셉과 영국과의 인연

정준극 2009. 11. 9. 18:42

[중세에 밝혀진 아리마대 요셉의 행적]

 

경외서인 니고데모 복음서에는 아리마대 요셉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지만 중세에 이르기까지 덮혀 있었다. 중세에 이르러 아서왕의 전설과 성배에 대한 이야기가 음유시인들을 통해서 사방으로 퍼지게 되자 아리마대 요셉에 대한 전설도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중세에 나타난 아리마대 요셉에 대한 이야기는 두가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하나는 아리마대의 요셉이 영국기독교의 창시자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성배를 수호한 최초의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아서왕의 모습이 들어 있는 타페스트리

 

[아리마대 요셉과 영국과의 인연]

 

영국에 기독교가 정식으로 전파된 것은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이후로부터 한참 후라고 보고 있다. 아무래도 유럽 본토에서 떨어져 있는 섬나라이기 때문에 유럽 본토의 새로운 문물이나 사상이 재빠르게 들어오지 못하였다. 그러한 때에 음유시인들에 의해 아서왕의 전설과 아리마대 요셉에 대한 이야기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아리마대 요셉이 영국의 교회와 연관이 있다고 하지만 당시의 역사학자들이나 작가들은 오히려 별다른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아리마대 요셉과 영국이 관련되었다고 처음으로 기술한 사람은 테르툴리안(Tertullian: 155-222)이었다. 그는 Adversus Judaeos라는 책에서 영국이 이미 2세기에 기독교를 받아 들였다고 적었다. 즉, “로마인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스페인의 모든 지역과 골(Gaul)의 여러 나라와 브리튼 족속이 사는 지역에서 모두 그리스도에게 순종하였다”라고 적었다. 테르툴리안은 영국에 기독교가 전파된 것이 그가 살아 있는 기간이었다고 서술했다. 다시 말하여 222년 이전에 이미 기독교가 영국에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초대기독교에서 가장 뛰어난 역사학자인 가이라사의 유세비우스(Eusebius: 260-340)는 그의 저서 Demonstratio Evangelica(제자들을 파견하심)에서 ‘몇몇은 바다를 건너 영국 섬에 도착하였다’고 적었다. 성힐라리(St Hilary: 300-376)는 ‘예수의 제자들이 영국 땅에 가서 교회를 건설하고 복음을 전하였다’고 적었다. 유명한 기독교역사학자인 히폴리투스(Hyppolytus: 170-236)는 누가복음 10장에 나와 있는 70인 제자들의 이름을 기술하면서 아리스도불로(Aristobulus)가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영국으로 파송되었다고 주장했다. 아리스도불로의 이름은 로마서 16:10에 나온다. 영국으로 간 아리마대 요셉은 목회자가 되었다고 한다.

 

플로렌스 테르툴리안. 최초로 기독교 문학을 라틴어로 기술하였다. 로마제국 시대에 카르타고에서 태어났다.

 

그후 몇 세기 동안이나 다시 잠잠하다가 9세기에 가서 마인츠의 대주교인 라바누스 마우루스(Rabanus Maurus: 766-856)가 그의 저서 Life of Mary Magdalene(막달라 마리아의 생애)에서 아리마대 요셉과 영국의 관계를 다시 조명하였다. 라바누스는 아리마대 요셉이 영국에 파송되기 전에 프랑스에 도착하였으며 그때 함께 갔던 사람은 베다니의 자매인 마리아와 마르다, 이들의 오빠로서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Lazarus), 성유트로피오(St Eutropius), 성살로메(St Salome), 성클레온(St Cleon), 성사투르니우스(St Saturnius), 성막달라 마리아, 마르첼라(Marcella: 베다니 자매의 시녀), 성막시움(St Maxium: St Maximin), 성마르티알(St Martial), 성트로피무스(St Trophimus)등이라고 이름들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이모든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추종하는 사람들에 대한 핍박을 피하여 무조건 대양을 항해하다가 지금의 프랑스 남부 마르세이유 항구에 도착하여 정착했다는 것이며 그후 아리마대 요셉만이 영국으로 건너가 복음을 전하였다는 것이다. 이렇듯 아리마대 요셉과 일행이 프랑스에 도착하였고 이어 영국에 까지 갔었음을 기록한 라바누스의 자료는 현재 옥스퍼드대학교의 보들레이안(Bodleian)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계속하여 라바누스가 쓴 아리마대 요셉의 항해에 대한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의 해안을 떠난 그들은 로마를 거쳐 마침 동풍의 도움을 받아 유럽과 아프리카의 사이에 있는 티레니아바다(Tyrrhenian Sea)를 순항하여 골(Gaul)족들이 사는 비엔누아(Viennoise)지방의 마르세이유에 도착하였다. 론(Rhone)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세계의 왕이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각각 팀으로 나뉘어 여러 곳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짐작컨대 아리마대 요셉 일행이 택한 항로는 페니키아인들의 무역을 하기 위해 영국으로 다니던 길이었다고 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막달라 마리아'. 그는 얇은 베일로 그의 생식기관이 있는 곳을 가렸으며 왼 손으로는 자궁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 혹자는 이를 예수의 혈육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12세기 영국의 사학자인 맘스베리의 윌리엄(William of Malmesbury)은 그의 Chronicle of the English Kings(영국 열왕기)에서 아리마대 요셉에 대한 내용을 간단히 기술하였다. 즉, 사도 빌립이 영국에 열두제자를 파견하였는데 그 중에는 빌립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아리마대 요셉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윌리엄은 글라스턴베리(Glastonbury)의 수도원이 이들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주장했다. 글라스턴베리는 훗날 소설에서 아리마대 요셉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설명된 곳이다.

 

글러스턴 수도원의 유적

 

[성배와의 인연]

 

아리마대 요셉이 성배를 수호할 책임이 있다는 얘기는 어찌 보면 로베르 드 보롱(Robert de Boron)의 창작이다. 보롱은 경외서인 ‘빌라도행전’의 일부 내용을 확대해석하여 아리마대 요셉이 성배의 수호자인 것으로 설정하였다. 보롱의 저서인 Joseph d'Arimathie(아리마대 요셉)에는 ‘빌라도행전’에 나와 있는 대로 요셉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 기간 동안 그가 가지고 있던 성배가 기적을 베풀어서 요셉에게 음식물을 제공하여 지탱할수 있었다는 것이다. 얼마후 감옥에서 풀려난 요셉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의 편에 성배를 영국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왜 영국이냐는 것은 확실한 근거가 없다. 보롱이 그의 저서에서 그렇게 적었기 때문에 그런 줄 알 뿐이다. 한편, 보롱의 ‘아리마대 요셉’에 영향을 받아 나온 아서왕의 전설에 대한 여러 저서들을 보면 성배를 영국에 가져간 사람은 요셉이 아니라 그의 아들인 요세푸스(Josephus)라고 되어 있다. 요세푸스는 중세에 영국에서 가장 추앙받는 성인이었다.

 

그런가하면 글라스턴베리 수도원의 역사를 정리한 존(John)이라는 사람은 성배와 관련하여 아리마대 요셉이 영국에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한 목제 성배를 가져왔으며 이와 함께 두 개의 주수병(酒水甁: 미사 때 술과 물을 담는 작은 병)을 가져왔는데 한 개에는 예수의 피를 담았으며 다른 한 개에는 예수가 흘린 땀(물)을 담았다고 적었다. 오늘날 존이 기술한 나무로 만든 성배와 주수병들은 웨일스의 난테오스 장원(Nanteos Mansion)의 소장품으로 애버리스투스(Aberystwyth)박물관(웨일스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를 난테오스 컵(Nanteos Cup)이라고 부르며 영국교회에서 신성한 물건으로 숭앙하고 있다. 다만, 난테오스 컵에 대한 고대나 중세의 어떠한 전설도 없으므로 신빙성이 떨어질 뿐이다. 글라스턴베리의 존은 아서왕이 아리마대 요셉의 후손이라는 주장도 했다.

 

에버리스투스에 있는 웨일스 국립도서관 겸 박물관. 아리마대 요셉이 가져온 성배 등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기타 전설들]

 

아리마대 요셉이 글라스턴베리에 와서 지팡이를 땅에 꽂으니 지팡이에서 뿌리가 내리고 잎이 돋아나며 꽃이 피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를 ‘글라스턴베리의 가시나무’라고 불렀다. 글라스턴베리 수도원은 매년 이 나무의 가지를 꺾어 국왕에게 선물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는 나무가 오랜 세월 끝에 고사하여 볼수 없고 예전의 사진만 남아 있다. 영국의 성자인 에델드레다(Etheldreda)는 글라스턴베리의 가시나무가 아리마대 요셉이 심은 것이 틀림없다고 증언하였다. 성자가 설마 거짓말을 할리는 없으므로 그의 말을 믿어야 할 것이다.

 

글라스턴베리의 성수(聖樹). 아리마대 요셉이 와서 지팡이를 땅에 꽂으니 뿌리가 내려 나무가 성장했다는 전설이 있다.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의 친척이라는 주장이 있다. 요셉이 성모 마리아의 삼촌이라는 주장이었다. 요셉은 함석 상인으로서 영국에 주석이 풍부했기 때문에 영국과 무역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영국과의 인연이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또 어떤 전설에 의하면 아리마대 요셉이 소년 예수를 영국에 데리고 갔다가 왔다는 것이다.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송가인 예루살렘(Jerusalem)에 그같은 내용이 한줄 나온다. 그래서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예수의 어린 시절 행적이 설명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요셉은 실은 ‘방랑하는 유태인’이라는 것이다. ‘방랑하는 유태인’은 예수로부터 예수가 재림할 때까지 세상을 방랑해야하는 저주를 받은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아리마대라는 곳은 어디인가? 아리마대라는 지명은 복음서에만 나올뿐 다른 자료에는 기록이 없다. 누가복음 23:51에는 ‘유대의 도읍’이라고만 되어 있다. 오늘날 학자들은 아리마대라는 곳이 예루살렘 서북방 5 마일 지점에 있는 라마타임-조핌(Ramathaim-Zophim)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곳은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사무엘에게 온 곳이다.(사무엘상 19장에 나오는 라마가 오늘날의 라마타임-조핌이라고 한다.)

 

라마타임-조핌에 있는 네비 사무엘(사무엘 모스크). 이곳에 사무엘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