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와 유태인/홀로코스트

신에게 바치기 위해 태운 제물

정준극 2009. 11. 16. 05:03

홀로코스트(Holocaust) - 쇼아(Shoah)

[신에게 바치기 위해 태운 제물]

 

비엔나의 시내 중심가에 있는 유태광장(유덴플라츠). 광장 한가운데에는 쇼아(홀로코스트)에 의해 희생당한 오스트리아의 유태인들을 추모하는 기념비(네모난 조형물)가 있으며 오른쪽의 기념상은 독일의 사상가이며 시인인 레씽으로 그는 독일인들이 유태인들에 대하여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홀로코스트는 일반적으로 2차대전중 나치가 히틀러의 주도아래 약 6백만 명의 유럽 유태인들을 집단 학살한 것을 뜻하는 단어이다. 홀로코스트(Holocaust)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의 ‘전체’(whole)라는 뜻의 홀로스(holos)와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태운’(burnt) 제물을 뜻하는 카우슬로스(kauslos)가 합성된 것이다. 즉, 제물을 모두 태운다는(번제) 뜻이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2차 대전 중에 그들이 나치 독일로부터 당한 참혹한 집단학살을 표현할 때에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보다는 히브리어의 쇼아(Shoah)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를 선호한다. 홀로코스트라는 단어가 우상을 섬기는 그리스인들의 의식에서 비롯된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홀로코스트보다는 순수 히브리어인 쇼아가 더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성서에 나오는 쇼아라는 단어는 ‘재난’(Calamity) 또는 ‘재앙’(Disaster)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핍박을 받은 것도 쇼아에 해당한다. 쇼아라는 단어는 구약시대로부터 사용된 단어이지만 이 단어가 홀로코스트, 즉 집단학살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부터였다. 그리고 실제로 홀로코스트라는 단어가 나치에 의한 유태인학살을 의미하는 단어로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2차 대전이 끝난지 한참 후인 1978년이었다. 그 해에 미국 NBC방송이 ‘홀로코스트’라는 타이틀의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방송하고 부터였다. 메릴 스트립(Meryl Streep) 등이 출연한 NBC의 ‘홀로코스트’는 유태인 학살의 실상을 상세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그후로부터 원래는 ‘신에게 바치기 위해 태운 제물’이라는 뜻보다는 '나치에 의한 유태인 대학살'을 의미하게 되었다.

 

비르샤바 게토에서 길바닥에 쓰러져 죽어가는 유태인 어린이. 이 아이의 부모도 이미 나치에 의해 희생이 되었을 것이다. 지나가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듯 바라만 본다. 누가 이 어린아이를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학자들은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를 히틀러에 의한 유태인 학살에만 국한하면 안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나치가 유태인 이외에도 조직적으로 살해한 수백만명의 다른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었다. 나치는 필요에 따라 가톨릭교도, 폴란드의 소수민족, 집시들을 중심으로한 루마니아인들, 소련의 민간인, 소련의 전쟁포로, 정신질환자(정신이상자), 지체부자유자(불구자), 공산주의자, 동성연애자, 여호와의 증인 신도, 정치범, 종교적 반대론자 등을 집단적으로 학살하였다. 그러므로 홀로코스트를 설명할 때에 유태인뿐만 아니라 이들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게 되면 나치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은 6백만명의 유태인을 포함하여 최소 1천1백만명에서 1천7백만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인류역사상 이만한 규모의 사람들을 단기간 내에 학살한 경우는 히틀러의 나치에 의한 경우 이외에는 없다.

 

다하우를 해방한 미군들이 유태인 희생자들의 시신이 마차에 실려 나가는 것을 보면서 '여기가 지옥인가?'라며 참담해 하고 있다.

 

[조직적이고 단계적인 홀로코스트]

유태인 집단학살은 조직적이며 단계적으로 수행되었다. 법을 좋아하는 독일인들은 우선 유태인을 규제하는 법부터 마련했다. 독일은 이미 2차 대전이 발발하기 몇 년전에 유태인들을 독일사회에서 추방하는 법률을 마련하였다. 여러 법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두드러진 것은 뉘른베르크 인종법이다. 나치는 유태인들을 백해무익한 존재로 보고 강제로 체포하였으며 이들의 재산을 몰수하였고 이들을 제한된 주거지인 게토에 들어가서 지내도록 했다. 그후 나치에 의한 인종청소 작전이 본궤도에 오르자 나치는 게토를 파괴하고 유태인들을 화물열차에 태워 주로 동구에 새로 만든 아우슈비츠 등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수많은 루마니아인들도 인간쓰레기인 집시(로마니)라는 이유 때문에 유태인과 마찬가지로 인종청소의 대상이 되었다. 나치는 전쟁 이후 독일 제3제국의 영토가 확장되자 주로 동유럽의 여러 곳에 점점 더 많은 강제수용소를 설치하였고 이와 함께 인체실험실, 집단처리실(가스실), 화장장을 만들었다.

 

영국군이 독일 SS 대원들에게 그들이 죽인 유태인들의 시신을 직접 옮기도록 하고 있다.

 

게토에서 끌려나와 화물열차를 타고 동쪽으로 가던 유태인들은 화물칸 안에서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부지기수로 죽었다. 다행히 살아남은 유태인들은 강제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예전에 자기들의 선조들이 애급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보다 더 심하게 핍박을 받으며 중노동을 하며 지냈다. 이들은 결국 제대로 먹지 못하고 중노동에 시달리다가 죽었으며 그렇지 않으면 폐렴, 이질, 장질부사 등 질병에 걸려 수도 없이 죽었다. 나치는 특별히 훈련된 대체부대(아인자츠그룹펜: Einstatzgruppen: 정규 국방군을 대체하여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를 강제수용소에 배치하여 유태인들과 정치범들을 무더기로 총살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화물열차를 타고 도착한 유태인들을 목욕을 해야 한다고 속여 곧바로 가스실로 보내어 죽였다. 이러한 집단학살에는 나치의 중요 부서들이 거의 모두 관련되었다. 예를 들어 군수부서는 가스실에서 죽은 유태인들의 시체를 이용하여 비누를 만들어 군인들이 사용토록 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독일이라는 나라는 나라 전체가 인종청소를 위해 존재하는 거대한 폭력조직과 같다고 말했다.

 

히틀러 유겐트들이 유태인을 붙잡아서 길바닥 청소를 시키고 있다. 어린아이들이 그런 일을 했다. 그후에 어른들은 진짜 인종청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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