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와 유태인/홀로코스트

마다가스카르 작전

정준극 2009. 11. 16. 05:17

[제3지역으로 추방할 생각도 했다]

 

나치는 독일 영토에 살고 있는 유태인들을 어떻게 처분할까라고 생각하던 차에 딴에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유럽 이외의 지역으로 집단 이주시킨다는 아이디어였다. 어디가 좋을까?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식민지로 보내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독일은 1차 대전에서 패배하여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있는 식민지의 대부분을 잃었다. 그래서 아직도 식민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영국 및 프랑스와 논의를 진행하였다. 예를 들어서 유태인들을 영령 팔레스타인, 이탈리아령 아베씨니아(Abessinia), 영령 귀니아(British Guinea), 영령 로데시아, 프랑스령 마다가스카르, 그리고 호주 등으로 강제이주한다는 계획이 검토되었다. 그런 중에도 가장 유력시 되는 지역은 전에 독일의 식민지였던 탄자니아와 나미비아였다. 얘기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중에 히틀러가 브레이크를 걸었다. 히틀러는 ‘(과거 독일의 식민지였던 곳은) 영웅적인 독일인들이 귀중한 피를 흘린 곳이다. 그런 곳으로 유태인들을 보내 살도록 한다는 것은 안될 말이다. 독일인들의 가장 악독한 적인 유태인들은 이 지구상에서 발붙일 곳이 없도록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구 독일의 아프리카 식민지 땅들은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팔레스타인 난민촌. 나치는 유태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돌려 보낼 생각도 했다. 아랍으로부터 돈을 주고 땅을 사는 것도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훗날 텔 아비브는 아랍으로부터 사들인 땅에 세워진 도시이다.

 

가장 유력한 곳으로 협의가 진행되었던 곳은 마다가스카르였다. 우선 폴란드 괴뢰정부에 속하여 있는 유태인들을 모조리 집합시켜서 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로 보내 그곳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감시한다는 계획이었다. 더구나 마다가스카르는 프랑스령이므로 나치에 협조적인 프랑스의 비쉬정부로부터 협조를 받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마다가스카르 계획은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이 책임을 맡게 되었다. 아이히만은1940년 7월에 독일의 점령구역에 있는 모든 유태인을 배에 태워 마다가스카르로 보낸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마련하였다. 그러나 폴란드 괴뢰정부의 협조가 미적지근하여 날자에 맞추어 실천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마다가스카르 계획이 곧 실현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전황이 나치에게 불리하였고 더구나 초전박살로 영국을 점령하겠다던 계획이 무위로 돌아가자 그 여파로 유태인 집단이주는 지체되지 않을수 없었다. 나치의 간부인 하이드리히는 아이히만의 '마다가스카르 홀로코스트 계획'에 대하여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파이널 솔루션’이라면서 못마땅해 했다. 결국 마다가스카르 집단이주는 비현실적인 계획으로 남게 되었다. 나치가 유태인들을 제3국으로 집단 이주시킨다는 계획은 불투명해졌지만 성과도 있었다. 앞으로 나치가 유태인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지 않고 자기의 영토 안에서 대량 학살할 구실을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여 홀로코스트가 무르익었다. 하이드리히의 계획은 집단수용과 강제노동으로 유태인들을 자연 말살한다는 것이었지만 아이히만의 계획은 이런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인종말살 계획이었다.

 

마다가스카르의 이살로 국립공원. 나치는 유태인들을 모두 마다가스카르로 보내 살도록 할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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