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와 유태인/홀로코스트

니스코 계획

정준극 2009. 11. 16. 05:18

[니스코 계획]

 

1939년 9월, 독일은 소련과의 협약을 통해 소련에 리투아니아를 넘겨주고 대신 폴란드의 류블린(Lublin)을 차지하였다. 이어 나치는 이른바 니스코 계획(Nisko Plan)을 세워 류블린-리포봐(Lublin-Lipowa)지역에 마치 미국에서 아메리칸 인디안 보호구역을 운영하는 것처럼 유태인 보호구역(레저베이션)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니스코는 폴란드 동남부의 도시이다. 이곳에 독일, 오스트리아, 보헤미아 보호지역(Protectorate of Bohemia), 모라비아에 있는 유태인들을 모두 이주시킨다는 계획이다. 아돌프 아이히만이 니스코 계획에 대한 책임도 맡았다. 니스코 계획은 착착 진행되었다. 계획이 세워진지 3주 후에 첫 유태인 화물차가 류블린에 도착하였다. 오스트리아, 보헤미아 보호지구, 모라비아에서 강제로 데려온 유태인들이었다.

 

오늘날 니스코의 해방광장

 

이듬해인 1940년 1월 말까지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에 있던 유태인 7만8천명이 류블린으로 이송되었다. 말이 7만여 명이지 그건 도시 한 곳의 주민들을 모두 옮긴 것과 마찬가지였다. 다음 달인 2월에는 독일 포메라니아(Pomerania)에 살던 유태인들이 모두 이송되었다. 포메라니아는 독일에서는 최초로 ‘유태인이 없는 마을’(Judenrein: Free of Jews)이 되었다고 선전하였다. 그러다가 1940년 4월, 니스코 계획은 괴링의 지시로 전면 중지되었다. 아우슈비츠 등으로 보내어 유태인들이라는 흔적을 잿더미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니스코 계획이 시작된지 6개월 만에 모두 9만5천명의 유태인들이 현재 폴란드의 류블린에 강제 이주되었다. 대부분은 굶주림으로 죽었다.

 

류블린의 갈멜파 수도원 앞에 세워진 홀로코스트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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