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와 유태인/홀로코스트

백조의 호수 회의

정준극 2009. 11. 16. 05:29

[봔제 회의(Wannsee Conference)]

 

이 사람이 바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베를린의 교외에 반제(Wannsee)라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백조들이 우아하게 노니며 주위의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곳이다. 1942년 1월 20일, 암 그로센 봔제(Am Grossen Wannsee) 56-58번지에 있는 봔제 빌라(Wannsee villa)에서 독일의 앞날을 짊어지고 나갈 주요 인사들의 회의가 있었다. 회의참석자는 아돌프 아이히만,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하인리히 뮐러(게슈타포 책임자), 동부점령지역장관, 내무장관, 법무장관, 외무장관, 인종-재정착국 국장, 폴란드 일반정부(나치괴뢰정부) 대표, 나치당 대표, 유태인재산재분배국 국장, SS(친위대) 사령관, 최근에 2만4천명의 라트비아 유태인들을 말살한 리가(Riga) SD(보안경찰) 사령관 등등 쟁쟁한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롬멜 원수나 괴링 원수와 같은 독일군의 막강한 지휘관은 아닐지라도 앞으로 독일의 운명을 책임질 중견핵심 인사들이었다. 15명 참석자 중에서 박사학위 소지자가 반 이상이나 되는 것을 보면 알수 있다.

 

봔제 회의가 열렸던 빌라에서 바라본 봔제 호수 

 

이들이 느닷없이 모인 이유는 무엇인가? 유태인 최종해결(엔드뢰중)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아이히만이 소집한 회의였다. 회의 소집의 배경을 이러하다. 1941년 말에 이르러 히믈러와 하이드리히는 유태인 최종해결 문제가 조속히 추진되지 않는 것 같아 초조해 졌다. 공군사령관인 괴링이 걸림돌이었다. 군수물자 생산의 책임자이기도 했던 괴링은 군수산업을 위해 유태인 기술자와 노동자들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것을 반대하였다. 여러 명의 육군 사령관들도 괴링의 주장에 동조하였다. 그리하여 폴란드의 강제수용소로 보내려던 일부 유태인들을 군수산업지원이라는 명목으로 빼돌린 일이 있다. 육군 사령관들은 군수산업도 중요했지만 SS의 지나친 오만과 월권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서 히믈러의 사업에 부정적이기도 했다. 또한 일부 사령관들은 양심에 따라 유태인 학살을 반대하기도 했다. 괴링은 영국과의 공중전에서 번번이 패배하여 난처한 입장이었지만 그렇다고 히틀러의 신임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괴링은 언제라도 총통(휘러: 히틀러)을 만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유태인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추진할지를 협의하기 위해 봔제회의가 열렸던 것이다.

 

'악치온 하이드리히'(하이드리히 작전)를 논의한 베를린 남부의 봔제 별장

 

회의에서는 총통의 뜻에 따라, 독일의 원대한 미래를 위해 유럽에 있는 유태인들을 모두 청소하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강제수용소를 더욱 확장하고 가스실을 더 만들어 유태인과 집시들을 더 속히, 더 많이 처리하자고 합의했다. 당시의 회의록을 보면 영국에 있는 33만명, 아일랜드에 있는 4천명까지 모두 청소의 대상이었다. 독일의 전쟁승리를 전제로 한 계획이었다. 작전명은 ‘악치온 하이드리히’(Aktion Heydrich)였다. 회의 자료에 의하면 당시 유럽에는 6백50만명의 유태인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폴란드의 독일 점령지역에 2백30만명, 헝가리에 85만명, 기타 점령지역에 1백10만명, 소련에 5백만명(그중에서 독일점령지역에 3백만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봔제회의는 이들 6백50만명의 유태인들을 모두 폴란드로 데려와 즉각 가스실에서 처리한다는데 합의를 보았다. 종전에는 강제수용소로 데려와서 노동을 시킨다든지 하여 얼마동안 지낸후에 가스실에서 처형을 했지만 그러면 시간이 지연되므로 유태인들을 태운 화물열차가 강제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가스실로 보내어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회의에서 괴링을 대신하여 참석한 에리히 노이만(Erich Neumann)박사는 그나마 일정 인원의 유태인들을 군수산업 노동인력으로 인정받았다.

 

오늘날 봔제 회의가 열렸던 별장에는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다. 나이 많은 독일인들이 과거를 회상하기 위해 방문하였다. 하기야 외국에서 일부러 이 집을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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