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메리 위도우' 분석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초연

정준극 2009. 11. 28. 18:42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초연]

 

대본가인 레옹과 슈타인은 당시 오페레타 작곡가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던 리하르트 호이버거(Richard Heuberger)에게 '메리 위도우'의 음악작곡을 부탁했다. 호이버거는 ‘오페라 무도회’(Die Opernball)로서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러나 레옹과 슈타인은 호이버거로부터 제1막에 대한 스코어를 받아보고 ‘이게 아닌데’라며 실망을 했다. 레옹과 슈타인은 호이버거의 음악에 영감(인스피레이션)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비엔나의 오페레타 전용극장이던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의 매니저인 에밀 슈타이닝거(Emil Steininger)가 레옹과 슈타인에게 재능 있는 신인 작곡가 한사람을 소개했다. 프란츠 레하르였다. 레옹은 레하르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레하르의 첫 오페레타인 ‘땜장이’(Der Rastelbinder)의 대본을 썼기 때문이었다. ‘땜장이’는 성공이었지만 두 번째 작품은 실패작이서 무대에서 두어번 공연되다가 사라진 것이었다. 레하르를 평범하게 보았던 레옹은 ‘테아터 안 데어 빈’의 매니저가 레하르를 추천하자 그 자리에서 거절하기는 뭐하여서 ‘그러면 가사를 줄테니 노래 한곡을 작곡해 보라’고 말했다. 레옹은 레하르에게 Dummer, dummer Reitersmann(어리석고 어리석은 말타는 사람)이라는 노래 가사를 주었다. 레하르는 밤새 노력하여 다음날 새벽에 노래를 완성했다. 레하르는 급한 김에 레옹에게 전화를 걸어 새로 만든 곡을 불러주었다. 레옹은 레하르의 재능에 놀라서 당장 레하르에게 전체 오페레타의 작곡을 부탁했다.

 

'메리 위도우'가 초연된 비엔나의 '테어타 안 데어 빈'(비엔나강변극장).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 베토벤의 '휘델리오'도 이 극장에서 세계 초연을 가졌다.

 

레하르는 전체 스코어(악보)를 완성하자 주역을 맡은 성악가들과 대본가들, 무대감독, ‘테아터 안 데어 빈’의 극장장 등을 모시고 피아노로 스코어를 연주했다. 모두들 좋아했다. 특히 성악가들이 좋아했다. 당장이라도 따라 부를수 있는 사랑스러운 멜로디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음악감독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음악이 지나치게 육감적이라고 생각했다. 비엔나 오페레타로서는 생소한 멜로디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전통적인 비엔나 오페레타가 아니라 푸치니와 같다는 코멘트를 하였다. 그러한 코멘트가 있었지만 다음날부터 리허설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리허설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출연자들은 ‘메리 위도우’가 오래 가지 못하고 며칠 만에 막을 내릴 것으로 예상하여 연습을 소홀히 하였다. 오래 가지 못할 그런 작품에 대하여 무대 배경과 의상을 새로 만들수는 없었다. 그래서 창고에 있는 의상이나 장치들을 빌려왔다. 무대 장식이 초라하다보니 무대장식을 커버하기 위해 때 아닌 랜턴을 많이 사용키로 했다. 그렇다고 랜턴들을 새로 살수는 없었다. 시중의 가게에서 종이로 만든 임시 랜턴들을 사다가 걸었다. 대본을 쓴 레옹이 비엔나 시내를 돌아다니며 종이 랜턴을 구해왔다. 그로부터 무대에서 종이 랜턴을 사용하는 것이 전통처럼 되었다. 남자주인공인 다닐로의 의상은 몬테네그로 왕국의 황태자인 다닐로의 사진을 보고 그대로 만들었다.

 

세기의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가 한나 역을 맡아 취입한 레코드 표지

 

[최고 평론가의 브라보]

일반적으로 새로운 오페라나 오페레타의 리허설에는 평론가들이 들어와서 볼수 있었다. 하지만 ‘테아터 안 데어 빈’측은 ‘메리 위도우’의 리허설에 평론가들을 한사람도 초청하지 않았다. 신인 작곡가가 작곡한 별것도 아닌 작품이어서 겨우 몇 번 공연한 후에 막을 내릴 것인데 황송하게도 평론가들이 왕림하여 볼만한 꺼리가 안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유명한 평론가 카르파트(Karpath)는 ‘메리 위도우’의 드레스 리허설을 보러 왔다가 입장을 거절당했다. 극장측은 ‘별로 신통치도 않은 작품이어서 보실만한 것이 안된다’라면서 ‘다음번에 좋은 작품을 하게 되면 제일 먼저 모시겠으니 오늘은 그냥 집에 가시라’고 말하였다. 그래도 기왕에 극장까지 온 카르파트는 사정사정하여서 결국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객석의 어두운 곳에 앉는 허락을 받았다. 1막이 끝나자 카르파트는 앞 줄로 나와서 브라보를 외치며 ‘이렇게 훌륭한 오페레타는 처음이올시다’라고 말했다. 모두들 유명한 카르파트의 박수에 힘을 얻었다. 레옹은 ‘40회 연속공연은 문제없다’고 예측했다. 그리하여 '메리 위도우'는 역사적인 대 히트를 기록하게 되었다.

 

한나를 추종하는 뭇 사나이들. 소프라노로서는 한번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