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메리 위도우' 분석

피에르 캬르댕과 막심스

정준극 2009. 11. 28. 18:44

[파리의 막심스](Maxim's)

 

파리의 로열가(rue Royale)에 있는 막심스(Maxim's) 식당은 사실 ‘메리 위도우’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막심스는 겉은 평범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온통 아르 누보(Art Nouveau) 장식으로 되어 있어서 마치 딴 세상에 온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막심스는 일찍이 1893년 웨이터였던 막심 게이야르(Maxime Gaillard)라는 사람이 이탈리아 식당인 비스트로(Bistro)로서 문을 열었다. 막심스라는 명칭은 창업자 막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막심스가 파리의 최고급 식당으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다음 주인인 유제느 꼬르뉘세(Eugene Cornuche) 때문이었다. 식당 내부를 아르 누보로 장식한 사람이 바로 꼬르뉘세였다. 게다가 그는 무대에서 춤을 추는 여인들을 최고의 미인들로만 구성했다. 꼬르뉘세는 ‘빈 자리가 있는 식당은 절대로 안됩니다. 만일 빈자리가 있다면 길거리에 면한 창가에 우리 식당의 미인들을 앉힐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볼수 있도록 말입니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오페레타 '메리 위도우'에서는 막심스에서 캉캉을 추는 댄서들이 6명이 등장한다. 이들을 그리세트(Grisettes)라고 불렀다. 그리세트라는 말은 원래 양장점에서 옷만드는 여직원들을 뜻하지만 점차 환락적인 여자들을 가르키는 말이 되었다. 막심스에서 캉캉을 추는 그리세트들의 이름은 롤로(Lolo), 도도(Dodo), 주주(Joujou), 클로클로(Cloclo), 프루프루(Froufrou), 마르고(Margot)이다. 

 

파리의 전설적인 식당 겸 캬바레 막심스. 유명 디자이너인 피에르 캬르댕이 주인이다. 막심스는 1900년대 아르 누보 박물관이라는 별명을 듣고 있을 정도로 아르 누보 작품의 보고이다.

                    

당시 영국의 에드워드7세(빅토리아 여왕의 아들)도 파리에 오면 막심스를 찾아왔다.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는 막심스에 오면 주방장부터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다. 주방장은 최고의 정성으로서 로시니를 위한 스테이크를 만들었다. 오페레타 작곡가인 오펜바흐도 막심스의 단골이었다. 이밖에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 극작가 조르주 페이도(Georges Feydeau: 1862-1921), '마이엘링에서 사라예보까지'로 유명한 영화감독 막스 오풀스(Max Ophuls: 1902-1957) 등이 막심스를 안방처럼 드나들었다. 조르즈 페이도는 막심스를 배경으로 한 인기 코미디 ‘막심의 아가씨’(La dame de chez Maxim)를 썼을 정도였다. 막심스는 2차 대전이 끝난 후인 1950년대에도 세계적 유명 인사들이 빈번히 드나드는 곳으로 이름을 날렸다. 아리스토틀 오나시스, 마리아 칼라스, 윈저 공작과 심프슨 부인, 막스 오풀스(Max Ophuls), 신비의 백만장자 여인 바바라 허튼(Barbara Hutton),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카레이서 겸 폴로 선수 겸 외교관인 포르피리오 루비로사(Porfirio Rubirosa) 등이 단골이었다. 막심스는 1950년대 말에 대대적인 수리에 들어갔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팝 가수 실비 바르탱(Silvie Vartan), 배우 겸 가수인 존 트라볼타(John Travolta), 잔느 모로(Jeanne Moreau),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rbra Streisand), 소프라노 키리 테 카나와(Kiri Te Kanawa)등이 자주 드나들었다. 어느날엔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가 맨발로 들어와서 화제가 된 일도 있다.

 

 

막심스 내부. 아르 누보 스타일의 장식이 돋보인다. 오른쪽 그림은 막심스를 대표하는 삽화 

   

1981년에 막심스의 주인은 보다블(Vaudable)이었다. 어느날 보다블 부부는 유명 패션 디자이너인 피에르 캬르댕(Pierre Cardin)을 초청하여 식사를 하면서 캬르댕에게 막심스를 인수하라고 권했다. 보다블은 어떤 아시아의 부호가 맥심스를 사려고 제안했지만 프랑스의 문화재에 대하여 그럴수는 없다고 하며 피에르 캬르댕과 같은 사람이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하여 캬르댕이 막심스를 인수하였다. 캬르댕은 막심스에서 여러 가지 특별행사를 주선하였다. 젊은이를 위한 이브닝 프로그램도 그 중의 하나였다. 캬르댕은 3층 전체를 아르 누보 박물관으로 만들었고 아래층에는 캬바레를 만들어 매일밤 흘러간 추억의 샹송과 함께 춤을 출수 있도록 했다. 오늘날 맥심스는 모나코, 제네바, 브뤼셀, 토쿄, 상하이, 베이징에 분점을 열었다. 막심스는 식당업뿐만 아니라 다른 물건들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막심스의 사람들. 왼쪽으로부터 시계방향으로, 파리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바바라 허튼, 벨르 에포크의 대표적 작가인 조르주 페이도, 불가리아-아르메니아 혈통의 가수 실비 바르탱,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

    

막심스는 레하르의 오페레타 ‘메리 위도우’에 등장하며 발레곡인 ‘메리 위도우’에도 등장한다. 막심스는 조르즈 페도(Georges Feydeau)의 유명한 드라마인 La Dame de Chez Maxim(1899: The Girl from Maxim's)의 무대이다. 파리 사람들의 소문에 의하면 1920년대에 베트남의 호치민은 파리에서 망명생활을 할 때에 막심스에서 그릇 치우는 보이 역할을 했다고 한다. 장 르누아(Jean Renoir)의 1937년도 영화인 Grand Illusion(대환상)에 막심스 식당이 여러번 언급되어 있다. 프랑스의 명배우 모리스 슈발리에, 귀여운 아가씨 레슬리 캬론, 멋쟁이 남자 루이 주르당이 나오는 영화 Gigi(지지)에 막심스 식당이 나오는 장면이 있다. 막심스는 007영화 시리즈 중에서 From A View To A Kill(살인면허)과 The Man with the Golden Gun(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 등장한다. 막심스는 피터 오툴이 주연한 Night of the Generals(장군들의 밤)에도 모습을 보인다. 피터 오툴은 막심스에 대하여 ‘훌륭한 식당, 깨끗한 장소’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막심스는 수많은 문학작품, TV 시리즈, 영화, 드라마에 등장한다.

 

영화 지지(Gigi)에서 레슬리 캬론과 루이 주르당. 장소는 막심스이다.

 

[아르누보의 보고 막심스]

 

막심스는 캬바레 겸 식당으로서 유명하지만 실은 그보다는 아르 누보 예술작품의 보고로 더욱 유명하다. 막심스의 ‘콜렉션 1900’은 ‘아르 누보 미술관’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다른 어느 미술관보다도 훌륭하다. 파리 제8구 로열가 3번지의 막심스 식당건물에 있는 ‘막심스 아르 누보 미술관’은 월요일과 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후에 안내관람을 할수 있다. 이 미술관을 파리의 명소로 만든 주인공은 유명한 디자이너인 피에르 캬르댕이다. 그는 아르누보의 심볼이라고 하는 막심스를 1981년부터 소유하고 있으면서 벨르 에포크(Belle Epoch: 프랑스에서 1880-1905년의 아름다운 예술을 지향한 시대)의 걸작들을 수집하여 왔다. 그리하여 오늘날 세계 각처로부터 수집한 약 550점의 아르 누보 작품을 자랑하게 되었다.

 

막심스의 내부.  

   

막심스의 아르 누보 미술관은 3층에 걸쳐 있으며 무도 12개의 방에 주로 가구와 도자기, 그림과 조각작품 들이 전시되어 있다. 거장들의 서명이 들어 있는 작품들도 수두룩하다. 마요렐르(Majorelle), 티파니(Tiffany), 걀레(Galle), 마씨에르(Massier), 툴루스-로트레크(Toulouse-Lautrec) 등이다. 피에르 캬르댕은 이들을 개인의 취미로 수집하였으나 주위 사람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전시장을 꾸미고 일반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살상, 피에르 캬르댕이 전시실로 꾸민 방들은 19세기와 20세기 초반, 파리의 고급 창녀들이 직접 살던 곳이다. 당시에는 사정이 어땠는지 잘 모르지만 한다하는 사람들은 대개 정부(情婦)를 두고 인생을 즐겼다. 심지어는 국왕들도 공공연하게 정부를 두었다. 루이16세가 마담 퐁피두를 정부로 데리고 있었던 것은 유명하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Violetta)를 생각하면 당시의 사정을 짐작할수 있다. 막심스가 있는 건물은 바로 그러한 여인들이 살던 집이었다. 밤마다 파티였으며 도박과 여인들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이들이 살던 방들은 그런 목적에 편리하게 장식되어 있으므로 후배 여인들이 계속 살게 되었고 남자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들들이 계속 드나들게 되었다. 문제는 누가 드나들었냐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방들이 어떻게 꾸며져 있느냐는 것이다. 심지어는 국왕까지 드나들었던 집이므로 기를 쓰고 멋있게 꾸몄을 것이다.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의 여흥 장면. 파리의 환락 여인들이 파티를 열던 방을 피에르 캬르댕이 아르 누보 전시실로 만들어서 공개하고 있다.   

    

막심스 건물의 4층에는 그중 한명의 고급정부가 사용했던 사랑의 침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화려한 ‘벨르 에포크’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수 있는 곳이다. 마치 술탄의 할렘과 같다고 보면 된다. 한편, 팔로 아르 누보라는 명칭의 거실은 그야말로 세계적 아르 누보 예술의 보물 창고와 같다. 이곳에 살았던 여인들이 그들의 정부(情夫)인 왕후장상과 고관대작들에게 기왕이면 유럽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가구를 마련해 달라고 졸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스페인의 가우디(Gaudi)가 디자인한 소파, 리비에라에서 가져온 화려한 도자기, 마요렐레가 최고급 목재로 제작한 식탁 등이다. 가구 하나하나마다 사연이 깃들여 있는 것 같다. 1913년 장 콕토는 막심스의 아르 누보 보고(寶庫)를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화려한 레이스, 벨벳, 공단, 리본, 다이아몬드, 루비, 진주....여인의 옷을 벗기자면 무언들 아까울 것이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3주 전에는 예약을 해야 했다.” 이곳에서 인생의 꿈을 펼쳤던 여인들로서는 라이안느 드 푸지(Liane de Pougy), 에밀리안느 달렌송(Emilienne d'Alencon), 리나 카발리리(Lina Cavalliri), 벨르 오테로(Belle Otero)를 꼽지 않을수 없다. 간단히 말해서 비올레타, 또는 마농 레스꼬가 살았던 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페라 '마농 레스꼬'의 한 장면. 파리의 분방한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