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메리 위도우' 분석

‘메리 위도우’ 후편?

정준극 2009. 11. 28. 18:57

[‘메리 위도우’ 후편?]

 

만일 오페라 ‘나비부인’이나 ‘토스카’ 또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나 ‘리골레토’의 후편이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처음에는 흥미삼아서 관심을 갖겠지만 얼마가지 못해서 싫증을 느낄 것이다. 후편 없이 전편 하나만으로 김동을 간직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메리 위도우’의 후편이 있다면 어떨까? 이상할 것이다. 한나와 다닐로가 어떻게라도 되었단 말인가? 프란츠 레하르나 레오 슈타인이나 빅토르 레옹은 단 한번도 후편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비엔나에서는 ‘메리 위도우’(Die lustige Witwe)가 초연된 이후 인기절정이자 이른바 해적판 후편이 속속 등장하였다. 후편 중의 하나는 1907년에 무대에 올려진 Die lustige Witwe in Zweite Ehe(두번째 결혼한 유쾌한 미망인)이었다. 한나와 다닐로가 결혼하고 나서 겪는 티격태격을 스토리로 삼은 것이다. 처음 몇 공연은 사람들이 재미 삼아서 가서 박수를 쳤다. 그러나 후편의 문제점은 곧 들어났다. 오리지널과의 연계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리지널 팀이 만들어 냈던 매력적인 멜로디, 코믹한 멋, 위트에 넘친 대화 등이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후편은 소리도 없지 자취를 감추었다. 바로 그해에 레하르는 단막짜리 ‘현대의 미티슬라브’(Mitislaw der Moderne)를 작곡하였다. ‘메리 위도우’와는 사실상 아무런 관련이 없는 스토리였다. 하지만 ‘미티슬라브’의 주역을 ‘메리 위도우’에서 다닐로를 맡았던 당대의 배우 루이스 트로이만(Louis Treumann)이 맡았기 때문에 관련이 되었다. 그때만 해도 트로이만은 곧 다닐로였다. 사람들은 트로이만의 출연을 다닐로의 출연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래서 혹자는 현대의 ‘미티슬라브’를 ‘메리 위도우’의 후편이라고 말했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사실상 두 작품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비엔나 '메리 위도우'의 콤비인 미치 귄터와 루이스 트로이만

 

비엔나에서 ‘메리 위도우’가 초연된지 얼마 후인 1907년 뉴욕에서는 유명한 코미디언 조 웨버(Joe Weber)가 ‘메리 위도우 벌레스크’를 제작하였다. 벌레스크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여 버라이어티 쇼라고 생각하면 된다. 연극도 하다가 춤도 나오고 만담도 나오며 심지어는 심심풀이로 마술까지 등장하는 종합무대이다. 사람들은 '메리 위도우 벌레스크'라고 하니까 그 유명한 ‘메리 위도우’의 후편이 공연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너도나도 관심을 가지고 표를 샀다. 그러나 오리지널 ‘메리 위도우’에 조 웨버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추가되었고 베씨 클레이턴이라는 여자의 춤추는 것이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말하자면 표를 팔아먹기 위한 야바위 공연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하르와 뉴욕의 제작자들은 조 웨버가 무엇이 그렇게 믿음직스럽던지 그에게 오리지널 오케스트레이션과 의상 디자인을 제공하였다. 아무튼 조 웨버의 인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와서 몇 달은 지탱될수 있었다. 그리고 조 웨버로 인하여 ‘메리 위도우’가 선전도 되었다.

    

‘메리 위도우' 매니아들은 ‘메리 위도우’라는 말만 들어가도 귀를 쫑긋이 세우고 좋아하였다. 미국에서는 1906년에 뮤지컬 코미디로서 ‘시장님 귀하’(His Honor the Mayor)라는 작품이 있었다. 이 뮤지컬에 나오는 노래 중의 하나가 I Wish I Could Find the Man Who Wrote the Merry Widow Waltz(메리 위도우 왈츠를 작곡한 사람이 누구인지 만났으면 좋겠네)라는 것이었다. 별 제목이 다 있다. 그 노래 제목 하나로서 '시장님 귀하'는 '메리 위도우 매니아'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1907년 런던 무대.릴리 엘리와 조셉 코인. 인기 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