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제정러시아 카테리나 여제

계몽군주로서의 캐서린

정준극 2009. 12. 16. 11:40

[계몽군주로서의 캐서린]

 

캐서린은 러시아에서 페터 대제 이후 가장 훌륭한 계몽군주로서 인정을 받고 싶었다. 캐서린은 러시아가 더 이상 2등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유럽에서 국가 간의 분쟁이 일어났을 때 러시아가 중재역할을 함으로서 맏형 대접을 받고 싶어 했다. 캐서린의 이같은 염원은 러시아 국내사정으로 성사되지 못하였다. 대신 영국이 19세기와 20세기를 통하여 캐서린이 희망했던 유럽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캐서린은 처음에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 간의 바바리아 후계자 전쟁(1778-1779)에서 중재자로 나섰다. 이어서 캐서린은 1780년에 미국 독립전쟁 기간중 영국으로부터 중립국의 미국행 선박을 보호하는 무장중립연맹(League of Armed Neutrality)을 구성하였다.

 

캐서린 여제

 

캐서린은 1788-1790년에 스웨덴과 전쟁을 가졌다. 캐서린의 사촌인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3세가 일으킨 전쟁이었다. 구스타브 3세는 당시 러시아군이 흑해 연안에서 아직도 오토만 터키와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틈을 이용하여 단번에 생페터스부르크를 함락코자 했다. 그러한 차에 이번에는 덴마크가 잃었던 영토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스웨덴에 선전포고를 하고 나섰다. 스웨덴은 러시아와의 전투를 치루면서 동시에 덴마크를 상대해야 했다. 스웨덴군은 러시아의 발트함대에 대패하여 수많은 병력을 손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차지하고 있던 영토를 모두 반환해야 했다. 러시아-스웨덴 전쟁이 끝난 후 구스타브 3세는 스톡홀름의 왕립극장에서 측근으로부터 암살당하였다. 베르디의 오페라 ‘가면무도회’는 구스타브 3세의 암살을 다룬 것이다. 스웨덴과 러시아의 관계는 구스타브 3세가 세상을 떠난후 20여년 동안 평화스러웠다.

 

캐서린의 사촌인 스웨덴의 구스타브 3세(1746-1792). 측근에 의해 극장에서 암살 당하였다. 베르디의 오페라 '가면무도회'는 구스타브 3세의 사랑과 죽음을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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