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시아의 전설
아나스타시아는 제정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스 2세와 알렉산드라 페오도로브나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4녀 1남 중 막내딸이다. 아나스타시아의 풀 네임은 아나스타시아 니콜라에브나 로마노프이다. 아나스타시아의 언니들은 올가, 타티아나, 마리아이며 남동생인 황태자(차레비치)의 이름은 알렉세이였다. 아나스타시아는 1901년 6월 19일 태어나 1918년 7월 17일 17세의 꽃다운 나이로 예카테린부르크의 연금저택에서 볼셰비키 비밀경찰에 의해 아버지, 어머니, 세명의 언니들, 남동생, 주치의, 전속요리사, 전속운전기사, 어머니의 시녀와 함께 합동으로 죽임을 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예카테린부르크에서의 끔찍한 사건이 있은지 얼마후 아나스타시아만이 살아서 죽음의 방에서 도망쳐 나왔다는 소문이 은밀하게 나돌았다.
1915년 1차 대전 부상병들을 위문하는 아나스타시아(오른쪽)와 언니 마리아(가운데)
소문은 러시아보다 오히려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특히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퍼져 나왔다. 얼마 후에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묘지는 확인이 되었는데 아나스타시아가 묻힌 곳을 아직까지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무덤이 없다는 것은 결국 살아있다는 얘기나 마찬가지가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니콜라스 황제와 가족들을 살해한 비밀경찰 중의 한사람이 17세의 아름다운 아가씨인 아나스타시아를 사랑하여서 몰래 구출했다는 소문도 나왔다. 다른 가족들의 시신에 깔려 있어서 총알을 맞자 않아 살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자기가 바로 아나스타시아라면서 나타난 여인이 있었다. 당시 아나스타시아의 친할머니가 되는 마리 황비가 요행으로 미리 러시아를 빠져나와 파리에 체류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비롯하여 로마노프 왕조의 귀중한 보물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 로마노프 왕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는 아나스타시아가 보물들을 상속받을수 있다. 더구나 진짜 아나스타시아라는 것이 확인되면 당장 공주로서 대우를 받게 되니 이 또한 명예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그래서 실은 몇몇 여인들이 자기야말로 살아남은 아나스타시아라고 주장하며 나선 것이다.
1910년에 촬영한 올가와 타티아나(오른쪽)
안나 앤더슨의 정체
여러 명의 아나스타시아 후보 중에서 거의 대부분은 신빙성이 없어서 중도 탈락했지만 안나 앤더슨이라는 여인은 달랐다. 아나스타시아의 어릴 때 얘기를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기형적인 왼발의 모습도 똑 같았다. 그러면서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 할머니’라면서 말을 잇지 못하며 눈물을 흘렸다. 자,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정말 아나스타시아가 맞는가? 러시아 당국은 어찌되었든 이 소문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공산주의 사회가 착실히 발전하고 있는 중에 뜬 구름 없이 자꾸 로마노프 왕조에 대한 얘기가 나오다보면 백성들이 제정러시아에 대한 일종의 향수 및 연민을 가지게 되어 공산주의가 위협을 받을수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안나 앤더슨. 1923년
1991년, 마침내 에카테린부르크의 묘지들을 다시 파헤쳐서 확인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니콜라스 황제와 알렉산드라 왕비, 그리고 세 딸들의 유해가 재확인되었다. 하지만 황태자인 알렉세이와 딸들 중에서 한명의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 나머지 한 명의 딸이 누구인지가 수수께끼였다. 큰 딸 올가와 둘째 딸 타티아나의 유해는 당초부터 확인되었으므로 궁금증에서 제외되었다. 나머지 하나의 유해가 셋째 딸 마리아가 아니면 넷째 딸 아나스타시아의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과거에 자기가 아나스타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마리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단 한명도 없었다. 결국 나머지 하나의 유해가 셋째 딸 마리아의 것이라면 막내딸인 아나스타시아의 유해는 원래부터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볼셰비키들이 아나스타시아만을 다른 곳에 매장했을리도 없다. 그래서 아나스타시아 사건은 더욱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이후 러시아 당국은 아나스타시아의 생존설을 근거가 없는 얘기라면서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그 때만해도 아나스타시아의 유해는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동서를 막론하고 정부당국의 발표를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안나 앤더슨의 스토리를 다룬 영화 '아나스타시아'의 포스터
한편, 자기가 틀림없이 아나스타시아라고 주장했던 앤더슨은 확실하게 아나스타시아라고 인정도 받지 못한채 1984년에 세상을 떠났다. 시신은 화장되었다. 러시아 당국은 1994년, 앤더슨에 대한 DNA검사를 실시했다. 앤더슨이 죽기 전에 미리 머리칼과 피부조직 등을 간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DNA 검사를 순조롭게 진행할수 있었다. 결국, 앤더슨은 로마노프 왕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한편, 러시아 당국은 어떤 아마추어 고고학자의 신고로 2007년 8월에 예카테린부르크의 근교에서 남자 아이 한명과 젊은 여자 한명의 유해를 발견했다. 시신들을 화장했기 때문에 거의 숯이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유전인자 조사 결과 남자 아이의 유해는 당시 13세의 알렉세이 황태자의 것이 분명한 것 같으며 젊은 여자의 유해는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니콜라스의 네 딸들 중의 한 명일 것 같다고 결과를 얻었다. 2008년 4월, 러시아 법의학 전문가들이 유해를 세밀하게 재검사하였다. 결과, 남자 아이의 유해는 알렉세이 황태자의 것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돌다리도 원스 모어!’를 외치며 미국에 DNA 검사를 의뢰하였다. 미육군 DNA검사연구소는 모든 유해들을 정말 다시 한번 정밀 검사하고 2009년 3월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추가로 발견한 젊은 여자의 유해를 포함하여 그 이전에 발견한 젊은 여자들의 유해는 모두 니콜라스 황제의 네 딸의 유해가 분명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므로 딸 들 중에서 아무도 볼셰비키의 총탄을 피해 도피한 사람은 없다고 확인했다.
영화 '아나스타시아'에서 할머니(헬렌 헤이스)와 만나는 아나스타시아(잉그릿드 버그만). 할머니는 안나 앤더슨이 진짜 아나스타시아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얘기하지 않는다. 아나스타시아가 죽은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아나스타시아 파문은 일단락되고 잠잠해 졌지만 아무래도 확실히 해 두는 것이 필요해서 미육군 DNA연구소까지 동원하여 다시 검사하였던 것이고 결론적으로 니콜라스 황제의 가족은 모두 한꺼번에 죽임을 당하여 에카테린부르크에 매장되었는데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황태자인 알렉세이와 아나스타시아라고 생각되는 젊은 여인만이 화장된 후에 가족들의 묘지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매장되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당시 볼계비키 당국은 니콜라스 황제와 가족들의 유해를 따로 매장함으로서 나중에 집단 살해의 근거를 남기기 않으려고 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석연치 않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설령 아나스타시아가 살아 있다고 해도 2010년으로서 무려 109세의 노파가 되는 것이므로 인생무상만을 느끼게 될 것이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나스타시아 사건은 영원히 풀지 못할 미궁 속에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이다.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짜르인 니콜라우스의 막내 딸 아나스타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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