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미스터리의 아나스타시아

요승 라스푸틴 사건

정준극 2009. 12. 21. 14:10

[요승 라스푸틴 사건]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을 재촉한 사건 중의 하나는 이른바 라스푸틴 사건이었다. 라스푸틴은 겉으로는 멀쩡하게 자칭 러시아정교회 사제이지만 따지고 보면 희대의 사기꾼이었다. 특히 알렉산드라 왕비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 그것을 빌미로 하여 대단한 사기행각을 벌였다고 한다. 아나스타시아의 어머니, 즉 알렉산드라 왕비는 사람이 그러면 안되는데 무슨 망녕이 들었는지 라스푸틴이라는 자칭 성자가 아들의 불치병을 고칠수 있다고 믿어서 그에게 푹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러시아의 신돈? 도대체 그리고리 라스푸틴(Grigori Rasputin: 1869-1916)이란 자는 누구인지 알아보자. 백과사전에는 라스푸틴을 파계수도자 및 예언자라고 적어 놓았다. 사실이 그러한가? 라스푸틴은 농부였다. 그러다가 떠돌이 얘기꾼으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얼마 후에는 수도원에 들어가서 지내다가 자칭 성직자가 되었고 그런 그를 일부 사람들은 성자라고 불렀다. 잘 아는 대로 니콜라스 황제와 알렉산드라 왕비는 네 딸을 두었지만 늦게나마 아들 하나를 얻었다. 마침내 로마노프 왕조의 후계자가 탄생한 것이다. 얼마나 귀중했겠는가? 알렉세이 왕자는 그야말로 ‘금이야 옥이야’였다.

 

'금이야 옥이야'의 황태자 알렉세이의 어린 시절 모습

 

그런 왕자가 조금이라도 아픈 기색이 보이면 난리도 아니었다. 예전에는 어린이 사망률이 무척 높았다. 천연두와 같은 질병도 고치기 어려운 시대였다. 알렉세이 왕자에게는 혈우병이 있었다. 상처가 나서 피가 흐르면 멈추지 못하는 특이한 병이었다. 왕자가 위태로우면 의지할 곳은 어디인가? 교회에 가서 하나님과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에게 병에서 낫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최대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분들에게 아무리 기도를 해도 효험이 없었다. 그럴 때에 어떤 성자처럼 생긴 사람이 나타나서 왕자를 위해 기도를 해 주었는데 신통하게도 왕자의 병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아플 때마다 몇 번에 걸쳐 기도로 고쳐주었으니 얼마나 감사하겠는가? 결정적인 계기는 1912년 10월 어느날이었다. 알렉세이 왕자가 황실의 사냥숙사에서 가족과 함께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던 때였다. 알렉세이는 정말 예상치도 못하게 크게 다쳐서 피를 멈출수가 없었다. 죽음을 목적에 두고 있었다. 니콜라스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신부들을 불러서 병자성사를 치루도록 했다. 왕비는 마지막 방법으로 라스푸틴에게 연락하여 어떻게 좀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 라스푸틴이 회신을 보내왔다. '하니님께서 돌보아 주실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신통하게도 다음날 알렉세이는 평상시처럼 회복되었다.  라스푸틴은 왕비가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인물이 되지 않을수 없었다.

 

제정러시아를 흔들어 놓았던 자칭 성자 그리고리 라스푸틴

 

알렉산드라 왕비는 네 딸들에게 ‘라스푸틴은 훌륭한 분이시다. 우리를 도와주시는 친구이시다. 그러므로 은인처럼 생각하고 공경해라’고 당부했다. 아이들의 고모인 올가 알렉산드로브나의 얘기를 들어보자. “1907년 가을이었는데요 제가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찾아 갔었거든요. 아이들은 모두 라스푸틴이란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마치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라스푸틴은 다른 곳에 가서 있으면서도 아이들에게 전보를 자주 보냈어요. 급한 내용도 아니었어요. 예를 들면 ‘여호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 이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고 그에게 꽃을 바치기를 게을리 하지 마라. 방안에서 바느질을 하는 것도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방법이다’라는 내용이었지요. 아무튼 아이들은 그런 라스푸틴을 성자라고 믿고 있었어요.”

 

10대의 아나스타시아.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였다.

 

라스푸틴이 궁전에 머물고 있을 때에는 심심하면 아이들의 공부방을 드나들었다. 심지어는 네 딸들이 잠옷만 입고 잠자리에 들어가려고 하는 시간에 느닷없이 찾아와서 아이들을 껴안고 토닥거려 주며 얘기를 해 주는 때도 있었다. 다 큰 처녀들이므로 아버지라고 해도 그 시간에 그런 행동은 할수 없었다. 그런데 라스푸틴은 마음대로였다. 아이들의 가정교사인 소피아 이바노브나 튜체바가 라스푸틴의 그런 행동을 보고 놀라서 왕비에게 보고했지만 왕비는 그를 전적으로 신임하기 때문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튜체바는 해고를 당했다. 아이들은 점점 라스푸틴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라스푸틴을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그에 대하여 좋지 않게 얘기하면 어머니가 극히 싫어하기 때문에 말을 하지 못했는지 모른다. 아이들은 라스푸틴을 존경하고 좋아한다는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했다. 아마 어머니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그런 편지를 쓴 것 같다. 가정교사 튜체바는 아이들의 고모에게 아무리 생각해도 라스푸틴이 요상한 행동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모는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런 못된 인간의 행동을 그대로 두다니 도저히 이해할수 없다’고 말했지만 더 이상 진전은 없었다.

 

바느질하고 있는 어린 아나스타시아. 어머니는 아이들이 바느질을 하는 것도 성자 라스푸틴을 즐겁게 하는 일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던중 1910년 봄, 새로 들어온 아이들의 가정교사인 마리아 이바노브나 비슈니아코바라는 젊은 여인이 라스푸틴에게 겁탈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비슈니아코바는 겁탈 당했다는 사실을 왕비에게 눈물로서 말했지만 왕비는 믿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분이 하는 행동은 모두 성스러운 것’이라면서 감쌌다고 한다. 이 사건에 대한 소문을 들은 아이들의 고모인 올가 알렉산드로브나는 너무 황당해서 황제에게 얘기하여 이 사건을 즉시 조사토록 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는 엉뚱했다. 가정교사인 비슈니아코바가 침실에서 황실 근위병인 어떤 코사크 병사와 함께 있었다는 증인이 있었으므로 라스푸틴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비슈니아코바는 너무나 억울해서 라스푸틴을 만나서 직접 따지려고 했지만 그의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지를 당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해고되었다.

 

라스푸틴을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한 알렉산드라 왕비

 

라스푸틴에 대한 이상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궁전 밖에 퍼지기 시작했다. 라스푸틴이 왕비를 유혹하여 관계를 가졌다는 소문이 나돌았는가 하면 심지어는 라스푸틴이 네 딸들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러던차에 라스푸틴에 대한 소문이 진짜처럼 믿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어느날 라스푸틴은 어떤 모임에서 왕비와 네 공주들이 자기를 얼마나 공경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겠다고 하며 왕비와 공주들이 자기에게 보낸 편지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라스푸틴은 마침 아나스타시아가 보낸 편지를 사람들에게 읽어주었다. “사랑하는 그대, 귀중한 당신, 나의 유일한 친구시여, 내가 얼마나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지 모를 것입니다. 당신은 오늘 나의 꿈속에 나타났었지요. 나는 당신이 보고 싶어서 엄마에게 당신께서 언제 다시 오느냐고 물었답니다. 항상 당신만을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정말 나에게 친절하니까요”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아나스타시아는 아홉 살이었다. 그런 그가 라스푸틴을 이성으로 생각하고 그런 편지를 썼을 리는 만무했다. 만일 스스로 그 편지를 썼다고 하면 그건 순진한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라스푸틴은 그 편지를 여러 사람에게 공개하면서 마치 자기가 공주들의 마음을 모두 소유하고 있다는 식으로 선전하였던 것이다. 아무튼 그로부터 라스푸틴에 대한 이상한 소문은 걷잡을수 없이 퍼져 나갔다.

 

라스푸틴이 왕비와 그렇고 그런 사이여서 왕비에게 무슨 청탁이든지 말하기만 하면 들어준다는 소문이 저 시골구석까지 퍼지게 되었다. 황실의 품위가 여지없이 손상되는 일이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는 더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라스푸틴과 왕비가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는 포르노 만화가 시중에 나돌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라스푸틴이 이제는 어엿한 숙녀로 성장한 공주들과도 관계를 가지는 포르노 만화그림까지 등장하였다. 또 하나의 만화는 황실 시녀인 비루보바와 라스푸틴이 관계를 가지는 노골적인 장면을 담고 있었다. 이같은 해괴한 소문은 마침내 니콜라스의 귀에도 들어갔다. 니콜라스는 알렉산드라 왕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라스푸틴에게 생페터스부르크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라스푸틴은 팔레스타인에 성지순례를 간다고 하며 떠났다. 라스푸틴 사건은 결론적으로 니콜라스 황제와 알렉산드라 왕비에 대한 백성들의 불신을 가중시켜 준 것이었고 결국 로마노프 왕조의 종말을 앞당겨 준 것이었다.

 

라스푸틴은 1916년 12월 17일(어떤 기록에는 12월 30일) 누구인가에 의해 살해되었다. 네 공주들은 라스푸틴이 죽었다는 뉴스를 듣자 겁에 질린듯 서로 붙잡고 어쩔줄 몰라 했다고 한다. 궁전의 시종들은 라스푸틴의 죽음으로 민중들의 봉기가 있을 것 같아 두려워했다고 한다. 라스푸틴의 시신은 생페터스부르크로 이송되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남겨두지 않은 12월 21일, 라스푸틴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라스푸틴을 매장할 때에는 왕비와 네 공주들이 서명한 이콘(성화)도 함께 매장되었다. 아직도 라스푸틴을 잊지 못하는 왕비는 라스푸틴기념교회를 세우고자 했다. 하지만 라스푸틴기념교회를 세운다는 계획은 1차 대전의 와중에서, 그리고 볼셰비키의 혁명으로 인하여 실현되지 못했다. 훗날 볼셰비키가 황제를 비롯하여 왕비와 네 공주들을 죽였을 때 네 공주들은 모두 라스푸틴의 사진이 들어 있는 조금만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었다.

 

* 볼셰비키(Bolshevik): 볼셰비키(제정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다수파)의 일원; 옛 소련 공산당원; (경멸적으로) 극단적인 과격론자. 볼셰비키는 일반적으로 The Reds라고 불렀다. 번역하면 ‘빨갱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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